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위쪽 세상에서는 북극성이 변치 않는 지표가 되잖아요. 절대적이고 변치 않는 기준처럼. 다들 그 기준을 따르는 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믿고 살죠. 그런데 적도 아래 세상에서는 정상의 기준이 다르더라고요. 호주 브리즈번의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전생각했어요. 사막에 밤이 찾아와 길을 잃었을 때, 별이 이야기하는 방향은 각각 다를 수 있는게 아닐까, 하고요. 눈이 내린 산속을 헤맬 때, 북반구에서는 북극성을 찾겠지만 남만구에서는 희미한 남극성을 바라봐야겠죠. 도넛이 중간이 동그랗게 뚫려 있는게 당연하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넛은 원래 구멍이 없는 빵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산다는 기준이 하나는 아닐지도 모르는 거라고요."  - P120

여름 장맛비는 영원할 것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이 비도 언젠가 그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한한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오늘도 한 발자국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었다. 지구 어떤 밤을 버티면서만 살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밤의 축제를안고 춤추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유진은 생각했다. 태풍은 결국 힘을 쓰지 못한 밤이었다. - P123

‘마리야. 괜찮아, 그냥 다.‘
지훈은 눈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불완전한 언어로 표현하기에, 감정은 너무 깊고 오묘하고 복잡하니까. 마리는 지훈의 투명하고깨끗한 눈빛이 두려웠다. 그 눈빛에 자신도 투명해질 것만 같았다. 마리는 여전히 비밀의 수렁을 헤매는 중이었다. 헤어 나올수 없는 깊이의 수렁에 지훈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마리는 말없이 지훈을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주먹을 쥘 듯한 힘은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 P145

"...... 반딧불이는 1년 중 불빛을 내며 살아 있는 시간이 고작해야 2주래. 열네 번의 밤 동안 빛을 발하다가 우주에서 사라지고 말지. 인생에서 진짜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그렇게 자주 있지 않다는 얘기처럼 느껴지더라....... 우리가 진실을 이야기하는밤이 인생에서 열네 번은 될까?"  - P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