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비사페트에서 지낸 경험에 의하면 새의 눈으로 조망하는 대신 벌레의 눈으로 아래에서 위를바라보고 이런 관점을 결합하려는 노력이 중요할 때가 있다. 이렇게 지역적이고 수평적인 집중연구를 통해상황을 3차원으로 탐색하고 개방형질문을 던지고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사고도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체화하고 공감하는 것도 가치가 있다.  - P54

ㅆㄱ.
그래서 인류학 시야가 중요하다. 인류학의 한 가지 장점은 낯선 ‘타자‘에 대한 공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인류학이 낯익은 것(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적 차이는 고정된 박스권이 아니라 변화하는 스펙트럼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핵심은 이렇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이 어떻게섞여 있든, 항상 잠시 멈추어 니스의 금융인들이 묻지 않은 단순한 질문은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문화에 대한 완전한 이방인으로, 혹은 화성인이나 어린아이로 들어온다면 내게는 무엇이 보일까?  - P121

나는 유일한 해법으로 언론이 인류학적 방법론을 빌려와서 인류학에서 ‘더러운 렌즈‘ 문제라고 일컫는 현상, 곧 저널리스트가 배양접시 위의 현미경(중립적이고 일관된 관철도구)처럼 굴지 않는 현상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는 저널리스트들이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 "우리의렌즈가 더럽다는 점을 인정한다. 둘째, 우리의 편향을 인식한다. 셋째,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해서 편향을 상쇄하려고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앞의 세 단계를 거쳐도 렌즈가 완벽하게 깨끗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명심한다."우리는 (나는) 웃지 말고 사회적 침묵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 P209

그런데 베운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으로 활동하는가? 어떻게 의식과 상징을 통해 공통의 세계관을 구축하는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세상을 탐색하는가?
베운자는 금융인이나 경영인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인류학의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이다. 우리는 모두 사회적 패턴과 물리적 패턴의 산물이고이 두 요인이 서로를 강화한다는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센스-메이킹(sense-making)‘ 개념이다. 이를테면 사무실의 직원들과 다른 모두)이 결정을 내릴 때는 모형이나 지침이나 합리적이고 순차적인 논리만을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대하는 다양한 자원에서 집단으로 정보를 끌어낸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아비투스와 연결된 의식과 상징과 공간이 중요하다. 배운자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하는일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어떻게 탐색하는지가 관건입니다."  - P243

금융인이라면 과학과 복잡한 수학을 기반으로 한 금융모형을 근거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히 ‘양적‘ 금융 전략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들이 어디에 앉는지가 왜 중요할까? 센스 메이킹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 섰다. 트레이더들은 시장을 ‘항해‘ 하면서 사실상 두 가지 방식으로 사고했다.
간혹 21세기의 항해사가 GPS를 사용하듯이 모형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고 미리 정한 경로를 따랐다.
하지만 다른 광범위한 신호와 정보를 흡수하여 시장을 ‘항해‘ 하기도 했다. 트레이더이 화이트보드 앞에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바에서 어울릴 때 센스 메이킹이 일어났다. 또 서로의 대화를 엿듣거나 옆에 있는사람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센스 메이킹이 일어났다. 오르가 제룩스의 수리기사들에게서 "진단은 서사과정"이라는 점을 깨달았듯이 베운자는 증권사의 "수다"가 "트레이더가 금융 모형을 사용할 때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불확실성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데 필요한 사회 체계"를 형성해준다고 판단했다.
……………금융모형은 ‘카메라‘이기 보다는 시장의 ‘엔진‘이다. 사람들이 금융모형의 배후에서 거래하며 가격을움직이기 때문이다. 모형이 추적하는 대상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게다가 모형은 현지의 ‘물질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265쪽~266쪽 - P265

가상회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온라인으로 코드를 작성하는 것처럼 기술관련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가 아니었다. 주요 문제는 엔지니어들이 주변 시야를 놓치고 대면회의에서 나오는 우연한 정보교환의 -회를 놓친다는 점이었다. IETF의 한 회원은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온라인은 효과적이지 않다. 만나서회의할 때는 회의 자체만이 아니라 회의 이외의 사교 행사에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연한 만남과 잡담이 일어날 복도가 없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직접 만나야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이들은 또한 허밍 의식도 치를 수 없었다. 회의가 가상공간으로 옮겨가자 응답자의 3분의 2가 가상공간에서 거친 합의를 끌어낼 방법을 찾고 싶다고 답했다.  - P272

하지만 그날 루니는 주주총회에서 시위자들의 항의와 질문을 경청하다가 그중 한 명이 명확히 의사를전달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시위자가 비판하는 이유를 알아보고 잠시나마 그 사람의 눈으로세상을 보고 싶어서 만남을 요청했다.
그래서 우리는 점심 식사 자리에서 조용히 만났고, 저는 그에게 왜 우리를 싫어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들었습니다. 서로 언성을 높이지 않았어요. 그분이 상황을 설명해줬어요. 대부분 제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내용이었죠. 많이 배웠어요. 276쪽그는 이후에도 그 시위자를 대여섯 번 더 만났다. "그분의 말에 전혀 혹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분의 말을 들어보고 그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분이 제 관점을 일부 바꿔놓았어요.  - P277

그렇다고 이런 모든 모험을 위선으로 볼 수 있을까? 많은 저널리스트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이런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승리를 거둔 셈이라고 보았다. 역사적으로 혁명이 일어나는순간은 소수의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어떤 대의를 품었을 때가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가 변화를 거부하는것은 위험하거나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는 때다. 투자와 비즈니스 세계의 주류가 활동가를 자처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조류에 이끌려가기 시작하자 ESG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균형이 깨지고 급속도로 특정현상이 퍼지거나 우세해지는 현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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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월이다. 친구 역시 함께 보낸 시간과 소통의깊이로 헤아려야 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바다 위반짝이는 윤슬같이 가벼운 대화로 깔깔거릴 수 있는 친구가있고, 알고 지낸 시간은 짧아도 마음속 깊은 얘기를 거리낌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다. 모두 나를 양희은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더 챙기고 아껴주며 살 작정이다. - P30

집에 계시는 남의 집 엄마들이 부럽기만 하다가 머리가크고 나서야 엄마는 비교 대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대로받아들이고, 감사드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엄마마저 없었다면 우리 세자매가 어떻게 살아낼수 있었을까. - P46

후회가 남지 않는 헤어짐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몇몇 친구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속에 담고 있었던이야기를 다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속 썩였던 지난 일들을이야기하며 용서를 구하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았다는 말을 전했단다. 모든 하고픈 말을 전하고 나니 가슴에 맺힌 것이 없더란다.
나도 울 엄마랑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문제는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된다는 거다.  - P52

김기운 아저씨와신상사아저씨, 이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은 희망 없던 깜깜 절벽의 시절 느티나무 같은 위로였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 P67

가만히 보면 눈물도 여러 가지다.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마냥 흐를 수 있고, 기뻐도 울 수 있고,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한 나머지울 수도 있다. 문제는 객석과의 공명이고공감이다. 객석과 따로 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눈높이를맞추는 마음으로, 노래가 가슴을 울리며 계속 메아리칠 수있다면………… 그게 바로 노래가 가진 힘일 것이다. - P99

지지 않을고백하건대, 별나게 겪은 그 괴로웠던 시간들이 내가세상을 보는 시선에 보탬을 주면 주었지 빼앗아간 건 없었다. 경험은 누구도 모사할 수 없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결핍‘이 가장 힘을 주는 에너지였다. 이왕이면 깊게, 남과는 다른 굴절을 만들며 세상을 보고 싶다. - P117

털어내면 아무것도 아닌 상처, 비슷한 아픔 앞에 서면차라리 가벼울 수도 있는데 ・・・・・・ 상처는 내보이면 더 이상아픔이 아니다. 또 비슷한 상처들끼리는 서로 껴안아줄 수있으니까 얘기 끝에 서로의 상처를 상쇄시킬 수도 있다.
같은 값을 지워나가듯 그렇게 상처도 아문다.
왜 상처는 훈장이 되지 못하는 걸까? 살면서 뜻하지 않게 겪었던 아픔들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아무런 흉도 없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은 제 겪은 만큼‘이란 말이 있다.
나는 내가 가진 상처 덕분에 남의 상처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한 눈과 마음이 있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같다. - P138

용기 내어 뛰쳐나오는 결단을 내린다른 편지를 보면서 ‘아 어쩌면 이게 답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자기 사연을
‘남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객관화가 되고,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그 얘길 들으면서 공감하며 응원해주는 것을 경험한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파장이 서로를 연대시키며 거대한어깨동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세상을 묶어주는 띠가 되어 기댈 곳 없는 마음을 잡아주기도 한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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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을 설계한 사람들은 신자들이 성당에 의자를 놓고 앉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끊임없이 변화한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은 없다.
- P26

도시에 사는 우리는 마네 그림에 등장하는 무표정한 사람들을항상 목격한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그들 눈에비친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마네가 발견한 현대성이다. - P54

다행히 브링크만을 비롯한 많은 학자의 노력은 21세기에 비로소 결실을 보았고, 많은 미술사 교과서에서 ‘채색된 그리스·로마조각상‘을 정설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고대의 채색 조각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사고방식만이 아니다. 우리의 편견과 굳은 사고는 눈앞에 있는 증거도 보지못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P63

라고결국 미술에서 사실주의는 그 결과물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그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사용되어왔던 오래된 묘사의 틀을 거부하고 아티스트 눈으로 본 것을 묘사하겠다는 전통에서 탈피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 P104

 사람들은 검은색 벽에 새겨진 남편과 아들, 아버지와 전우의 이름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동안 쉬쉬하며 숨기고 참았던 슬픔이 놀랍도록 단조롭게생긴 검은 벽 앞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방문객은 연일 줄을 이었는데, 낮에는 물론 밤이나 새벽에도혼자 찾아와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만지며 울다가가는 사람이 많았고, 검은 거울 같은 표면 반대편에서 죽은 전우가 걸어 나오는 걸 똑똑히 봤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또한 너무나 많은 사람이 기념비 앞에 간직했던 물건과 편지를 남기고 가는 바람에관리사무소는 그것들을 모아 보관하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야 했다. 과거의 어떤 전쟁기념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1982년 스물한 살 대학생의 작품은 그렇게 기념관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을 바꿨다. 전쟁은 승리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며 슬픔을 숨기는 것은 비극을 기념하는 방법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뉴욕의 9·11 기념관은 베트남전 기념관이 바꾼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 P208

 분노는 거칠고 단순하다. 반대로 슬픔은 (특히 그것이 오열이 아닐 경우) 아주 복잡한 감정의 혼합인 경우가 많다. 후회, 상실감, 외로움, 그리움, 절망 등은 모두 슬픔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지만 각 감정의 경계선은 아주 모호하고, 대개 몇 가지 감정이 슬픔 속에 혼재되어 나타난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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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티나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철길 사이에핀 야생화처럼 그녀의 가슴속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싹터 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어렴풋이 안다. 그 누구에 대한 사랑이 아닌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사랑. 이 끝없는 여행을 계속하게 한 것은 풀리지 않는 갈망과 동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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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타인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며 단순히 웃기다거나, 평화로워 보인다거나 하는 것을 넘어 연민을 느끼게되는 것은 왜일까. 김소연 시인은 『마음사전』(마음산책)이라는 책에서 연민이라는 감정을 ‘사무치는 동질감‘에서 오는 것으로 본다. ‘너‘와 ‘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정말 믿어짐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너‘의 자는 얼굴은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비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매일 실감하며 요즘을 지낸다. - P72

나는 내가 묽은 사람인 동시에 아주 미숙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 인격이 미숙한 사람이자기 신념에 너무 몰입하여 엄격해지면 자신의 무결함에도취되기 쉽다. 나는 내가 채식생활에 진지해질수록 자꾸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자꾸인스타그램에 삼겹살 사진을 올리는 친구가 야속하고 미워질까봐 겁이 났다. 서둘러치팅데이를 만든 것은 그즈음이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치팅데이의 두 번째 효능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나는 육식을 사랑하던 내 기원에 다녀온다. 동시에 내 신념을 자진해서 일부 더럽힘으로써(!) 내가 어쭙잖은 무결함의 도취로 가는 갈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미연에 막는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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