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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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시대의 사소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그 동안 역사의 중심 담론이던 왕족, 사대부, 양반이 아니라 군도, 땡추, 왈짜, 기생 같은 “코드”들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구체적인 일상의 삶과 의식에 변화를” 초래한 일상 생활사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가 이런 “사소한 코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상화 되어 “쉽게 감지 되지 않는” “작고 시시한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들의 리얼리티”한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의 ‘서설’에서 “민족이나 근대, 민중 등 거대하고 중심적인 코드를 보면서” 그 거대하고 중심적인 코드에만 주목하는 것이 “존재했던 다양성과 구체성을 지워버리고 오로지 단일한 중심만을 내세워 대상을 왜곡시킴으로써 애써 중심을 닮게 하는 현상이야말로 중심적 담론의 독재”가 아니냐고 물으며, 자신은 “어떤 교훈적, 목적의식적, 기념비적 역사관도 믿지 않”고 역사는 “인간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저자 강명관의 역사를 보는 관점 즉, 사관이다.

저자의 사관에 따라 사소한 코드들로 인간의 현재 모습을 이해한다고 할 때, 그 예로 이 책에 나오는 도박 그리고 감동과 어우동을 들 수 있다. “합리성과 확실성이 아닌 비합리성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사회가 도박을 권하고, “성적 향락을 맹렬히 추구하는” 사대부들의 존재와 “그러한 분위기”로 인해 수많은 남자들과 간통한 감동과 어우동이 출현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비합리성은 학연, 지연, 외모지상주의로, 불확실성은 주식과 복권으로 공공연하게 드러나며, 성을 사는 사람과 성의 판매를 주관하는 사람 사이에서 성을 파는 매춘 여성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사소한 코드들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한다.

역사의 사소한 것들에 주목하는 저자의 사관에 따라 이 책을 읽다 보면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들의 생각만큼 인류의 역사가 진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가 진보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게 되어야 한다. 과학적 진보의 물질적 산물들이 엄청난 효율성과 편리함을 제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와 다르게 신분제도가 사라진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조선시대 북촌과 남촌처럼 돈과 권력에 따라 거주 지역이 달라진다(강남과 강북). 서민의 자식들 대다수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장래 희망이며, 조선시대 서민의 자식들이 과거에 몰리듯 21세기 한국 서민의 자식들도 돈과 권력을 좇아 고시에 몰린다. 판자촌과 임대주택(아파트)이라는 조선시대 반촌 같은 “게토(ghetto)”가 아직도 존재하며, “뉴타운 계획”이 이 게토마저 깨부수고 있다. 이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 나오는 조선시대의 일상 생활사 몇 가지에 비추어 21세기 한국 사회를 보았을 때 인간의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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