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Expect!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전5권 세트 ㅣ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외계인 구분 전문가로서 말하건대,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외계인이었다.

멀쩡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병원청소부, 헛간건설업자, 닭장청소부, 보디가드같은 직종에 이토록 다양하게 종사하기란 지구인의 유전적 행동양태로 보아 불가능하다. (삘이 강력하게 온다!) 또한 그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다 별안간 서브-오-센스메틱의 작동으로 UFO에 탑승하는 방식으로 지구를 떠났다. 실로 외계인다운 차원이동술 아닌가?

 하지만 그가 살아있을 때 이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었더라면 나같은 성격의 소심하고 까탈스러운 인간들은 복장이 터져서 폐에 들러붙은 기생충들이 멀미로 토할 때까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겨댔을 거라는 생각이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 농담, 농담, 농담, 끝나지 않는 농담의 우주. 

1권 읽을 때는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다가

2권부터 슬슬 지겨워지다가

3권은 언제 끝나나 쪽수만 세다가

4권은 아, 이제 한권만 더 읽으면 끝난다는 희망으로 버티다가

5권은 이건 왜이리 페이지가 많은 것이지? 하고 불만을 토로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읽어치웠다.

논리나 개연성, 어떤 종류의 드라마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읽지 말기를 바란다. 폐에 들러붙은 기생충이 당신이 주먹으로 두들기는 갈비뼈에 일어난 진동으로 인해 단체로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길고 긴 농담은 (다섯 권 모두 합치면 1500쪽이 넘는!) 낯선 방식으로 놀라운 철학을 남기기도 한다. '불가능확률 추진기'라든가 '다른 사람의 문제', 신이 남긴 최후의 메세지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등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던 작가의 말과는 달리(정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깊은 인상과, 심지어는 약간의 감동까지도 남겨준다.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둘 게 있다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 차라리 실망부터 먼저 하고나서 읽기를 시작하라는 것. 그러면 이 책은 기대에 부응하여 기대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뻔 했던 재미와 실망부터 먼저 하고 읽기 시작했더라면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를 감동을 여러분에게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혹시 마빈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