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대중가요 중에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노래가 있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가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뭐야. 뭐야.
신나는 비트에 기타가 뚱땅거리는 락음악이기도 해서 신이 났고
그 후렴구가 나름 뼈 때리는 질문 같기도 해서
딱 반항하기 좋아하던 청소년(이었던 나!!)들이 장난처럼 흥얼거리기도 한 노래다.
-물론, 신해철을 '마왕'이라 부르던 사람들은 더 더욱 좋아했다, 그래 나!!!ㅋㅋㅋ-
요즘 문득
그 노래가 화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채
'남이 그러더라'는 이유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 하고 목표로 삼아 따르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생떼를 쓰는 어린 꼬맹이부터
더 이상 날 바꾸려 하지 마라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어쩌면 모두가 '진짜 마음'은 모르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말해도 돼요?"
"에휴.. 어떻게 그렇게 말 하나, 남 부끄럽게."
왜 내가 원하는 걸 허락받으려고 할까,
왜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이 간섭하도록 내버려두려 할까.
진짜 내 속마음이
가만히 보고 있기엔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 할까 자신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생각해보면 '노골적'이면 어떤데?
'노골적'이라는 표현은 어떤 가치도 없다, 감정도 없다. 그냥 한글 단어다.
그 단어로부터 낯뜨거운, 부끄러운, 숨기고 싶게 쿰쿰한 자신의 기억 한자락을 얹어서
진짜의 맨얼굴을 숨기게 되는 건 아니냐고.
A:부자가 되고 싶어.
B:으, 속물!!!
A:왜 부자가 속물이야?
B:부자 못봤어? 자기 밖에 모르고, 돈만 좇는 사람!
A:어디서 그런 부자를 봤는데?
B:왜 있잖아, 드라마 같은 데에서.
A:드라마가 진짜야? 다큐멘터리야?
B:......
혼자서라도 이렇게
묻고 물어라, 진짜 바라는 게 뭔지.
그리고 그걸 향해 내가 어떤 감정을 투영시키고 주입했는지.
사실 그 '해당목표'는 가치중립적인 어떤 목표일 뿐이다.
깨버려야 한다, 나 자신의 자기검열을! 편견을!
그리고 깨버리는 작업은, 내 진심을 알고 나면 쉽게 해낼 수 있다.
좋아하는 글귀 중에
소설 <도련님>으로 유명한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다른 작품 <태풍>에서 썼다는 표현이 있다.
이상이 있는 사람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걸어냅니다.
방황하고 싶어도 방황할 수 없습니다.
혼이 이쪽, 이쪽하고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진짜다.
내 목표가 있으면 딴 길을 가다가도 돌아온다.
-내가 그랬다. 좋은 대학에서 교사자격증을 두 개나 따고도 방송대에 가려고 했다.
(과거형으로 쓰는 건, 진짜 마음에서 비웠기 때문이다. 얼른 자퇴해야지^^)
A: 나 방송대 갈래.
B: 왜?
A: 거기서 청소년학과를 다니려고.
B:왜?
A: 난 청소년들을 상담해주고 싶었으니까.
B: 왜?
A;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으니까.
B: 위로나 힘이 되어주는 건 상담으로 가능하고?
A: ......
B: 왜 상담이라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A: .....
이런 선문답(?)을 하다가 깨달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딴 곳을 바라보다가 진짜 원하는 걸 놓치고
시간만 노력만 낭비했다고 툴툴거리다 말 건가.
한 두 번이야, 후훗 웃으면서도 금방 돌아올 수 있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면 지치고 힘든데?
굳이 그 쓸데없는 방황을 경험삼아 계속할 건가?
그렇게 진짜 내 마음도 모르고 다른 사람 시선에 신경 쓰다가
진짜 간지러운 내 다린 두고 남의 다리만 긁고 있을 건가.
내 맨얼굴을 내가 본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지 말자, 그냥 그렇게 된 거다.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지자.
자신의 진짜 마음과 욕망과 목표를 마주하고 나면
어떤 쓸.데.없.는. 방황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게 된다.
믿어라,
일이 안풀리고 힘들 땐 흥얼거려라.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끊임없이 물어라.
이 글을 읽는 그대가, 방황을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목표이건 꿈이건 마음껏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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