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이 내게 종교를 물으면
어쩔 땐 기독교, 맘 내키면 불교, 귀찮을 땐 힌두교, 장난치고 싶으면 특정 토템을 숭배하는 애니미즘 신봉자라고 말한다.
걸음마 떼자마자 주기도문을 외웠고, 가톨릭 영세를 받고 교적에 몸담고 있으며, 요가를 하고있고 평생 할 계획이고, 요즘은 가끔 절에 가서 기도하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신은 교회에도 성당에도 절에도 힌두 사원에도 아니 계신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모든 곳에 두루 계신다. 나는 그분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며 동시에 찬미하고 언제나 그분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의 신은 '하늘'이시다.

철이 나기 시작해 '인간'의 불완전함에 실망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만든 종교에서도 서서히 마음이 떠나게 됐다. 그래서 한때, 철저하게 나의 실존에만 의지해 세상을 견뎌보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될법한 일이던가. 나는 반항 10년만에 완전히 두손두발 그분 앞에 다 내어들었다. 가장 외로운 순간에 나는, 이국의 차가운 침대에서 벌거벗은 맨발로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눈물콧물 좔좔 흘려가며, 아무리 극한 순간에도 나의 실존 이외엔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겠다던 얄팍한 자존심은 온데간데 없이 녹아내렸다. 정말 자존심 상하고 비윗장이 틀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돌아온 탕아 꼴로 나는 다시 그분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이 꿀맛같은 평온과 따스함과 보살핌, 만족감, 행복- 내 신앙의 품에서 절대 한발짝도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 숭배의 대상은 너무나 거대하게 초월해 계시어 세상 어떤 종교의 법칙으로도 이름할 수가 없다. 그는 예수도 석가도 알라도 파드마삼바바도 아니면서 동시에 예수이고 석가며 알라이신 동시에 파드마삼바바이시다. 산의 정상에 이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그분께 다다르는 이름도 하나가 아니다. 나는 그 하나의 이름을 강요받을 이유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이 아무개 목사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다. 붓다를 공경하지 않고 어찌 그리스도교인이라 하겠으며, 그리스도를 사모하지 않으면서 어찌 보살이라 하겠는가. 차분차분 성경 말씀을 인용해가며 자신이 공경한 붓다의 말씀을 옮겨놓는 아무개 목사의 손길이 사못 정성스럽다.

독실한 종교를 가진 친구들이 나이롱이라 놀려대도 별수 없다.
나는 여전히 성탄절엔 교회에 가고 부처님 오신날엔 절에 가고 자연에 깃든 모든 정령을 공경할 터이다. 그것이 내가 나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통해 보여주시는 사랑의 방식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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