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크릿 닥터 - 내 친구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꼭 묻고 싶은 여자 몸 이야기
리사 랭킨 지음, 전미영 옮김 / 릿지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산부인과 産婦人科라는 단어 안에 ‘산(産)’자 때문일까, 

산부인과는 아이를 가졌거나 가져야 할 여자만 방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랬을까, 처음 산부인과를 방문하던 날 나는 몹시 두려웠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진료를 하는 어떤 병원일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둥그렇게 배를 내민 산모들의 눈길이 내 얼굴에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산부인과에 방문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나는 내 몸이 힘들 때 누구를 찾아가야 해?


『내 친구가 산부인과 의사라면 꼭 묻고 싶은 여자 몸 이야기-마이 시크릿 닥터』에는 

핑크색의 발랄함, 남모를 은밀함, 그리고 여자들의 웃음에서 묻어나는 경쾌함이 모두 담겨 있다. 

음부, 질, 섹스, 자위행위, 오르가슴, 분비물, 생리, 자궁, 임신, 출산, 폐경, 유방 등등 

성인여성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 같지만, 막상 제대로 알아본 적 없는 것들이 속속들이 펼쳐진다. 

하나씩 구분되어진 열 다섯 개의 챕터에는 저자가 직접 들었던 질문들이 실려있고, 유쾌한 저자의 답변도 함께 들어 있다. 

조금 멍청해 보일까, 너무 지나친 걸 물어보는 걸까 하는 자기검열 따위는 하나 없이.. 

저자가 직접 보고 겪어온(!) 몸에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가 있다. 

‘이런 것 나만 궁금해하는 건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을 가지면서도

‘나만 봐야할 것 같아’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뭐랄까, 내 몸에 대해서만 말해주는 내 주치의를 독대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일까. ^----^


효모균 감염의 원인은 뭔가? 정말 내가 안 씻어서 그런 건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깨끗하게 씻는 게 문제일 수 있다. 질에는 효모균을 차단하는 젖산균과 같은 이로운 박테리아가 살아야 한다. 그런데 질 세척을 하고 항생제를 복용하거나 향균비누를 사용해 음부를 닦으면 우리 몸을 보호하고 있는 유익한 박테리아도 함께 죽는다. 정상적인 질의 환경이 무너지면 이를 막아 줄 박테리아가 없기 때문에 효모균이 침범한다. 임신이나 만성질환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경우에도 몸속으로 들어온 효모균이 쉽게 증식한다. 또 효모균은 당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나 당분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감염 위험이 높다. (p.185-Chapter 6 분비물과 가려움증)


집에서 하는 임신 테스트도 병원에서 검사 받는 것만큼 정확한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이 간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병원에서는 전문가들이 결과를 판독한다는 점이다. 집에서 임신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니까. (p.231-Chapter 8 생식력)


폐경이 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마지막 생리 후 1년이 지났거나 수술로 난소를 제거하면 공식적인 폐경이다. 하지만 이 정의가 실제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생리가 끊기기 1년 전부터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지면서 에스트로겐 결핍 증상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호르몬이 줄고 있으나 공식 폐경은 아닌 시기를 뜻하는 ‘폐경 전후기’라는 용어가 따로 있다. 자궁절제술을 받았거나, 피임약을 복용 중이거나, 출혈 증상을 보이는 자궁근종이 있을 때는 폐경이 되었는지 구별하기가 더 어렵다. (p.304~305-Chapter 11 폐경)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난 ‘여자’라는 이유로 -납득할 수 없는, 몸에 관련된- 많은 제제를 받았다. 

(심지어는 ‘처녀막’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을 생각해야 하므로 자전거를 타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그에 비하면 몸과는 친해지지 못했다, ‘성교육’다운 성교육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 

내 몸 구석구석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도 잘 몰랐다. 

낭군과 서로의 학생시절을 비교해보면서 내가 ‘기본 상식’이 좀 모자랐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도 선생님도 가까운 그 누구도 자신조차 몸에 대해 잘 몰랐고 조심스러웠다.

질문을 들어줄 수 있는 존재가 어디에도 없었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뒤늦게라도 이 책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적어도 앞으로 겪게 될 시간들은 혼자가 아닐 테니까. 

‘예쁜 분홍빛 음부 탐사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그 첫 번째로 ‘문을 잠그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을 꼽아주는 유머를 가진 섬세한 여자 선생님이 또 어디에 있을까.

‘여자 몸’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 뿐 아니라 

‘건강’ 전반에 대한 상식이 들어있다 시피한 이 책은 

오래 곁에 두고 찾아봐야할 책이 아닌가 싶다.


옆에서 책을 빼앗아 보던 낭군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몸을) 책으로 배웠어요-구만?!” ㅎㅎㅎ

글쎄, 책으로 배워도 제대로 배우면 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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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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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나는 작가의 전작들을 떠올리며 긴장했다. <이 인간이 정말>이나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위풍당당>을 읽은 후에 내 머릿 속에 각인된 건 ‘생명력’, 이 세 글자였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꿈틀거리면서 내 주변의 공기를 바꿔놓을까, 장광설을 늘어놓는 넉살좋은 주인공이 있는 걸까. 기대하면서 소설을 펼쳤다. 그리고 난 실패했다.


대뜸 ‘나’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한강을 산책하고 있단다, 투명인간이란다. 무슨 말이지-하고 따라갔더니 불쑥 ‘김만수’를 발견하고는 말을 멈추어 버렸다. 그리곤 책의 빈 공간이 나오더니 ‘만수가 태어날 때 난 정말 죽는 줄 알았다’가 눈에 들어왔다. 긴장감은 허탈감으로 변해버렸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투명인간인 ‘나’는 제 자식도 못 알아보게 되나? 며칠은 이 고민(왜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때문에 책을 펼칠 수 없었다. 귀신이라도 본 듯 몇 날 며칠 책을 멀리 밀어냈던 것이다.






장편소설 『투명인간』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면서 등장하는 소설이다. (부분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해서 ‘나’로 등장한다. 나와 같은 실수로 소설에 몰입하지 못할 것 같다면 부분마다 ‘나’는 누구인가를 메모해두는 것도 도움이 될 법하다.) 사람들은 대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 세상을 바라보고 주변을 이야기하는데 그 안에는 한결같이 ‘만수’가 들어있다. 마치 <월리를 찾아라>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배경들 속에서 만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게 하지만 끈덕지게, 화자가 보는 이야기 안에 그 몸 한구석을 들이밀고 있다.


처음에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려지던 ‘만수’는 좀 이상했다. ‘대가리만 절구통겉이 크고 팔다리는 쇠꼬챙이겉이 빌빌’인 아이였고 온갖 피부병을 앓았고 온몸에 상처 투성이여서 몸이 단풍이 든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늦되고 자라면서도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걸 두고 동네 사람들은 ‘어비’라고 했는데 만수가 바로 그 짝이 났다. 아이가 비실비실 허약하고 주눅이 들어 매사에 자신이 없으며 경쟁에 뒤처지는 것을 두고 ‘지실이 든다’고 하는데 만수가 바로 지실이 든 아이였다.(p.33) -만수 아버지의 말 중에서.

만수의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만수가 병약해서 시름시름 앓다가 투명인간이 되는 건가 싶었다. 한편으론 이 어수룩한 소년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고 싶지 않기도 했다. 투명인간이면 남다르잖아, 뭔가 특별한 사람이 투명인간이 되어서 특별한 일-장난이라도- 뭔가 해주면 신나잖아.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덜컹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금희 누나의 말이었던가, ‘소쿠리가 보이면 만수가 있었고 만수가 있으면 소쿠리를 메고 있어서 만수를 “소쿨아, 소쿨아”하고 불렀다(p.46)하고 시작하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멍청하고 모자라게만 보이던 얼빵이같던 만수가 예뻐보였다. 누이들과 함께 산으로 들로 산나물이나 열매, 가족에게 필요한 약초를 구하러 종종 걸음 질쳐 사라질 때, 나는 만수의 어미라도 된 양 그 걸음을 따라 한참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김만수, 이 사람은 뭔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인물이었다. 박식하게 많은 책을 섭렵하는 선비도 아니고 힘 깨나 쓰는 장사도 아니고 수재도 아니고 미인도 아니고 근데 자꾸 마음이 간다. 먼 할아버지가 겪어온 일제 치하의 시대에서부터 새마을운동, 서울 공장에 청년들이 몰려들던 때, 베트남전 파병,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세상 따라 목소리를 바꾸고 몸을 낮추어 아득바득 살아갈 때, 누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누가 이토록 넓고 바른(옳거나 그름이 아니다, 바름이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단 말인가.


단지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 거다.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나기를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은 나의 뿌리이고 울타리이고 자랑이다.(p.351)-만수의 말 중에서


소설을 다시 한번 잡은 후, 끝까지 쭈욱 읽어내려갔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입을 옮겨가면서 세월도 보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소설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나를 둘러싼 환경이 휙휙 들어섰다 사라지고를 반복한 것 같다. ‘문장으로만 꿈틀거린다고 생각했냐?’하고 반문하며 성석제 표(?) ‘생명력’이 나를 꾸욱 밀치고 사라졌다. 아, 이 선생님의 힘은 얼마나 오래 가실런지. 하아.(감탄^^)


소설을 덮고 나서 며칠을 또 고민했다. 왜 작가는 ‘김만수’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하필 그들(‘김만수’만이 아니다)은 투명인간이 될 수 있을까.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고, 해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우악스러운 욕심은 마침내 사람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마는 것이다.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들을, 자신의 멋대로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지금의 세상 아닌가. 타인에 의해서 갑자기 ‘투명인간’이 되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스스로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숭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p.28)-만수 할아버지의 말 중에서.

염치 있는 인간, 김만수 씨는 사람도리를 하기 위해 긴 세월 열심히 살아왔다. 함부로 욕심내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없도록 굳건하게 용기 내며 살아온 것이다. 이제 더 지치지 않도록, 옆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까지 짊어지느라 ‘염치’란 단어에 깔리지 않도록.... 원하는 때가 되면 마음껏 가벼워지라고 작가는 ‘투명인간’을 선물했다. 아마도 그건 작가 선생님만이 건넬 수 있는 ‘달콤한 위로(p.350)'이 아닐까.





p.s.

1) 누가, 인간 김만수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의 삶이 당당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아서도?! 

(이런 류의 농담을 던지는 것 같은 작가님의 센스?!)


2) 지난 2014년 국제도서전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성석제 작가님을 뵈었다. 

작가님의 지난 인터뷰와 작품 들을 통해 끊임없이 관찰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나만의 착각일까. (정리해서 다음 번에 블로깅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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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당분 20g의 기적 - 노 슈거 프로젝트 2090
조희진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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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식생활 개선 전반에 대한 책들을 탐독했었다.

채식, 생식Raw food, 발효식품, 채소쥬스  등등

어떤 것을 적용해볼까 시도도 많이 해봤고

내가 '고기'를 제대로 소화 못 시키는 편이란 걸 알았고

귀찮지 않으면 당근과 녹색채소를 갈아 먹기도 하며

'과자'는 아예 먹지 않고 '삼백-쌀,흰설탕,밀가루'는 피하는 식의

식생활을 1년 가까이 자속했다.

 

잠시 식습관이 흐트러졌고, 살이 좀 쪘다. ㅠㅠ

(주말 편도 5시간쯤, 왕복 주행을 하는 남편 옆자리에서 간식도 챙겨 주고 나도 먹고,

남편의 술상(혹은 야식)을 챙겨주느라 남는 것 좀 챙겨막고.

시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밀가루 면 종류도 같이 먹고....;;;)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하루 당분 20g의 기적』.

『하루 당분 20g의 기적』은 조희진 PD가 직접 공부하고 체험한 식생활 개선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일명 '노 슈거 프로젝트 2090'이라 밝힐 수 있는 책의 핵심은

'매일 당분 섭취량을 20g으로 제한하면

90세까지 청년으로 살 수 있다(p.09)'는 유쾌한 모토다.

 

하지만 실상은 좀 '덜 유쾌'하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즐겨온 식품들이 주적(!)이 되어야 하니까.

곡물을 끊어야 하고, 과자 및 인스턴트는 당연히 금지(초코렛 당연히 금지!),

게다가 과일은 제한해서 먹어야 한다(사실 첫 단계에서는 먹지 말라고.ㅠㅠ).

그리고 그런 식의 식생활로 지금껏 건강하게-좀 마른 듯이- 살고 있다고 한다.

책을 독파하고 나면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건강도 체크 포인트로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식품을 선택할 때 '칼로리' 대신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설탕이 없는 식품이 있기나 있을까-무얼 택해야 할지.

왜 사람들은 '레몬워터'를 마셔야 하는지.

(더불어...책의 뒤쪽 90페이지 가량은 실제 활용할 수 있는 레시피가 자세히 나와있기도 하고.^^)

 

조희진 PD의 방법을 100% 따라하기는 힘들 것 같지만

(워낙 힘들어서. 게다가 1단계에 '고기'만 먹게 하면 저는.....ㅠㅠ)

부분 부분 손을 봐가면서 '핵심 이론'은 적용해볼 만 하다.

 

 

 

 

 

 

p.s.

책을 읽은 후에 새롭게 안 내용이나, 괜찮다 싶은 내용을 낭군에게 설명해줬더니

"다 아는 거네. 당연히 그렇게 하면 살 빠질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되물었다,

"아니, 그렇게 잘 아는데 (어쩌다가 그 배가..) ..........?"moon_and_james-35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이어트, 식생활 개선... 핵심은 이거다. 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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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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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대충 훑어봤고 작가의 인터뷰도 찾아봤다.

아직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읽는 중이라ㅎㅎ)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학교, 학부모, 선생, 학생.... 서로가 몰랐던 것들에 대해 제대로 보여줄 기회는 되어 주니까.

실제로 현장에서 담임교사로 학생들을 겪어보고 나서 깨달은 것과 통한다.

 

학생들에게 관찰되는 특징을 동료교사에게 묻고 싶어도 쉽지 않다,

학부모에게 묻고 싶어도 어렵고 조심스럽다

(오해의 소지가 생길까봐 말을 꺼내기도 힘들고,

간혹 운을 뗀다 해도 협조가 참 어렵다.

심한 경우는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아야 되지 않냐-는 모르쇠 식의 부모님도 계신다),

학생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연계하여 지도해볼까-할라치면

업무가 혹은 교육경력이 긴 다른 교사가 브레이크를 건다.

(그런 제제를 몇 번 당하면, 금방 지친다.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 사그러들만큼.)

 

막상 수업을 하면서 관찰하게 된 뭔가를,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근본적 이유를 보고 생각하고 추리해서라도?-

넌지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아이들은 놀란다,

교사의 관심에 무척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꾸준한 관심과 독려는... 결국 서로 통할 수 있는 기회(혹은 계기)를 준다.

 

(다른 선생님들이 자신에게 보이지 않던 태도나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관심 밖에 덜 있었던 학생일 수록- 마음을 여는 것이 보인다)

 

 

 

 

 

서로에 대해 알아보자-라고 나선 책이라 생각하면 정말 좋다.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높아져서 이렇다 저렇다... 책에서 본 몇몇 가지 이야기나 사회학자의 해석 같은 것을 늘어놓았더니, 혹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저자와 같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현장에 있는 교육자들에게 강연도 하고 깨우치게 하면서 차차 바뀌어가겠지,라고 답했지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사회학자가 이렇게 열심히 책을 쓰고 연구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뭔데'?

 

간혹 생각한다.

아무리 현장에서 발버둥쳐도 '개인'의 몸부림은 '전체'의 몸부림을 이겨낼 수 없다고.

대대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움직임이 생겼으면 좋겠다.

학교, 학부모, 교사, 학생 모두가 움직이면 딱딱하게 굳어버린 '제도'를 실제에 맞게 바꿔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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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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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안나의 방에는 푸른 얼음의 벽이 생겨났다. 타일 위의 습기가 살얼음이 되어 투명하게 벽을 도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벽이면 안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차갑고 푸른 모자이크 타일에 둘러싸인 채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의 몸이 얼음이 가득 담긴 유리그릇으로 변한 꿈을 꾼 날도 있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p.21~22

 

엄마는 흰 꽃과 보랏빛 꽃이 핀 바이올렛 화분 두 개를 샀다.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햇빛에 내놓았더니 잎이 점점 늘어가며 옆으로 퍼졌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연한 연두색 잎이었다. 얼마 뒤 엄마는 날카로운 면도날로 가장 건강한 잎 하나를 잘랐다. 잘린 면으로 고통을 머금은 맑은 수액이 몰려 고였다. 그대로 물이 담긴 유리컵에 담그면 연두색 잎은 중심을 잡기 위해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고요히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보면 잘린 면에서 마침내 실처럼 가늘고 투명한 뿌리가 한두 개 돋아나는 것이었다. 또 며칠이 지나면 제법 여러 개의 하얀 뿌리가 물속을 향해 뻗어내렸다. 어느 정도 뿌리가 많아지면 화분의 흙에 옮겨심었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거기에서도 바이올렛 꽃이 피었다. 흰색 꽃의 잎에서 돋아난 뿌리는 흰 꽃을 피웠고 보랏빛 꽃의 뿌리에서는 영락없이 보랏빛 꽃이 나왔다. 우리 아빠는 엄마가 바이올렛 화분을 지나치게 많이 산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화분이 늘어 있었다. 잎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도마뱀 꼬리가 끊어지는 자리에서 다시 꼬리가 나온다는 건 알겠지만 잎에서 뿌리가 돋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엄마의 특별할 것도 없는 재주를 칭찬했다. 시간이 걸릴 뿐이야. 엄마가 대답했다.

프랑스어 초급과정    p.70

 

 

때때로 그해 여름을 떠올리곤 한다. 엄마는 늘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였고 집안의 모든 전등을 밝혀놓았다. 소리를 크게 한다고 영어를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불을 켜놓는다고 해서 삶이 명쾌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는 자기를 둘러싼 어둠에 최소한이나마 저항의 신호를 보내야만 했다. 그때 엄마와 한편이 되어준 것은 불행한 여인의 식탁과 초대받지 못한 처녀의 파티 드레스, 그리고 잊혀진 작가의 후회스러운 젊은 시절 등 행복 바깥의 것들이었다. 그때 좀 이상했던 건 사실이잖아.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보수적인 열세 살이었거든. 엄마는 인생에 대단한 것은 없고 모두가 고독 속에 죽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견디기 쉬워진다고 한다. 아마 그런 식으로 사라의 죽음이라는 목차에다 자신의 고독을 슬쩍 끼워넣었을 것이다. 죽음같이 센 쪽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앞에 잠시 고독을 내려놓는 것쯤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p.146~147

 

 

 

언젠가부터 책들을 대하는 내가 좀 바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나를 드러내 보이거나,

소소한 내 감정에만 몰두를 하고 있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 다음에 책을 읽은 후에 쓰는 독후감(리뷰?)만큼은

개인적인 감정은 모두 없애고 오직 '소설'만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 장치의 의미는 이렇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의 어떤 것과 이렇게 저렇게 관련이 있다고 해석된다,

아마 이 인물이 보인 행동은 이런 의식의 발현이다....식

-내가 아는 가장 '객관화'된 자세로.

 

 

단편 소설이 모인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어느 팟캐스트에 등장한 은희경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날의 나는

루시아, 안나...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들으며

한국 사람이라면서 이름들이 참 낯설다 생각하며

욕실에서 손빨래를 하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설을 읽으면서 거리두기, 냉정한 태도로 소설을 바라보기-그게 가능한 줄 알았다.

 

소설을 읽다가, 나의 '사전 결심'은 와르르 무너졌다.

순간순간 내가 가진 기억의 이미지들이 와라락 왔다가 사라졌으므로.

 

미망인 집의 자취방에 기거하던 나날과 먼 바람이 코끝을 차갑게 하던 밤의 공기,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았던 큰딸의 미술작품과 나무 계단이 내뿜던 어둠의 차갑고 퀘퀘한 냄새,

사투리를 쓰던 새로운 아이들에 둘러싸였던 순간의 왕왕거리는 소음의 이미지,

시골의 풍경과 휘황찬란한 아파트 단지가 길 하나를 두고 뒤섞인 이곳의 공기,

오직 둘만 지내는 넓고 휑한 집안 곳곳에 불을 켜던 내 남자의 손길과 스위치 켜는 소리,

잘 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 성급하게 움직거리다가 괴상한 실수만 만들곤 하던 많은 기억들-목도리 뜨기를 포함하여-,

떠나기 전까지 절절하던 친구들의 우정을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짧은 편지 한 장으로 확인하던 때,

이유도 모르는 채 자꾸 많은 식물들을 돌보고 씨를 심거나 삽목을 하면서 화분을 늘여가는 내 모습까지.

모든 것들이 너무 또렷한 잔영을 남기며 나를 통과하였던 것이다.

 

'고독의 연대'라고 부를 수 있는,

누구나가 가질 수 법한 그 외로움이라는 게

왜 온통... 내 안에 다 남아 있단 말인지.

 

은희경 작가님의 목소리들로,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은 감상으로,

누구나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야... 확인한 후에야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었다.

 

 

 

 

 

 

 

 

외로울 수 있어, 그래 그럴 수도 있어,

꼭 이겨야 하는 것도(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겠냐마는) 버텨야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누구나 겪는 거구나, 어떤 과정 중에 있는 거구나..하고 조용히 감싸안을 수 있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p.s. 책을 읽던 도중. 어느 날의 페북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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