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여름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2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겨울 나들이

이북에 노부모와 아내를 남겨두고 어린 딸하나만 업고 내려온 빈털터리 화가와 사는 아내는 딸의 초상을 그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울컥하여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만난 며느리와 시어머니, 화자는 그들을 통해 자신이 헛살지 않았음을 확인받는다. 두 고부의 맞잡은 손 위에 화자가 자신의 손을 보태면서 느꼈던 것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난 격한 공감을 얻지 못했다. 남남이지만 이렇게 한 마음으로 얽히는 것? 핏줄보다는 함께 한 시간이 주는 연민?

 

저렇게 많이!

가발을 쓰고 화려한 외출을 한 날에 만난 대학때의 연인. 그 연인은 돈 잘보는 역술인의 남편이 되었고 나는 과외선생이 되었다. 다들 돈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을 꿈꾸며 헤어졌던 가난한 연인들은 돈은 없지 않으나 마음이 허한 그런 삼십대가 되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확인한 것은 자기와 같은 인간들이 저렇게나 많이 있다는 것. 그게 위안이 될까? 절망이 될까?

 

어떤 야만

푸세식에서 수세식으로 화장실이 바뀌던 그 시절. 먼저 앞서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그들을 쫓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야만이라고 몰아세웠고 그 몰아세움이 그들을 더욱특별하게끔 만드는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돈! 자본주의가 우리의 온 몸과 세포에 낱낱이 스며들어 자본주의로 팽창했던 그 시절이었다.

 

포말의 집

돈벌로 미국간 남편. 남겨진 아내는 무료하다. 한가하다. 답답하다. 싫증난다. 그러다 건축전이 열리는 한 전시회에서 포말의 집이라는 집을 설계한 청년과 달달한 만남. 그러나 그것역시 포말처럼 사라진다. 포말이란, 결국 그렇게 꺼져 버리는 것, 사라지는 것 아닌가. 남편이 없는 빈집에서 병든 시어머니와 말없는 아들과 사는 아내는 아마 그렇게 스스로 포말이 되어 가는 것 아닌가.

 

배반의 여름.

무언가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어찌 그리 맥없는 짓인가. 아버지의 세번의 배반. 물, 수위, 그리고 전구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건 뭘까? 스스로를 믿어라! 진실을 본다는 건 그만큼 고되고도 고독한 일이 될 것이다.

 

조그만 체험기.

억울함. 억울해서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 억울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힘없는 자가 주인이 되면, 아니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구분이 사라지면... 그럼 힘은 어디서 생기지? 돈! 돈! 그렇구나. 돈이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이 와야 할텐데....

 

흑과부.

박완서 소설의 치명적인 매력은 인간의 이중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다. 그의 그런 파헤침을 따라가다보면 나의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참, 이렇게도 낱낱이 들여다보며 사는 삶도 힘들었겠다 싶다. 표피만 보고, 표피에만 머무르며, 표피적인 생각만 하며 사는 사람들.... 왜 그럴까? 능력의 한계일까? 그것이 편해서일까?

 

돌아온 땅

월북한 삼촌 때문에 유학이 좌절된 딸과 함께 고향을 다녀오다 버스에서 한 취객을 보다. 그 취객은 젊은 여인에게 노래를 시키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취객을 나무랐던 다른 승객에게 '너도 빨갱이지?' 삿대질 하던 그 순간에 승객은 모두 얼어 붙는다. 뭘까? 이런 공포. 취한 상태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모두를 빨갱이라 몰아 부치는 그 취객. 박정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안에 그 공포. 공포. 공포. 그저 멀미나 하는 수 밖에. 그 공포에 무너지는 자신을 차마 보지 못해.

 

상.

상을 받고 일그러지기 시작한 감초선생. 상이란 뭘까. 인정받고 드러냄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인정받고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가. 인정을 위해 비교를 하고 경쟁을 한다. 하지만 비교하고 경쟁해서 이기고 하는 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인정은 아닐테다. 시기심, 질투심 그 근원은 뭘까? 모두가 인정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꼭두각시의 꿈.

재수생, 그리고 그의 친구 성길이와 그 누나. 그들은 모두 욕망의 꼭두각시였다. 성길의 누나는 상처로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깨달았고, 그 사건은 성길과 재수생 모두 자신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욕구를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욕구의 주인이 되는 것.

 

여인들.

해외 파견 근무를 하는 남편들의 아내들의 이야기. 아내들과 남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일까? 단기간의 안정, 돈! 말라 비틀어져 딱딱하게 굳어가는 여인들의 심장.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두 할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미군에게 자신을 바치러 갔던 할머니와 숫총각 딱지를 떼어 주었던 할머니. 그들이 했던 행위의 의미는?

 

낙토의 아이들

지질학과 시간강사 남편과 부동산 투자를 하는 아내. 남편은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되었던 답사와 강의를 아내와 아내의 사업 파트너인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빼앗긴채 스스로 위축된다. 비교하고 경쟁하며 순수를 잃어버리는 아이들. 무엇인가에 정신을 계속 홀리며 산다. 그렇게 꼭두각시처럼 수분을 잃어간다.

 

집 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남편이 갑자기 연행되었다. 아내는 병든 시어머니와 아이들과 남편의 부재를 견뎌야 한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뿐, 그 부재의 시간은 오히려 자신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그 동안의 질서와 화평과 교양을 깨뜨리는 시간이 되었다. 아내가 기대했던 살맛은 무엇일까?

 

꿈과 같이.

대학때의 전적 때문에 취업을 위한 서류 준비를 구비할 수 없었던 한 실업자의 이야기다. 그의 전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지갑과 주머니에 손을 대는 장면이 섬찟하긴 했지만, 그 내면에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

공항에서 무대소 아줌마를 만나다. 나름의 자존심. 자존심에도 정답이 있는가? 스스로 자존하고 지존하면 되는 것이지. 무대소 아줌마는 그런 자존을 스스로 찾아 지켜 나가는 삶을 산 것으로 화자는 말한다. 우리의 삶을 생동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찾는 것 뿐이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 사이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애달픈 몸짓들이 나온다. 저렇게 많이! 포말의 집. 낙토의 아이들. 여인들.

=진정한 살맛이란 무엇인가? 집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 흑과부.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찾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배반의 여름. 꼭두각시의 꿈.

=인간의 비릿한 이중성. 차마 눈 뜨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 밖에 없는. 돌아온 땅. 어떤 야만. 흑과부. 상.

=그리고 분단의 아픔. 돌아온 땅. 겨울 나들이.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