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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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너랑 코드가 비슷한 상상력' 어쩌구 하며 이 책을 집어줬을 때의 기대에 비하면 소설집의 첫인상은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아류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몇 개의 단편은 아주 뛰어났지만 '은하수...'에서 이미 이런 종류의 럭비공같은 재미는 보아버린 터라 그닥 신선하다거나 충격적이란 느낌도 없었다. 

근데 책을 다 덮고 났을 때, 뭔가 우웅-하는 전자음이 뱃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더러 우리네 정서 속에 '恨;의 비중을 높게 매기곤 하는데 박민규는 질끈 묶은 머리, 커다란 고글관 어울리지 않는 묘한 그 恨을 지녔다. 첨엔 기대처럼 쿨하지 않은 이야기에 조금 실망했지만 책을 덮고났을 때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린같고 너구리같고 펠리컨같은 인생 또 인생. 결국 뭐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평론가들이 박민규를 한국 문학사에 획을 그은 작가라고들 하던데,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2000년대를 횡단하는 그가 진정 우리문학이 80년대 소설에 지고있는 빚을 대신 갚아줄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 그래야 범람하는 향수들과 하루키의 망령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그래서 조금은 촌스럽고 쿨하지 못해도 '우리' 이야기를 쓰려는 시도들이 다양해지지 않을까. 어쩜 내가 너무 오래 우리 소설에 무심했던 나머지 너구리같은 소릴 하고있는지도 모른다. 꾸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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