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달팽이 집 같았다. 가운데에는 집이 있었다.
나는 내선형 원을 그리면서 멀리 떨어진 가장자리까지 가려고 애썼다. 그러던 여름 어느날, 그 일이 벌어졌다.

처음 와본 곳이었다.
이 순간 이후, 모든 것이 영원히 달라질 거라는 걸느낄 수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숨이 가쁠 정도로 뭔가 벅차 올랐다.
그러느라 가장 큰 파도를 보지 못했다.
깜짝 선물처럼 해변에 도착한 파도를.
에스더!!! 에스더 앤더슨

나는 파도는커녕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삼촌 역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웬지 모르게 떨렸다. 추워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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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거야! 보통 읽어본 책이 아닌, 내용을 모르는 책을 사잖아. 그중에서도 전혀 기대하지 않고 펼쳤는데, 마음을 쏙 뺏길때가 있지? 내 인생 책도 그랬어. 작은 서점이었는데, 원래 사려고 했던 책이 없어서 그냥 둘러보던 참에 만나게 됐지. 운이 좋
"그게 손님한테 어떤 메뉴판을 내줘야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모든 책이 놓인 커다란 서점에 갔다면 원하는 책을 샀겠지. 그럼 인생 책을 못 만났을 수도 있잖아. 그런 우연적인 만남을 메뉴판에 담고 싶었어." - P103

"결말은 네가 꿈을 이루고, 이루지 못하고로 정해지는 게 아니야. 네가 느꼈던 감정과 경험들로 만들어지지 목적을 이뤄도 슬픈 결말일 수 있고, 이루지 못해도 행복한 결말일 수 있어."
"그럼 좋은 결말이란 건 뭔데요?"
보름의 질문에 문이 처음으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떠한 질문에도 술술 답하던 그가 이 물음만큼은 정말 답이 없다는듯이 조심스레 입술을 움직였다.
"뒤돌아봤을 때, 후회가 적은 게 좋은 결말 아닐까? 고생했던경험을 떠올리면서도 추억에 젖어 웃음을 터트리곤 하잖아. 그땐 그랬지 하고." - P132

"후회란 건 언제나 우리의 뒤통수에 바짝 붙어 있어서 피하기가 어려워. 하지만 대개 실패한 경우보다는 도전하지 못한 경우에 후회가 더 크더라고 숨이 다해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후회도 ‘겁먹지 말고 더 도전해 볼걸‘이거든. 그런 면에서 너는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 P132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라. 봄과 겨울이 가깝고 어둠과 빛이맞닿아 있는 것처럼, 성공과 실패도 결국 비슷한 게 아닐까?"
"성공과 실패가 뭐가 비슷해요? 실패는 완전히 망한 거고, 성공은 짱! 좋은 건데."
보름이 혀 꼬인 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문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을 채우는 게 성공이라면, 실패는 마음을 성숙시키니까." - P133

"여긴 그저 잠깐 통과하는 ‘문‘ 같은 곳이야. 들어오고 나가는문, 손님들이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는 이곳에 준비된 결내어주는 거지. 하지만 ‘달‘은 달라.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잖아. 여긴 소원을 이루어 주는 곳이 아니야." - P176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 노력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감정이 고조된 문과 달리 달토끼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떻게 느끼느나는 다를 수 있잖아요."
"그건 그냥 안주할 뿐인 거잖아."
"일어나는 일 중에는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있는걸요."
책의 내용을 보는 것과 바꾸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번번한 실패. 문 혼자였다면 지쳐버렸을지도 모르나, 그에겐 생각을 나눌 달토끼가 있었다. - P286

"삶은 목적지가 있는 길이라기보다 커다란 운동장 트랙 같지않아요?"
"무슨 소리야?"
"만약 길이었으면 앞으로 갈 때마다 점점 목적지랑 가까워져야 하잖아요. 즐거운 일을 하면 점점 더 즐거워질 것 같고, 슬픈일을 겪으면 계속 슬프기만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잖아요.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지구랑 달 같아요. 지구랑 태양 같기도 하고, 달라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냥 서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거죠."
- P291

"아니죠. 운동장에는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나보다 먼저 달린사람도 있고, 늦게 달린 사람도 있지만 돌다보면 같은 지점에서만날 수도 있는 거죠."
상상 속 홀로 트랙을 달리고 있던 자신 주위로 많은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요한 건 빨리 가는 게 아닌 거예요. 누구랑 가느냐가 중요한 거지."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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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찰나의 행복과 원인 따위를 알 수 없는 불행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추상화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시작과 끝을 선택할 수도, 기쁨과 슬픔의 농도를 조절할 수도 없는, 주어진 것을 묵묵히 그려나가야만 하는 나만의 작품, 얼룩덜룩한 백반증도 나의 캔버스에선명히 새겨져 있음을 이제는 안다. 그 무늬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무늬라는 것도내 작품은 여전히 진행형이니 언제 어느 때든 또다시 힘든 시간이 찾아오겠지. 그때는 묻지도 따지지도않고 먼저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다 비워야지. 처음에 나를두렵게 했던 백반증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부족하고 부끄러운 내 모습마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나부터 정성껏 돌보면서 삶에 찾아드는 어려움들이 조금은 감당할 만해졌으니까. - P113

투박한 내 글에 가장 먼저 따뜻한 손을 얹어준 건 랜선 언니들이었다. 인생 선배인 언니들은 내게 더 웃고, 더 크게 웃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라면 그것이 부정적이거나 사소한 것이라 해도 소중하고, 그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길이라는 걸 가르쳐 주었다. 답이 보이지 않는 푸념을 늘어놓거나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을부릴 때에도 나를 다독이는 랜선 언니들의 따뜻한 댓글덕분에, 솔직한 것 말고는 별 볼일 없는 내 글이 비로소작은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그 다독임에 그다음 글을쓸 수 있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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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에서 선대(할머니)의 뒤를 이어 필경사를 하게 된 포포. 문자, 이메일로 소통하는 시대에, 남의 편지를 대신 써 준다니, 일본스러운 감성이다. 더구나 시모가 글씨를 잘 쓰라고 글씨학원에 등록해주는, 글씨를 예쁘게 못 써서 고민하는 에피소드는 시대착오라고 느껴졌다.
조금 더 읽어보니, 익명으로 쓰고자 한 절연장, 서로 사랑했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 남자가 쓰고 싶은 안부편지 등은 살면서 만난 인연들을 소중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 느껴진다.
뒤 표지의 문구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츠바키 문구점의 기적‘처럼.
책상위 다양한 펜 중 만년필을 골라 잉크의 농담을 느끼며 글씨를 쓰고 싶어진다.

"나 말이에요. 앞으로 남은 인생은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고살고 싶어요. 거짓말은 종류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자신에게 하는 거짓말. 또 하나는 상대에게 하는 거짓말. 그 여자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게 말이죠, 용서가 안 돼요. 내가 싫으면 싫다고 똑바로 의사표시를 하면 좋았을걸그래서 내 쪽에서 먼저 재단가위를 든 거예요." - P247

두 사람을 강하게 묶어두었던 우정이라는 이름의 끈 그것을 익명씨 쪽에서 끊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익숙하고 타성에 젖은 관계가 계속된다.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절연장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상반되는 마음을 거울글씨로 전하고 싶었다. - P255

생각해보니 자신에게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손과 손같은 간단히 보이지만, 등도 엉덩이도 거울에 비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보다 주위 사람이 더 많이 나를 보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이렇다고 생각해도 어쩌면 타인은 더 다른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낮에 마이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 P266

나뭇잎들이 나와 모리카게 씨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이랬으면좋았을 텐데, 그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말이죠.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날 깨달았답니다. 깨달았다고 할까, 딸이 가르쳐주었어요.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하기보다 지금 손에 남은 것을 소중히 하는 게 좋다는걸요. 그리고・・・・・…."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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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지지해 주는 단 한 사람
만약 에이나르가 릴리라는 정체성을 발견했을 때 게르다가 그를혐오하거나 인격을 손상시키는 대응을 했더라면 릴리로서의 정체성은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다시 남자로 돌아와 자신을 안아주기를원하거나 분노 표출을 선택했더라면, 에이나르는 과거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며 한 명의 남성 작가로서 살아가는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릴리와 에이나르의 삶을 모두 공존시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게르다 덕에, 릴리와 에이나르는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릴리로서 숨 쉴 수 있는 탈출구를 만들어준 단 한 사람, 게르다가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P50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에밀 졸라(Emile Zola)는 마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주기도 했다. "그림에서 철학적 함의를 찾아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좀 더 음탕한 작자들은 외설적인 의도를 운운하면서 흠집을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마네 당신은 그런 대중들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당신들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다‘라고." - P75

인간이 갈등을 가지는 원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없다면 갈등을 가지게 될 이유가 없다.그렇기에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살펴보고 우리가 무엇을 바꿔나갈 것인가에 대해 살펴본다면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과 가까워질 수 있다.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는 나, 너, 관계, 그리고 환경이다. - P111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남긴 유명한문구, ‘타인은 지옥이다‘는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문장은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접근이 아니라 타인이라는존재가 내가 나다워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타인은늘 자신들의 판단과 자신들의 기호에 나를 가둔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거나 정의내리기 어렵게 만들며, 내 존재가 타인에 의해 부정당할 때 타인은 지옥이 된다. - P139

우리는 지금껏 사회와 부모, 주변인이 원한 많은 것들을 추구하며살아왔다. 이것이 맞는 길이라고 배웠고, 이것이 좋다고 들었다. 그런데그 결정과 믿음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의견만을 따라온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 죽음을 직면했을 때에도 지금과 같이 살 것이라고 말할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이를 통해 세상과 누군가의 사용에의해 쓰이는 존재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주체성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존재인지 생각해 볼 시간이다. - P143

실제로 사회적으로는 용납되지 않거나 인정되지 않은 욕구를 예술과 같은 다른 활동으로 바꾸어 충족하는 것을 승화(sublimation)라고 한다. 승화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기초한 개념으로서 불안으로부터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젠틸레스키는 타시와 사회에게 표출되지 못했던 원망, 분노, 그리고 살인의 욕구 등의 부정적 감정들을 미술작품이라는 가치 있는 형태로 변화시킨 것이다. - P174

풍크는 불안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마음속에 억압하여 두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닐 것이라고 부정하지도않았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그림에 옮겨 담았다. 불안한 마음이 날뛰지않도록 캔버스 위에 붙잡아 둔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 불편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나면 정리가 되는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감정은 알아차려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치유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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