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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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안나의 방에는 푸른 얼음의 벽이 생겨났다. 타일 위의 습기가 살얼음이 되어 투명하게 벽을 도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벽이면 안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차갑고 푸른 모자이크 타일에 둘러싸인 채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의 몸이 얼음이 가득 담긴 유리그릇으로 변한 꿈을 꾼 날도 있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p.21~22

 

엄마는 흰 꽃과 보랏빛 꽃이 핀 바이올렛 화분 두 개를 샀다.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햇빛에 내놓았더니 잎이 점점 늘어가며 옆으로 퍼졌다.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연한 연두색 잎이었다. 얼마 뒤 엄마는 날카로운 면도날로 가장 건강한 잎 하나를 잘랐다. 잘린 면으로 고통을 머금은 맑은 수액이 몰려 고였다. 그대로 물이 담긴 유리컵에 담그면 연두색 잎은 중심을 잡기 위해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 고요히 물 위에 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보면 잘린 면에서 마침내 실처럼 가늘고 투명한 뿌리가 한두 개 돋아나는 것이었다. 또 며칠이 지나면 제법 여러 개의 하얀 뿌리가 물속을 향해 뻗어내렸다. 어느 정도 뿌리가 많아지면 화분의 흙에 옮겨심었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거기에서도 바이올렛 꽃이 피었다. 흰색 꽃의 잎에서 돋아난 뿌리는 흰 꽃을 피웠고 보랏빛 꽃의 뿌리에서는 영락없이 보랏빛 꽃이 나왔다. 우리 아빠는 엄마가 바이올렛 화분을 지나치게 많이 산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화분이 늘어 있었다. 잎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도마뱀 꼬리가 끊어지는 자리에서 다시 꼬리가 나온다는 건 알겠지만 잎에서 뿌리가 돋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엄마의 특별할 것도 없는 재주를 칭찬했다. 시간이 걸릴 뿐이야. 엄마가 대답했다.

프랑스어 초급과정    p.70

 

 

때때로 그해 여름을 떠올리곤 한다. 엄마는 늘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였고 집안의 모든 전등을 밝혀놓았다. 소리를 크게 한다고 영어를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불을 켜놓는다고 해서 삶이 명쾌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는 자기를 둘러싼 어둠에 최소한이나마 저항의 신호를 보내야만 했다. 그때 엄마와 한편이 되어준 것은 불행한 여인의 식탁과 초대받지 못한 처녀의 파티 드레스, 그리고 잊혀진 작가의 후회스러운 젊은 시절 등 행복 바깥의 것들이었다. 그때 좀 이상했던 건 사실이잖아.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보수적인 열세 살이었거든. 엄마는 인생에 대단한 것은 없고 모두가 고독 속에 죽어갈 거라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견디기 쉬워진다고 한다. 아마 그런 식으로 사라의 죽음이라는 목차에다 자신의 고독을 슬쩍 끼워넣었을 것이다. 죽음같이 센 쪽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앞에 잠시 고독을 내려놓는 것쯤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p.146~147

 

 

 

언젠가부터 책들을 대하는 내가 좀 바보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나를 드러내 보이거나,

소소한 내 감정에만 몰두를 하고 있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 다음에 책을 읽은 후에 쓰는 독후감(리뷰?)만큼은

개인적인 감정은 모두 없애고 오직 '소설'만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 장치의 의미는 이렇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의 어떤 것과 이렇게 저렇게 관련이 있다고 해석된다,

아마 이 인물이 보인 행동은 이런 의식의 발현이다....식

-내가 아는 가장 '객관화'된 자세로.

 

 

단편 소설이 모인 소설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어느 팟캐스트에 등장한 은희경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날의 나는

루시아, 안나...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들으며

한국 사람이라면서 이름들이 참 낯설다 생각하며

욕실에서 손빨래를 하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설을 읽으면서 거리두기, 냉정한 태도로 소설을 바라보기-그게 가능한 줄 알았다.

 

소설을 읽다가, 나의 '사전 결심'은 와르르 무너졌다.

순간순간 내가 가진 기억의 이미지들이 와라락 왔다가 사라졌으므로.

 

미망인 집의 자취방에 기거하던 나날과 먼 바람이 코끝을 차갑게 하던 밤의 공기,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았던 큰딸의 미술작품과 나무 계단이 내뿜던 어둠의 차갑고 퀘퀘한 냄새,

사투리를 쓰던 새로운 아이들에 둘러싸였던 순간의 왕왕거리는 소음의 이미지,

시골의 풍경과 휘황찬란한 아파트 단지가 길 하나를 두고 뒤섞인 이곳의 공기,

오직 둘만 지내는 넓고 휑한 집안 곳곳에 불을 켜던 내 남자의 손길과 스위치 켜는 소리,

잘 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 성급하게 움직거리다가 괴상한 실수만 만들곤 하던 많은 기억들-목도리 뜨기를 포함하여-,

떠나기 전까지 절절하던 친구들의 우정을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짧은 편지 한 장으로 확인하던 때,

이유도 모르는 채 자꾸 많은 식물들을 돌보고 씨를 심거나 삽목을 하면서 화분을 늘여가는 내 모습까지.

모든 것들이 너무 또렷한 잔영을 남기며 나를 통과하였던 것이다.

 

'고독의 연대'라고 부를 수 있는,

누구나가 가질 수 법한 그 외로움이라는 게

왜 온통... 내 안에 다 남아 있단 말인지.

 

은희경 작가님의 목소리들로,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은 감상으로,

누구나 느낄 수 있었던 기억이야... 확인한 후에야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었다.

 

 

 

 

 

 

 

 

외로울 수 있어, 그래 그럴 수도 있어,

꼭 이겨야 하는 것도(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겠냐마는) 버텨야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누구나 겪는 거구나, 어떤 과정 중에 있는 거구나..하고 조용히 감싸안을 수 있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p.s. 책을 읽던 도중. 어느 날의 페북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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