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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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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쿠다 히데오는 집단 속에서 개인을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소설에는 다양한 '비주류' 生이나 약점 제대로 잡힌 인물이 대거 등장해 '나 별 것 없어요'를 동시다발적으로 외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별 볼일 없는' 'A lot of people'은 'only one'의 시선으로 바뀐다는 거다. 하루키의 소년이 자신의 내면에 몰입해 성장하는 반면, 히데오의 인물들은 관계 속에서 위안을 받고 자조나 위악보다 엉뚱한 웃음으로 긍정을 발견한다. 이를 포착하는 그의 감각은 탁월하며 건강하다. 1959년, 그가 태어난 곳은 농담 기후岐阜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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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편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 문화사랑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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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베르테르씨의 최후의 미덕과 지성은, 셋 중 하나가 죽어야만 했을 때 자신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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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톨
와타야 리사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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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와타야 리사는 17살 나이에 '인스톨'로 38회 문예상을, 2년 후엔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난 일전에 후자를 먼저 읽었는데 솔직히, "와, 이거 완전 하이틴 소설 수준이잖아. 도대체 수상 기준이 뭐야?" 의아했었다. 잊혀졌다. 따라서 '인스톨'을 읽게 된 건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나 애정이라기보다 웹서핑 중에 이를 읽고 쓴 어떤 이의 감상 때문이다.
 와타샤 리사,의 소설을 읽다 눈물을 흘린다? 다 큰 남자가? 대체 그의 감성은 뭐지.. 약간은 의아한 호기심. 책은 가볍게 읽혔다. 한 두 장면에선 웃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리 여고생이 그의 현실을 빗대어 간결하고 속도감 있게 써내려 갔다해도 딱 그만큼만 자란 소설이라 생각했다.(그들에겐 이게 신선했을지도 모른다. 지나쳐와 기억된 '회상'이 아닌 맞댄 현실) 뜨끔한 건.. 이번에 그녀가 제시한 '확답을 갖지 못한 불확실성'에 있다. 언젠가 친구가 "내 최종학력은 고졸이야. 고등학교 이후로 변한게 아무것도 없어." 했던 말이 스친다. 백만번쯤 고민했던 문제. 그리고 계속해서 고민하게 될 문제. 

 '넌 인생의 목표가 없어..'

 한때 TTL 광고 중에 "너 지금 행복하니?" 라는 카피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건 "부자되세요"나 "십억 만들기"와는 다른 문제지 않은가. 다들 차곡차곡 사는 것 같은데 겉도는 느낌.. '나'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능력에 대한 신뢰도 탄탄한건지, 찾아야 할 것을 찾은 것인지, 휩쓸리고만 것인지..  하루에도 수만번 폭락하고 폭등하는 자가테스트. 그래도.. 우리 몫의 삶을 살아야잖아.

 응, 노력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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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뿌리
조세희 지음 / 열화당 /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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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밤 나는 무던히 아팠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값싼 눈물을 소매로 훔쳐내고 편안한 잠자리에 누워 가벼운 아침을 맞는 일뿐이었다. 삶과 유리된 이상을, 가치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취객의 논리로 '세상이 미쳤다'고 외치는 것은 순간의 객기일 뿐 숙취와 함께 날아가버릴 말이라면 굳이 근심하는 표정은 사치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그들의 상처에 보상할 의무가 있다.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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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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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78년 초판 발행 후 200쇄를 맞은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쌀 협상 비준안과 고 전용철씨 사망 책임을 묻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는 그는, 이제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30년 전에 쓰여진 이 글이, 밀레니엄을 말하고 축포를 쏘던 - 두번째 샴페인은, 세기를 넘는 비약을 기대했다 - 이제에도 사람의 그래,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가 아프다. 40대 아버지가 중학생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하자 아이는, "이 소설 옛날이야기가 아니네." 말했다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던 그도, '생존'을 말하는 집회의 사람들도  '좀 더 나은'을 위해 목숨 밖에는 담보할 수 없었던 가난함도 실상 내겐, 건물 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시선으로만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만큼 치열해보지 않았으니까. 내 부모의 가난, 그에서 비롯된 멸시와 울분은 어린 나에게는 여과된 가난이고 멸시였으니까.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조금, 피곤한 것인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이 사회에서 가난이란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가난이란 차별이며 모멸이다.', '어릴 적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이 싫었고 전기밥통 속에서 익어 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한평생 목이 메었다.'고 말한다. 김규항은 『나는 왜 불온한가』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김동원의 말을 끌어들인다. 그는 "무엇보다 가난해야 한다. 강요된 가난은 죄악이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은 바로 예수의 모습이다. 가난해야만 가난의 가치를 가질 때만 세상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나는 그걸 따라가는 거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를 지지한다. 너무 이상적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사회상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항상 어려움을 느낀다. 사회적 부의 균형,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인권과 자유.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고 성실한 사람도 집단이나 구조에 속하게 되면 굉장히 이기적이고 무감각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표준화, 관습화된 제도적 장치 안에서 개인은 무력해진다. 원하지 않아도 "그래, 이게 대세다." 따라가게 되는 것 같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만 없다면 개입조차 꺼려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때 그 '우리'라는 인칭은 화자와 몇몇 지인만 발끈하는 성질의 것은 아닐까. 따라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이란 말은 어쩐지 순진하게만 들린다. 
 그래도 내가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막연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에 있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려는지 모르겠다. 하하.) 이는 어쩌면 낙관적 낭만주의자의 감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여린 면을 믿는다. 평범하고 우둔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다소 짜증스럽고 별나게 보이는 사람들의, 유치해서 찬란한 아이들의. 그리고 매번 이들을 배신하는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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