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느린 여행을 꿈꾸며

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몇년 전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준비하며 박완서씨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통화가 되는 일이 상당히 어려울 것라는 막연한 걱정과는 달리 쉽게 이뤄진 박완서씨와의 통화, 아주 정중히 독일 여행(책 내용 중에 독일여행은 아마 이때쯤이셨을까?)때문이라며 강의를 거절하시긴 했지만 그녀의 느리고 친절한 말투에 참 겸손하신 분이구나 생각했었다.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읽으며 느린 그녀의 말투처럼 아주 찬찬히 모든 사물을 애정으로 대하고 계시구나 싶으면서 한편 정적으로 느껴지는 그 분 어디에 이렇듯 타지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여행 가방을 꾸리는 정열이숨어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자신의 위선의 밑바닥까지 숨김없이 드러내는 솔직함 또한 그녀의 삶의 깊이와  친근감을 더해준다.

기행산문집인 이 책은 1부에서 발전이란 이름으로 헤쳐지고 허물어져버린 우리 국토의 이 곳 저 곳, 지금 가장 낙후된 곳으로 보이지만 훗날 이 땅을 진정 빛나게 할 마지막 희망인 남도, 하회마을, 섬진강, 오대산 기행을 소개하고,

2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문사절단으로서의 아주 특별한 경험이 담긴 바티칸과 중국의 독립운동 유적지, 3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조금은 우울하지만 우리에게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았던 그 날을 돌이켜보게 하는 참담한 기록을 담고 있다.

4부는 개인적으로 가장 나의 시선을 끌고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여행기로 티베르를 지나 히말라야의 최고봉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넘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이른 그녀의 나이를 잊게하는 흥미진진한 여행기이다.

여행이라면 늘 무언가 배우고 와야한다거나 짜여진 시간 안에 얼른 다녀와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며 그 곳의 숨쉬는 문화와 사람 사는 모습까지 한번쯤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녀가 많은 나이와 고산병에도 불구하고 감행한 에베레스트 여행은 평상시에 나의 관심과 더불어 50전에 꼭 도전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했다.

꼭 읽어보시라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