사람에겐 절대로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냥 흘려들었던 그 말이 또다시 뼈에 사무친다. 나는 기침을 숨기고 싶은데 숨길 수 없어서 그냥 고스란히 나를 숨겨버렸다.
기침을 참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마치 기관지에 벌레 몇 마리가 서식하고 있어서 스멀스멀 움직이면서 자신들을 입 밖으로 토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만 같다. 꾹꾹 억지로 참았던 기침은 오히려 크고 민망한 소리로 결국에는 푸욱 하고 터져나온다. 버스나 지하철 혹은 괜찮을거야 하는 오기를 부리며 찾아간 극장에서 연신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으려고 목구멍을 꽉 그러쥐고 있는 것은, 정말로 고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공장소에서 단 1분 동안이라도,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쿨럭쿨럭 켁켁 하고 기침을 발사해대는 것 또한 그닥 즐거운 일은 아니다. 목이 아픈 것은 둘째치고라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나에게로 쏟아진다. 저 아해는 어디 죽을 병이라도 걸렸나 하는 듯 슬금슬금 나를 훑는 눈길들. 나는 기민하게 장소를 바꾸고 타이밍을 조절하고 리듬감까지 살려서 기침을 내뱉는다.
3년 전 쯤, 감기가 나은 후에도 계속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내게 천식이 있다고 했다. 하긴 시간이 흐를수록 기침이 마르고 숨쉬기가 어려워졌고 특히 한 번 기침이 시작되면 말도 못할 정도로 오래 심하게 해서 이상하다 했는데 그게 그런 거였다. 사실 그 때문인지 어쩐지 잘은 모르지만 그 이후로 나는 그 우습던 감기가 무서워졌다. 어쩌다 목감기라도 한 번 걸리게 되면 아무리 약을 먹어도 쉽게 낫지 않고 몇 주는 우습게 기침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언젠가 엄마가 도라지랑 배랑 무슨무슨 이상한 것들을 넣고 만든 맛대가리 없는 약을 일부러 해오셔서 강제로 먹었는데 그것의 약효가 좋았는지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기침감기는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고 그러니 또 단순하게시리 기침의 악몽을 깡그리 잊고 살았다. 그런데 날씨도 뜨듯한 이 늦여름에 이런 뜬금없는 기침의 역습이라니. 진정 최대의 난관이다. 이젠 맛없는 약을 지어주실 엄마도 가까이에 없고 도라지도 배도 꿀도 없다. 같이 사는 친구에게 나의 연타성 기침은 아마 고장나서 꺼지지도 않고 밤새 혼자 울어대는 알람소리 같을 것이다.
슬슬 나아지고 있으니 결국엔 끝이 보이겠지, 지가 뛰어봐야 기침이고 뱉어봐야 침 아니겠나,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아프면 징그럽게 들러붙어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쯧쯧 나는 혀를 찬다. 이런 일로 엄마에게 가고 싶지는 않다, 고 말하는 내 자신이 여전히 전혀 어른스럽지 않음에 나는 그깟기침, 을 연신 해대며 끊임없이 실망한다.
+) 서재 달력을 보니 벌써일주일. 아프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인가. 잠 속을 헤맨 시간이 많아서였나. 어쨌거나 일주일을 비운 동안 즐겨찾는 분이 대폭 줄었다. 원래부터 많지 않은 수였으니 내 숫자는 줄지 않을거라 나는 조금은 믿으며 무심했었을까. 이리 급격한 하강 곡선을 그릴 수도 있구나, 실은 좀 신기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별로 슬프지 않아서 오히려 슬프다. 서재의 달인들은 역시 보통 분들이 아니다. 만약 아프지 않았더라도 나는 원체 게으른 인간이라 내 서재는 늘 이모냥일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한다. 그런데 솔직히, 그게 불안함인지조차 나는 사실 모르겠다.
걱정해주신 분들, 오셨다 그냥 가신 분들. 글 남겨주시고 힘 주신 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저는 사실 항상, 어디에도 있는, 녀석이에요. 제 씩식한 기침 소리, 들리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