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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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그대로 최영미라는 개인의 '일기'다.

이 일기는 마치 기념사진 촬영 같다. 다른 나라나 도시를 여행할 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아내 확인하는 작업, 그런 사전지식이나 선입견은(그것이 좋은 쪽이든 아니든) 오직 자신만의 것으로 친절하게 얘기해주지 않으면 읽는 사람은 공감하기가 힘들다. 특히 그 것이 읽는 사람의 취향에 반하거나 동떨어져 있다면. 쓴 사람은 그런 공감에 대해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긴 일기니까.

여행과 미술, 자신의 사상과 생각, 모든 것이 들쑥날쑥 뒤섞여 있다. 물론 이런 뒤섞임은 다른 사람의 책이나 글에서도 굳이 찾아내려면 찾아낼 수 있다. 훨씬 부드러운 형태로. 몇 페이지 들춰보고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이나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떠올리고 선택한 경솔함을 후회했다. 이주헌의 친절함이나 서경식의 따뜻함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최영미란 개인에게 호감, 아니 최소한 관심이 있었다면 훨씬 즐겁게 읽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하나도 모르니까. 하지만 당신의 독자 중에는 당신의 책을 처음 읽는 사람도 있답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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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작은 다리를 건너서
이케자와 나츠키 지음, 모토하시 세이이치 사진 / 달궁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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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자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라크를 방문해서 보고 느낀 것들을 옮겨 놓은 책이다. 스스로 계속 강조하듯 전혀 정치적이거나 선동적이지 않다. 그저 이라크에 사는 사람들도 너와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소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쓴 의도나 동기가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다. 다만 이라크 전쟁이 끝내 터져버린 지금 상황에서 읽다보면 그 소박함에 울화가 치밀 지경이지만.

이 책을 한권의 책이 아니라, 시사잡지의 한 꼭지로 읽었다면 나는 한명의 사람으로 공감하고 이라크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야 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라크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인 시기에 비싼 인쇄지에 100페이지 안팎의 책으로 낸 것에는 출판사의 직업의식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예쁘게 만들어서 잠시 팔고 말 주제는 아니지 않는가. 수익금의 1%(후하기도 하시지)는 이라크인들을 위해서 쓴다기에 별 하나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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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그늘에서 - 제인 구달의 침팬지 이야기
제인 구달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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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 업무를 위해서 보고서나 논문을 읽다보면 가끔 왜 이렇게 재미없게 써놨을까 싶을 때가 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려면 소소하게 무릎을 치는 깨달음들이 있었을테고 그럴 때마다 느꼈던 보람이나 뿌듯함을 함께 담으면 정말 재밌을텐데, 그런 생각. 그러나 그건 정말 '가끔'이나 하는 생각일 뿐이지, 실제로 숙달되지 못한 사람들이 보고서 안에 개인적인 생활이나 감정에 대해 늘어놓으면 답답해서 그 위로 빨간펜으로 두줄 좍좍 그어버리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결국은 '일'이니까 '용건만 간단히' 해결해주길 원한다.

어쩌면 제인 구달에 대해 비판적인 과학자들의 심정이 그런지 모르겠다.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들과 자신과의 만남과 교감에 대해 꼼꼼히 쓰는 것은 그 것이 '일'인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고 소모적일 지 모른다. 내가 만일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해야하고 눈 앞에 수십권의 책이 쌓여있다면 제인 구달의 이 책은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거나 책상 밖으로 밀려날 1순위가 될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것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제인 구달의 이 책은 꾸미려들지 않는다. 어려운 전문용어도, 객관성을 증명해줄 방대한 데이터 수치도 없다. 자신의 관찰 자체가 관찰의 대상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부정하거나 숨기려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자로서의 자신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떳떳하다. 그녀는 오랫동안 관찰해온 침팬지를 친구라고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고, 그 친구에게 찾아온 불행에 대해 슬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이 기대하는 '용건' 외인 자신의 생활을 굳히 그녀의 연구와 구분하려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연구는 생활 그 자체고, 그녀의 생활이 연구다. 그래서 나같은 문외한도 그냥 사는 이야기 듣는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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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소금 - 우오즈미 시리즈 1
에다 유우리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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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서툰 사람에 대한 판타지. 여름의 소금, 플라스틱과 두 번의 키스, 메시지까지 시리즈 3권을 읽은 지금의 감상은 이렇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의 감정이나 지각, 이해의 속도가 상대방에 비해 너무 느릴 때, 그래서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깨닫지 못할 때, - 혹은 한술 더 떠, 반응해야할 순간이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때 - 속도에 눈알이 핑핑 돌고 현기증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미 상대방은 지치고 나를 원망하고 결국 나를 떠날 때, 그 모든 순간에 '아무 것도 모르는' 지진아를 위한 판타지다. 판타지답게 주인공 우오즈미는 극단적으로 괴로운 과거에 극단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극단적으로 '기다려 주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평범한 과거를 가지고 평범한 외모를 가졌지만 나 역시 극단적으로 '둔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혹은 환상)을 잠시나마 되새길 수 있게 해준다. 그 환상이 이 달콤한 책을 덮는 순간 금세 산산조각나는 건 물론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냥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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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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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채식에 대한 책을 읽거나 미디어를 접하고 채식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보다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보면 채식주의자 입장에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채식을 선택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끔 채식주의자 중에는 일부 종교의 광신도가 그러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채식의 장점이나 육식의 단점을 과격하게 설파함으로서 다른 사람을 채식의 길로 이끌기 보다는 오히려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켜 채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곤 한다.

이 책은 건강이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 물론 이 책도 건강과 도덕을 언급하긴 한다 - 다른 책에 비해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읽기에 가장 적합한 책 중에 하나다. 저자는 역사적, 사회적, 인류학적, 환경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쇠고기를 소비하는 것에 대해 조명한다. 이 책의 저자가 다른 책의 저자에 비해 친절한 점은 육식을 위해 사육,도축되는 소가 겪는 고통이나 비위생적인 환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해 독자로 하여금 동정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적인 접근 대신, 과잉목축 때문에 생겨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여러가지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자세히 알려준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육식은 나쁜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채식의 필요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육식을 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책에 질렸던 사람이라면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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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