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에서 선대(할머니)의 뒤를 이어 필경사를 하게 된 포포. 문자, 이메일로 소통하는 시대에, 남의 편지를 대신 써 준다니, 일본스러운 감성이다. 더구나 시모가 글씨를 잘 쓰라고 글씨학원에 등록해주는, 글씨를 예쁘게 못 써서 고민하는 에피소드는 시대착오라고 느껴졌다.
조금 더 읽어보니, 익명으로 쓰고자 한 절연장, 서로 사랑했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 남자가 쓰고 싶은 안부편지 등은 살면서 만난 인연들을 소중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 느껴진다.
뒤 표지의 문구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츠바키 문구점의 기적‘처럼.
책상위 다양한 펜 중 만년필을 골라 잉크의 농담을 느끼며 글씨를 쓰고 싶어진다.

"나 말이에요. 앞으로 남은 인생은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고살고 싶어요. 거짓말은 종류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자신에게 하는 거짓말. 또 하나는 상대에게 하는 거짓말. 그 여자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게 말이죠, 용서가 안 돼요. 내가 싫으면 싫다고 똑바로 의사표시를 하면 좋았을걸그래서 내 쪽에서 먼저 재단가위를 든 거예요." - P247

두 사람을 강하게 묶어두었던 우정이라는 이름의 끈 그것을 익명씨 쪽에서 끊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익숙하고 타성에 젖은 관계가 계속된다.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절연장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상반되는 마음을 거울글씨로 전하고 싶었다. - P255

생각해보니 자신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손과 손같은 간단히 보이지만, 등도 엉덩이도 거울에 비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보다 주위 사람이 더 많이 나를 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이렇다고 생각해도 어쩌면 타인은 더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낮에 마이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 P266

나뭇잎들이 나와 모리카게 씨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랬으면좋았을 텐데,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말이죠.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답니다. 깨달았다고 할까, 딸이 가르쳐주었어요.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손에 남은 것을 소중히 하는 게 좋다는걸요. 그리고・・・・・…." - P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택을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
만약 에이나르가 릴리라는 정체성을 발견했을 때 게르다가 그를혐오하거나 인격을 손상시키는 대응을 했더라면 릴리로서의 정체성은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다시 남자로 돌아와 자신을 안아주기를원하거나 분노 표출을 선택했더라면, 에이나르는 과거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며 한 명의 남성 작가로서 살아가는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릴리와 에이나르의 삶을 모두 공존시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게르다 덕에, 릴리와 에이나르는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릴리로서 숨 쉴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어준 단 한 사람, 게르다가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P50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에밀 졸라(Emile Zola)는 마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주기도 했다. "그림에서 철학적 함의를 찾아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좀 더 음탕한 작자들은 외설적인 의도를 운운하면서 흠집을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마네 당신은 그런 대중들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당신들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다‘라고." - P75

인간이 갈등을 가지는 원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없다면 갈등을 가지게 될 이유가 없다.그렇기에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무엇을 바꿔나갈 것인가에 대해 살펴본다면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과 가까워질 수 있다.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는 나, 너, 관계, 그리고 환경이다. - P111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남긴 유명한문구, ‘타인은 지옥이다‘는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문장은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접근이 아니라 타인이라는존재가 내가 나다워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타인은늘 자신들의 판단과 자신들의 기호에 나를 가둔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거나 정의내리기 어렵게 만들며, 내 존재가 타인에 의해 부정당할 때 타인은 지옥이 된다. - P139

우리는 지금껏 사회와 부모, 주변인이 원한 많은 것들을 추구하며살아왔다. 이것이 맞는 길이라고 배웠고, 이것이 좋다고 들었다. 그런데그 결정과 믿음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의견만을 따라온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 죽음을 직면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이 살 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이를 통해 세상과 누군가의 사용에의해 쓰이는 존재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주체성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존재인지 생각해 볼 시간이다. - P143

실제로 사회적으로는 용납되지 않거나 인정되지 않은 욕구를 예술과 같은 다른 활동으로 바꾸어 충족하는 것을 승화(sublimation)라고 한다. 승화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개념으로서 불안으로부터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젠틸레스키는 타시와 사회에게 표출되지 못했던 원망, 분노, 그리고 살인의 욕구 등의 부정적 감정들을 미술작품이라는 가치 있는 형태로 변화시킨 것이다. - P174

풍크는 불안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마음속에 억압하여 두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닐 것이라고 부정하지도않았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그림에 옮겨 담았다. 불안한 마음이 날뛰지않도록 캔버스 위에 붙잡아 둔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 불편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나면 정리가 되는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감정은 알아차려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치유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아씨들 (영화 원작 소설) - 완역, 1·2권 통합 걸 클래식 컬렉션 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작은 아씨들>이 이렇게 쪽수가 많았나 싶을 정도로 벽돌책이다. 사다 놓고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게로 읽지 않았다. (구입한 책은 언제나 읽을 수 있다는 착각아래)
잘 피해 왔다고 생각한 코로나와 만났다. 증세가 많이 심하진 않아서 하루 이틀은 몸살감기 앓듯이 앓고 방안에 격리되어 있는 시간에 책을 집어들었다. 700여 쪽이나 되는 책을 다 읽었다.
새로 개봉한 영화도 생각나고,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조와 로리가 결혼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조는 로리와 결혼하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시작할 때 나이가 워낙 어린이였어서, 나이가 들면서 성장하는 에이미도 다르게 보였다.
또다른 벽돌과 만나야 하는데, 그 벽돌 2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도 위쪽 세상에서는 북극성이 변치 않는 지표가 되잖아요.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기준처럼. 다들 그 기준을 따르는 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믿고 살죠. 그런데 적도 아래 세상에서는 정상의 기준이 다르더라고요. 호주 브리즈번의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전생각했어요. 사막에 밤이 찾아와 길을 잃었을 때, 별이 이야기하는 방향은 각각 다를 수 있는게 아닐까, 하고요. 눈이 내린 산속을 헤맬 때, 북반구에서는 북극성을 찾겠지만 남만구에서는 희미한 남극성을 바라봐야겠죠. 도넛이 중간이 동그랗게 뚫려 있는게 당연하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넛은 원래 구멍이 없는 빵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산다는 기준이 하나는 아닐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 P120

여름 장맛비는 영원할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이 비도 언젠가 그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한한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오늘도 한 발자국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었다. 지구 어떤 밤을 버티면서만 살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밤의 축제를안고 춤추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유진은 생각했다. 태풍은 결국 힘을 쓰지 못한 밤이었다. - P123

‘마리야. 괜찮아, 그냥 다.‘
지훈은 눈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하기에, 감정은 너무 깊고 오묘하고 복잡하니까. 마리는 지훈의 투명하고깨끗한 눈빛이 두려웠다. 그 눈빛에 자신도 투명해질 것만 같았다. 마리는 여전히 비밀의 수렁을 헤매는 중이었다. 헤어 나올수 없는 깊이의 수렁에 지훈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마리는 말없이 지훈을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주먹을 쥘 듯한 힘은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 P145

"...... 반딧불이는 1년 중 불빛을 내며 살아 있는 시간이 고작해야 2주래. 열네 번의 밤 동안 빛을 발하다가 우주에서 사라지고 말지. 인생에서 진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그렇게 자주 있지 않다는 얘기처럼 느껴지더라....... 우리가 진실을 이야기하는밤이 인생에서 열네 번은 될까?"  - P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용 메뉴판이 뭐야?"라고 묻는 바람에게 이모가 말했다.
"아메리카노는 ‘까만 커피‘, 샷 추가는 ‘진하게‘, 더블 샷추가는 ‘진하게 더 진하게.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얼음동동까만 냉커피, 카페라테는 ‘커피에 우유많이‘. 카푸치노는 커피와 우유 거품 그 위에 계핏가루 톡톡‘."
"와! 그럼 나는 지금 ‘커피에 우유 많이‘를 마시는거네?"
"나는 ‘까만 커피 진하게 더 진하게‘를 마시는거고."
두 사람이 키득키득 소리 내어 웃었다. - P104

"카페 올제? 카페 올 때라는 사투리?"
이모가 아니라는듯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저는 ‘내일‘의 순우리말이래 오늘도내일도 오시라는 뜻도 있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길 바란다는 의미도 있다. 이름 참 예쁘지 않아? 카페 올제 그런데 더 멋진건올제 앞에 쉼표가 찍혀 있다는 거야."
"무슨뜻이야?"
‘제‘도 그렇지만 그 앞에 착한 쉼표도 이상했다. 궁금한것은 못 참는 이모답게 카페 주인에게 그뜻을 물었다.
"내일은 반드시 오늘을 거쳐야 하잖아. 그러나 내일로기전에 잠시 쉬어 가란 의미래, 카페 사장님 아이디어 진짜멋지지 않냐? 어떻게 내일이라는 단어 앞에 쉼표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 세상에는 천재들이 너무 많아"
내일로 가기 전에 잠시 쉬어 가라. 문장에도 악보에도 쉽표가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은 문득 인생에도 누군가 콕 쉼표를 찍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P105

"내가 행복을 주기 전에, 내가 행복한 순간을 먼저 떠올렸다고 했잖아.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될수 있는거야. 나는 신학, 문학, 사회 복지, 심리학, 의학보다 참신하게 디자인한 물건을 볼때 더 행복하다고요." - P132

"인디언들에게는 일반 사람들에게 없는 세 가지 특징이 있어. 그 첫 번째가 바로 기우제를 지내면서 곧바로 비가 오지 않아도실망하지 않는 거야."
허공에 새하얀 검지와 중지가 나타나 브이를 그렸다.
"둘째는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고."
파란 티셔츠가 마지막으로 약지를 들어 보였다.
"셋째는 언젠가 반드시 비가 내릴 거란 믿음을 잃지 않는다는 거지. 이 세가지가 인디언들만이 가지고 있는 진짜 힘이야." - P170

나는 사랑을 그렇게 생각했어. 뜨겁고 열정적이고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고. 그런데 내 사랑은 너무 잔잔했어. 그건 어쩌면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20대의 내가 해석한 사랑은 그런거야.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잇는 삶의 어휘는 너무 빈다약했거든. 시간을 더 흘려보낸 뒤에야 인생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어. 나라는 인간을 해석할 수 있는 어휘들이 많이 늘어났다고나 할까. 그 덕분에 사랑의 정의도 훨씬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어.
후회? 후회는 회전목마 같은 거야. 끊임없이 되돌아오거든. 어떤 날은 ‘그래, 내 선택이 옳았어.‘라고 자신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그래 내 선택이 옳았어.‘라고 자신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땅을 치고 후회하지. 바람아, 어른이된다는 것은 말이야.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후회 자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그것 역시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그 순간을 결정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결정한 일에 후회가 남을까 두려워하지 마. 그것마저 받아들여, 그리고 잊지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내가 지난 번에 말했지. 술취한 등산객이 백오산 돌탑 무너뜨렸다고. 거기에 새 돌탑이 다시 생겼어. 그사이 사람들이 하나둘 새로 쌓아 올린 거지. 원래 무너지고 다시 쌓아 올리고 이 지나난한 일을 반복하는 게 인생이야. 멈춰 서는 게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 236~237쪽 - P2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