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과 탈주>를 리뷰해주세요.
추방과 탈주 트랜스 소시올로지 2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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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잡은 한국 사회에서 대중은 “’전체를 위해 희생된 ‘일부’, 결과적으로 전체에 포함되지 못하는 ‘일부’”라는 것이 이 책의 기초 문제의식이다. 이 책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추방된 대중들에게 추방상태에서 스스로 ‘탈주’하기를 권한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 「대중의 흐름」은 대중의 정치적 탈주를, 2장 「지식의 운명」은 지식인과 대중의 학문적 탈주를 주장하고 있다(3장 「운동의 선언」은 고병권과 그의 동료들이 쓴 각종 선언을 모아놓은 장이다). 우리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가치의 문제에 대해 비판하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자고 말하고 있는지(대안)에 집중하게 된다.

이 책의 1장에서 저자 고병권은 한국 사회에서 “지난 십여 년간 자행된 대중의 추방현상을 나는 ‘주변화’marginalization라는 말을 통해 이해한다”고 말한다. 근대 사회에서 권력과 자본의 총체인 국가 권력은 그들이 선정한 육성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국민들은 주변으로 몰아내고 그렇게 주변으로 내몰린 국민들은 익명의 대중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익명의 대중은 “국가가 더 이상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자신의 생존이 전지구적 시장의 폭력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는 ‘불안’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저자는 이런 익명의 대중을 ‘비국민’이라고 말하며 “대중들이 비국민적임’을 부인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선언할 때, 이 선언은 역설적으로 ‘비국민’의 양산에 대한 적극적 저항운동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적극적인 탈주의 예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주민등록증 반납과 2008년 여름에 있었던 촛불시위를 들고 있다.

2장은 현장성을 상실한 지식인의 죽음과 앎과 삶의 일치를 말하고 있다. 실천적이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체제의 이데올로기에 흡수되어버린 지식인들은 현장성을 찾고 앎을 통해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대중은 “자기 안에서 학자를 발견하고 ‘학자-되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앎과 삶의 일치는 앎에 대한 맹목적 신앙이 아니라 지행일치(知行一致), “앎을 신뢰하게 만드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현실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체제에서 스스로 탈주한 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것이 대중의 가장 큰 고민이고 이런 고민이 탈주를 가로막고 있다. 탈주한 후의 삶에 대한 대안은 이 책에 없다.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 가지 현상을 파악하고 의문문으로 끝맺는다. 나는 우선 저지르면 각자의 삶에 맞춰 알맞게 변화한다거나 적합한 근거 없이 주장만을 전개하는 것은 단순한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단순한 ‘선동’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한 개인의 소극적 탈주의 실천에 대해서도 언급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공부를 하려는 이에게 공부는 어쩌고 저쩌고 말하는 것보다 ‘스테들러 연필과 삼공노트를 구입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소극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이론가의 이론을 토대로 한국 사회의 현상들을 분석하고 있지만 정작 현상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건드리는 어떤 대안도 내놓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마침 이 책에서 ‘인문학 공부’를 다루었으니 인문학 공부에 대한 한 가지 좋은 의견을 이 서평에 옮긴다.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들을 적어두고 살펴보는 것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기 스스로 추적하는 일,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자기 계발이고 공부가 아닌가 싶다. 사실 약자는 상황을 지배하고 있지 못하며, 그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므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 공부는 당장 필요하고도 유용한 ‘자격증 따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게 공부한 것은 강자에게 흡수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는 자기 찾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오래된 텍스트를 천천히 더듬어 보면서 진정한 자기를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강유원(지음),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뿌리와이파리, 2006, 184-185쪽] 

 이 책 《추방과 탈주》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은 앎과 삶의 일치에 관한 내용이 담긴 156-180쪽까지다. 학생, 직장인, 주부 누구나 다 읽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자신의 앎과 삶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앎과 삶의 일치'에 대해 잘 서술해 놓고 있다.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한핏줄 도서'는 아니지만 이 책에 제시된 대안보다 소극적이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담긴 책이 있다.
강유원,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 뿌리와이파리, 2006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인문학 공부를 하려는 사람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백인 되기'를 꿈꾸면서 흑인은 자기 신체를 '흑인'으로서 발견하고, 그 때문에 자기 파괴적인 괴로움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런 만큼 자기를 긍정하는 해방,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구원은 멀어진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정상성이라는 것, 우리는 우리 시대의 지각구조, 우리 시대의 공통감각sense commun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 여기서 나는 인문학자의 자기 해방 과제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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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5:08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진중권의 이매진>을 리뷰해주세요.
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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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7편이나 되는 영화의 디지털 기술적 측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은 “디지털 기술이 시네마의 내용과 형식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또 과학과 인문학의 담론이 어떻게 영화적 상상력으로 변용되는지 살펴” 보고 있다. 영화가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서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반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디지털 기술이 영화를 어떻게 변화하게 하고 있는지 살펴봄과 동시에 디지털 기술에 의한 우리 일상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영화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하게 하고 있을까? 진짜(실사)와 가짜(그래픽)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진 “현란한 디지털 영상의 미적 효과”와 “하이퍼링크를 형식화한” 등장인물의 비선형적 서사 구조가 영화에 적용된 디지털 기술의 대표적인 성과다. 이 성과가 인터넷과 같은 다른 디지털 기술과 함께 우리의 일상을 변화하게 하고 있다. E-sports에 열광하는 것과 실재 돈을 주고 아바타(avatar)에게 옷을 사 입힘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변화다. E-sports를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E-sports를 관람하고 응원하는 것을 E-sports를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바타에게 옷을 사 입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질적인 거래만이 거래라고 생각하고 현실에 있는 자신만을 인식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그래픽(아바타)에 옷을 사 입히고 욕구를 해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문제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 실제로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의 단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디지털적이다, 아날로그적이다’라는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이런 이해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현상을 볼 때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우리 일상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사람들간에 이해의 단절이 아니라 서로의 삶의 방식과 심성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진중권이 디지털 기술적 측면에서 영화를 말하는 최종 목적도 디지털 기술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책 뒷표지에 “디지털과 테크놀로지는 이미 우리 일상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우린 아직도 이에 맞는 철학을 발명하지 못했다”고 적은 것이라고 본다(물론 저자가 아니라 담당 편집자가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총 37편의 영화를 디지털 기술의 측면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씨네 21>에 1년간 기고한 글을 엮어서 출간한 책이고, 저자의 “이론적 흥미”에 따라 선택한 영화들만 고른 것이기 때문에 독자는 이 책의 목차를 보고 자신이 본 영화에 대한 부분만 골라서 보면 기존의 영화 비평과 다른 방식의 영화 읽기를 볼 수 있다. 독자가 직접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부분을 보면 줄거리도 없고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나오기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만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과 같이 자신의 관심에 따라 영화를 보고 글을 쓴 책을 더 보고 싶다면 인문학과 근대성의 틀로 영화를 본 고미숙의 《이 영화를 보라》(고미숙, 그린비, 2008)를 보면 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디지털 기술은 영화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하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고미숙, <<이 영화를 보라>>, 그린비, 2008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이 책에 나오는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복제시대의 이미지는 이렇게 '그림으로 된 인식', '이미지로 쓰는 텍스트'였다. 하지만 생성이미지는 다르다. 그것은 피사체를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의 상태를 증언할 의무도 지지 않는다.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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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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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시대의 사소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그 동안 역사의 중심 담론이던 왕족, 사대부, 양반이 아니라 군도, 땡추, 왈짜, 기생 같은 “코드”들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의 삶과 의식에 변화를” 초래한 일상 생활사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가 이런 “사소한 코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상화 되어 “쉽게 감지 되지 않는” “작고 시시한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들의 리얼리티”한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의 ‘서설’에서 “민족이나 근대, 민중 등 거대하고 중심적인 코드를 보면서” 그 거대하고 중심적인 코드에만 주목하는 것이 “존재했던 다양성과 구체성을 지워버리고 오로지 단일한 중심만을 내세워 대상을 왜곡시킴으로써 애써 중심을 닮게 하는 현상이야말로 중심적 담론의 독재”가 아니냐고 물으며, 자신은 “어떤 교훈적, 목적의식적, 기념비적 역사관도 믿지 않”고 역사는 “인간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저자 강명관의 역사를 보는 관점 즉, 사관이다.

저자의 사관에 따라 사소한 코드들로 인간의 현재 모습을 이해한다고 할 때, 그 예로 이 책에 나오는 도박 그리고 감동과 어우동을 들 수 있다. “합리성과 확실성이 아닌 비합리성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사회가 도박을 권하고, “성적 향락을 맹렬히 추구하는” 사대부들의 존재와 “그러한 분위기”로 인해 수많은 남자들과 간통한 감동과 어우동이 출현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비합리성은 학연, 지연, 외모지상주의로, 불확실성은 주식과 복권으로 공공연하게 드러나며, 성을 사는 사람과 성의 판매를 주관하는 사람 사이에서 성을 파는 매춘 여성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사소한 코드들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

역사의 사소한 것들에 주목하는 저자의 사관에 따라 이 책을 읽다 보면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들의 생각만큼 인류의 역사가 진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진보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게 되어야 한다. 과학적 진보의 물질적 산물들이 엄청난 효율성과 편리함을 제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와 다르게 신분제도가 사라진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조선시대 북촌과 남촌처럼 돈과 권력에 따라 거주 지역이 달라진다(강남과 강북). 서민의 자식들 대다수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장래 희망이며, 조선시대 서민의 자식들이 과거에 몰리듯 21세기 한국 서민의 자식들도 돈과 권력을 좇아 고시에 몰린다. 판자촌과 임대주택(아파트)이라는 조선시대 반촌 같은 “게토(ghetto)”가 아직도 존재하며, “뉴타운 계획”이 이 게토마저 깨부수고 있다. 이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나오는 조선시대의 일상 생활사 몇 가지에 비추어 21세기 한국 사회를 보았을 때 인간의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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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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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글쟁이들의 바닥이 무너질 것 같은 서재나 개인사()가 아니라 그이들의 을 중심으로 저술가로서의 삶과 글쓰기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메모하여 발전시킨 생각들을 글로 쓰고, 그 글들을 책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저술가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저술가들의 이야기를 포함해서 몇 가지 출판 관련 정보를 담고 있어 출판계에 관심이 있다면 참고할 만 하다. 저술가들의 출판 기획 아이디어와 출판 담당 기자인 저자 구본준 기자가 가지고 있는 출판 관련 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보가 눈에 띄게 새롭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되새겨서 좋은 것들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하는 저술가들이 한결같이 정확하게 독자를 설정하고 자신의 글이 어느 지점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출판의 최종 목적이 독자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저술가들이 자신의 글을 책으로 낸 후에 어떻게 책에 담긴 내용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늘리는지 볼 수 있다. 책이 책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구본준의 「인터뷰 후기」는 책의 서문이 없는 이 책에서 서문의 역할을 할 수 있었는데 가장 뒤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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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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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 독서의 현대적 의미에 대하여이 책의 타깃 독자는 청소년(혹은 청소년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진 사람)이다. 이 책에서 청소년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대체로 설득력 있게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독서의 목적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깨달음이자 주장은 책 읽기를 포함한 인간 삶의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본과 융합한 자유주의가 판 치는 세상에서 책의 고유한 가치들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의 시대’를 살면서 자본을 차치하고 책의 숭고하고 계몽적인 가치만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이권우처럼 책 읽기가 타고난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이자 공자 같은 성인이 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도 속지 않을 어색한 사기다. 계급사회에서 ‘신분’을 대뜸 들이대며 ‘공자되기’라는 이상한 표현을 쓰는 것이 어색하고, 51쪽에서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이 드물”다고 말할 거면서 책의 초두에 책을 읽는 것이 신분 상승의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사기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시험이 아니라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을 말해보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진실이 금방 탄로날 거짓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75쪽에 인용한 이중한 선생의 글이나 173쪽의 주장 같이 솔직한 것이 낫다.

“나는 지난 60년간 책읽기와 책사기를 즐겨 왔다. 그것 때문에 더 잘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지루하게 살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사는 데 특히 유리한 조건이나 대우를 받은 것도 없다. 그저 스스로 사는 것에 대한 희로애락을 좀더 폭넓게 느껴 왔다고 말할 수는 있다.” (75쪽)

“책읽기가 행복하다는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책읽기는 고통이다. 하나, 고통 없이 우리가 어찌 성장할 수 있는가, 라고. 새로워지고 높아지니 비로소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다. 과정은 고통이나 그 결과는 행복한 것이 책읽기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173쪽)

책 읽기에 대해 위와 같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흰 피 내뿜으며 쓰러져 갔을 나무의 정령들에게” 사과하는 것이며, 이 책을 읽는(을) 독자들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편집의 관점에서 보면 각 장(章)에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과 그림을 설명하는 글의 위치가 적절하지 않다. 각 장의 처음에 배치해 그 장의 특징을 미리 보여주거나 각 장의 마지막에 배치해 정보성 그림과 글의 역할을 했다면 읽던 흐름을 끊고 그림을 보거나 흐름대로 읽고 페이지를 다시 넘겨 그림을 봐야 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표지디자인의 수준이 형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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