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성당을 설계한 사람들은 신자들이 성당에 의자를 놓고 앉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끊임없이 변화한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은 없다. - P26
도시에 사는 우리는 마네 그림에 등장하는 무표정한 사람들을항상 목격한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그들 눈에비친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마네가 발견한 현대성이다. - P54
다행히 브링크만을 비롯한 많은 학자의 노력은 21세기에 비로소 결실을 보았고, 많은 미술사 교과서에서 ‘채색된 그리스·로마조각상‘을 정설로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고대의 채색 조각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사고방식만이 아니다. 우리의 편견과 굳은 사고는 눈앞에 있는 증거도 보지못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P63
라고결국 미술에서 사실주의는 그 결과물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그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사용되어왔던 오래된 묘사의 틀을 거부하고 아티스트 눈으로 본 것을 묘사하겠다는 전통에서 탈피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 P104
사람들은 검은색 벽에 새겨진 남편과 아들, 아버지와 전우의 이름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동안 쉬쉬하며 숨기고 참았던 슬픔이 놀랍도록 단조롭게생긴 검은 벽 앞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방문객은 연일 줄을 이었는데, 낮에는 물론 밤이나 새벽에도혼자 찾아와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만지며 울다가가는 사람이 많았고, 검은 거울 같은 표면 반대편에서 죽은 전우가 걸어 나오는 걸 똑똑히 봤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또한 너무나 많은 사람이 기념비 앞에 간직했던 물건과 편지를 남기고 가는 바람에관리사무소는 그것들을 모아 보관하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야 했다. 과거의 어떤 전쟁기념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다. 1982년 스물한 살 대학생의 작품은 그렇게 기념관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을 바꿨다. 전쟁은 승리로 기념하는 것이 아니며 슬픔을 숨기는 것은 비극을 기념하는 방법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뉴욕의 9·11 기념관은 베트남전 기념관이 바꾼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 P208
분노는 거칠고 단순하다. 반대로 슬픔은 (특히 그것이 오열이 아닐 경우) 아주 복잡한 감정의 혼합인 경우가 많다. 후회, 상실감, 외로움, 그리움, 절망 등은 모두 슬픔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지만 각 감정의 경계선은 아주 모호하고, 대개 몇 가지 감정이 슬픔 속에 혼재되어 나타난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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