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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들은 심화된 경쟁에서 승리하는 소수만이 부를 독점하고 독점한 부를 자기 강화의 과정을 통해 불려나가는 불평등의 사회를 ‘승자독식사회’라고 정의하고 경쟁이 심화된 원인을 2장 「승자독식시장의 출현」과 3장 「왜 승자독식사회는 멈추지 않는가?」에서 보여주고 이후의 장에서 교육계, 법조계, 의료계, 출판계, 문화 · 스포츠계에서의 승자독식현상을 검토, 진단, 평가하고 있으며 마지막 11장 「승자독식사회를 벗어나기 위하여」에서 제목 그대로 승자독식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교육계의 승자독식현상을 진단한 8장 「학벌 전쟁」을 집중적으로 읽었으며 이 서평에서 모든 분야에 대해 언급하고 통찰하려 하기보다 학벌 전쟁에 집중해 다른 분야까지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시야를 마련해 볼 생각이다.
저자들의 주장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핵심은 ‘비효율’이다. 저자들은 경쟁이라는 사회적 기제는 분명히 더 좋은 질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지만 현재 사회는 무분별한 경쟁의 ‘심화’로 인해 경쟁에서 승리하고 큰 사회적 보상을 받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전체 사회적인 입장에서는 선별의 과정을 통해 좋은 질로 얻은 이익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승자독식사회는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소수의 승자가 가져가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매력으로 많은 사람이 경쟁에 몰리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생산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이 감소하기 때문에 전체 사회로서는 손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언급하는 사회 각 분야의 승자독식현상은 한국 사회에 살다보면 전혀 신선하지 않다. 오히려 승자독식현상은 지금 한국 사회 전반에 비일비재해서 오히려 심각함보다는 일상적인 푸념거리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소수만 승리하는 경쟁에 뛰어드는 걸까. 좋은 대학 입학 이후엔 토익 고득점과 삼성 입사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 그 많은 대학생들이 경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회의 지위 기제, 교육의 왜곡, 기회의 불평등 등 많은 문제를 내재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저자들이 그 원인의 하나로 제시하는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의 ‘워비곤 호수 효과Lake Wobegon Effect’ 즉 “사람들은 자신을 평균 이하로 생각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근거 없이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생각하는 손쉬운 해결책을 택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저자들은 이 워비곤 호수 효과가 인간의 인지 능력 한계와 관련 있다고 하는데 이는 타당해 보인다. 분명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소수다. 예컨대 삼성에서 뽑는 신입사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한정은 지원하는 대학생들의 기껏해야 몇 %도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너도 나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겠다고 경쟁에 뛰어들고 대학들은 이런 흐름에 뒤쳐질까 최고경영자 과정을 위해 학생들의 등록금을 더 많이 걷어 새로운 건물 짓기에 바쁘다. 과연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고 경쟁에 뛰어든 대학생들은 그 경쟁의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인간의 인지 능력 한계와 망각의 과정,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어떤 주체성 없이(기껏해야 돈이나 지위를 목표로)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다
저자들은 “사람들은 나중에 받는 보상과 벌보다는 현재 받는 보상과 벌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인데, 이는 심리학에서 널리 인용되는 원리다.”라고 적고 있는데 한국 사회의 대학생들은 이와 반대로 현재 엄청난 등록금을 학교에 내고 있으면서 나중에 벌어들일 수 있는 불확실한 가능성에 목매고 있다. ..
그러나 이런 현상은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사설 학원을 24시간 운영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불필요한 경쟁을 부추기고, 영어공교육을 통해 영어 사교육 시장 확대에 불을 지피고 있으며 치솟는 대학 등록금과 다수의 빚쟁이 대학생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현상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조급한 학생들이 승리하는 소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적은 보수로 생활하는 다수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부가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을 통해 오히려 사회 조직 전반의 폭을 좁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육 정책의 문제에 대한 저자들의 대안은 아래와 같다.
1. 모든 주민에게 초등학교와 중등교육을 보장
2. 현대의 노동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전문기술교육 실시
3. 엘리트 교육 보조
4. 등록금 지원
4가지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은 ‘교육 기회의 확대’다. 돈 없는 사람들에게 교육 받을 수 있게 돈을 지원해 주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대책일 것이다. 또한 우수한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함으로 전체 사회 생산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대안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들은 교육정책 안에서도 효율성과 형평성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다른 분야에서 언급하는 대안들은 조세 정책 변화에 치중한 경제학자로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교육 정책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