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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ㅣ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4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평점 :
나의 오랜 벗이자 S대학교 물리학박사 논문을 준비중인 용이 언젠가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괴짜 물리학자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천재적인 학자이면서 예술가이기도 한, 다분히 극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내게 영감을 줄거란 이유에서였다. 그 저명한 학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용의 태도-혹은 떨리는 입술-에서 나는 그가 파인만씨를 상당히 존경 내지는 흠모 내지는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한 번 듣고는 그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에야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 광고를 보고 그때 기억이 나서 1권을 주문했다.
이 책은 리처드 파인만이란 사람의 독특하고 재미난 일화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회고록이다. 어릴 적부터 자신만의 실험실을 만들고 라디오를 고치는 등의 천재성을 보이다가 결국 모두의 예상대로 MIT에 진학하고 최고의 과학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영예를 누린 사람의 비하인드 스토리랄까. 대중이란 원체 잘난 사람의 못난 구석을 보고싶어하는 법이지만 이 책은 실패담을 가장한 천재의 자기 자랑같은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지금은 이마저도 구식이지만, 그나마 조금 세련된 방식의 잘난체랄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리처드 파인만은 2차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의 이론적 토대에 크게 공헌한 사람이다. (나중에 양자전기역학이론으로 노벨상도 탔다!) 내가 이 책에서 읽고싶었던 것은 이 대단한 과학자가 자기 이론으로 만들어진 원자폭탄이 전쟁 종결의 대가로 치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만들면서 과연 인류나 세계에 끼치게될 영향에 대해 고민했는지 따위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엔 '대단한 미국인' 리처드 파인만의 대단한 애국심과 핵폭탄 제조로 인정받은 공로로 대학교수가 된 이후의 다소 감상적인 책임회피만 양념처럼 석 줄이 들어있을 뿐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나는 책임이 없다!'니, 스스로를 행동하는 무책임이라 자조하는 사람이 세계적인 석학이었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이는 불행히도 내가 미국인이 아니라는 데서 기인한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리처드 파인만의 친인척이거나 혹은 그의 친구들쯤, 혹은 그의 업적을 동경하여 그와 관련된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이고 흠모할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낄낄거리고 읽어도 부담이 없을 만한 책이겠다. 그러나 1권에 이은 2권의 목차를 훑어봐도 대단한 과학자의 농담섞인 자기 자랑 외에 내가 읽고싶어하는 것은 드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므로 2권은 절대 돈내고 사보지 않을 생각이다.
이 글을 읽고도 리처드 파인만이란 천재에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다면 내 책을 가져가시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