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취인 경륜문답 - 일본근대사상총서 1
나카에 초민 지음 / 소명출판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수유+너머 연구실에서 일본 근대 사상 총서 시리즈의 첫 권으로 내놓은 나카에 초민의 1887년작. 일본에도 근대 사상에도 뾰족한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무쟈게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 연구실 일본근대사상팀 멤버로 활동하고 계시기에 한 권 얻어왔다. ^^
본문은 140여쪽의 간단한 희곡형식으로, 원리가인 양학신사, 권력가인 호걸객, 실제가인 남해선생- 술취한 이 세 사람이(삼취인) 모여 경륜을 주고받는 이야기이다. 문답이라기보단 세 사람이 각자의 주장을 열심히 웅변하고 있는데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읽기 좋게 번역되어 있어 열세 분의 간난한 노고를 짐작케 한다. (남의 말을 간단하게 옮기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덴포의 노인'으로 태어나 '메이지의 청년'들에게 적잖은 자극이 되어준 나카에 초민. 보통 양학신사, 호걸객, 남해선생 이 세 사람은 모두 나카에 초민의 분신으로 해석되며 개항 이후 불어닥친 서구의 위력적인 바람 앞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다각도로 고민하는 선각자의 외로운 노력이 엿보이는 책이다.
우리의 '근대'가 시민의 힘으로 아래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강제적으로 수용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근대' 이후의 우리 문화가 주체성을 잃게 된 점, 서양의 문화와 문물을 일본이란 필터를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갖게 된 한계- 문화를 공부하고 예술을 이해하려는 사람으로써 지금 우리 문화의 뿌리와 한계에 대해 안타까웠던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돈도 안되는데!!!) 오해와 왜곡으로 시작되었던 우리의 근대를 바로 잡아보자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고,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근대를 들여놓은 일본의 근대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 첫번째 결실이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데 반가움을 감출 길이 없다.
더욱이 한때 우리를 식민통치 했다는 거부감 때문에 제대로 연구되는 것조차 터부시되었던 일본의 근대 사상은-아직도 국내에서 이완용을 비롯해 친일파로 알려진 다른 근대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제아무리 잘나가는 국립대 교수라 해도 밥줄을 내놓아야 한다는!-그 깊이와 폭에 있어 우리가 감히 견줄 수가 없을텐데, 분노와 원한을 극복하고 그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 우리 이롭게 하자는 생각은 이 나라에서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건지.
아무려나 이렇게 물꼬는 터졌고, 한번 터진 물꼬로 점점 더 많은 물줄기가 새어나와 확! 하고 봇물 터졌으면 하는 것이 이 책을 처음 접한 나의 바램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지난 100년, 그간의 우리 전통, 건축, 미술, 음악, 어린이문학, 정치, 사회- 이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다시 세울 수 있기를. 더이상 남의 것 베끼지 않고 우리의 과거에서 배우고 시작할 수 있기를, 우국지사도 충정열사도 아닌 일개 범부, 간절히 두 손 모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