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3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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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놓친 화합

의심이란 왜 생기는 걸까? 포장마차에서 한 남자는 끊임없는 의심으로 화합의 현장에서 구경꾼이 된다. 그게 변두리에 남게 된 이유는? 의심, 혹은 깔봄. 말 그대로 진정성의 결여다. 진정성은 어디서 생기는가? 화합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처음보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생기는가? 그들의 화합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황혼

자신의 욕망 뿐 아니라 타인의 욕망, 특히 늙은 사람의 욕망을 마주 한다는 건 참 곤혹스런 일이다. 늙으면 욕망도 사라지는가. 늙었음에 욕망만 살아 있다면, 그것이 과연 추한 것인가? 나의 늙음이 멀지 않은 일인데, 난 여전히 그것을 남의 일처럼만, 나이들어 가지는 나의 욕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생각은 않는다.

 

추적자

그 자를 추적하는 것이 삼형제에게 각각 다른 의미였지만, 무엇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강력하게 끌려가는 것도, 혹은 스스로 그를 추적하는 것도 쉽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허무한 일인 듯 싶다. 쫓는 자나, 쫓기는 자나 쫓는 다는 거, 그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한다는 건 허망하고 허망할 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여자의 삶, 그것을 박완서는 음모라고 했다. 그렇다면 음모를 꾀하는 자는 누구인가? 여자와 남자. 모두 이다. 음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음모를 만천하에 밝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모르지. 나 역시 그 음모의 피해자일 수 있으니. 칼을 벼리고 사는 일이 어렵다. 그저 파란 약을 먹고, 모른체 살아가는 수 밖에.

 

육복

남자의 해외 근무가 계속 반복되는 걸 보니 가까이 그런 경험이 있었던 듯 싶다. 그 때 그랬지. 남자들이 외화를 벌겠다고 외국에서 일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벌어준 외화를 알뜰살뜰 모으거나, 혹은 흥청망청 쓰거나, 그랬지. 행복이란 뭘까? 남자도, 여자도, 행복하고는 거리가 먼데, 여자가 이쁜 양옥에 살면서 남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긴 걸까?

 

침묵과 실어

그는 끊임없이 의미를 묻게 한다. 늙음, 병듦, 그리고 가족, 살아 있음, 혹은 죽어감. 명예, 돈,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참 많은 걸 겪어내고, 많은 게 필요하다. 화자에게 필요했던 건 뭘까? 나름의 인정, 명예. 화자가 윤상하를 보면서 느꼈던 건 뭘까? 그게 편집회의에서 자신이 했던 그 비릿한 행위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천변풍경

늙어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퇴직한 노교수. 백수회라는 지난 세월의 명예와 물질을 배경으로 큰 소리치며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어울리지 못하지도 못하는 배교수.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허망하고 참담하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가 중요한 이유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허망하고 참담한 이유는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 외로움을 떨치는,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쥬디 할머니

자식 다섯을 너무나 잘키워 동네의 부러움과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쥬디 할머니. 그 할머니가 알고보니 누군가의 세컨드였다는 것. 할머니는 다시 이사를 꿈꾸고, 그의 사랑을 온전히 받던 쥬디의 앨범이 방바닥에 뒹구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렇다. 모든 사랑은 그렇듯 이기적이다. 자기에게 소용 닿는 한, 의미가 있을 뿐!

 

꽃지고 잎 피고

심심답답증! 아무것도 열정을 가지고 덤빌 일이 없는 심심답답증의 주부의 이야기다. 훈이 엄마가 남편의 친구의 부인에게 느꼈던 건 뭘까? 자신을 찾고, 스스로 당당하며, 자신의 일을 즐기며 사는 것이 그저 부러울 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를 찾아서, 스스로 당당하게 살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실을 보는 빨간약이다.

 

로열박스

모든 게 다 갖추어져도 마음과 마음이 닿지 않으면, 한없이 슬프고 처량한 게 우리 인생이다. 황금으로 발라진 집에 산다고 해도, 그 곳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것의 중요함!

 

무중

고급 맨션 1층에 사는 나. 어느날 안개를 보던 옆집 남자를 보고, 알 수 없는 쫓김에 늘 쫓기던 여자는 옆집 남자를 쫓는다. 쫓기는 자였던 그는 여자의 쫓음에 견딜 수 없어 자수를 했고, 여자! 사람은 늘 쫓고, 쫓기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무엇에 쫓기는 건가? 왜 편안할 수 없는 건가? 무엇때문에 불안한가? 내가 쫓는 건 무엇인가? 무중이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광고 회사에 다니던 그. 우연한 성공으로 승승장구. 아파트를 마련해 아내와 단란히 살고 있다. 그의 아파트에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곧 아파트의 안락함에 길들어지고, 아내는 집을 나간다. 그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 줄 것은 무엇인가?

 

아저씨의 훈장

아저씨는 자기 자식 대신 집안의 장손을 데리고 피난을 간다. 그리고 자기 자식 대신 조카를 돌보며 살았다. 조카는 성공했고 아저씨는 내쳐졌다. 그리고 쓸쓸히 죽어간다. 그 아저씨의 마지막 말은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저씨의 의무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자식을 찾는 건, 본능, 조카를 살린 건 교육받은 건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후회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

 

무서운 아이들

학교 교사인 나. 반 아이들은 을희라는 아이를 따돌린다. 세상에 차갑게 마음을 닫고 있었던 나, 을희를 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뭔가 움트는 마음으로 을희를 보듬는다. 상처를 사랑으로 씻을 수 있는 건가? 장발장이 코제트를 맡으면서 느꼈던 그 사랑으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처럼.

 

소묘

갓 결혼한 새댁. 완벽한 시어머니 밑에서 완벽한 시집살이를 한다. 그 시어머니는 오로지 보이는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다. 보여지는 것이 왜 중요한가? 실제는 그러하지 않은데, 보여지는 것 때문에 불행하고, 쓸쓸한데..... 나보다 남이 주인이 삶을 사느라 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주로 79년부터 83년까지의 작품들이다. 경제개발의 광풍이 지나가고 난 뒤의 허망함, 쓸쓸함, 노쇠함들이 다루어진다. 전작에서 주로 살만한 집, 혹은 살려고 노력하는 집의 주부들의 이야기가 다수였다면 이 작품집에서는 좀 더 다양한 화자들이 나온다. 독신녀, 은퇴남, 시어머니, 혹은 갓 취업한 취업남, 새댁, 그리고 늙은이들. 며느리에 얹혀 사는, 혹은 누군가의 세컨드로 살았기에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신경쓰는, 그리고 또 누군가의 젊은 세컨드. 그들은 모두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묻고 있다. 이대로 살기에는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고 허망하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열정과 열망으로 달아오를 수 있는 그런 삶이 중요한 게 아니냐고,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 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하다. 아니,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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