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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역사적인 사건이나 실제적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면 늘 혼란에 빠진다. 현실과 픽션에 대한 구분이 감정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까. 소설 속에 역사를 심는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리진' 은 그 둘이 멋지게 합쳐짐으로써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로, 또 다시한번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오랫만에 소설다운 소설, 사랑이야기다운 사랑얘기를 읽은 감동이 몇일 동안 함께 했다. 역시 신경숙이다는 편견일지 모를 신뢰도 한층 두께를 더했다할까.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사랑이야기가 이토록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이제는 이런 사랑의 열정에 나를 던질 수 없다는 일종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런지.....
'리진'은 조선말 궁중무희 리진의 이야기이다. 리진의 아버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채 천주교도라는 추측만이 가능하고 어머니는 리진과 함께 은둔의 삶을 산다. 그러던 중 궁중 나인의 언니인 서씨의 도움으로 궁중에 발을 딛게되고 그 우연은 리진이 무희로서 궁중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운명의 출발점이 된다. 타고난 춤솜씨와 아름다움으로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게된 리진은 흥선대원군과의 갈등 속에서 늘 불안한 삶을 사는 명성황후를 곁에서 지켜본다.
리진의 '춘앵무'를 통해 지친 삶의 위안을 받던 명성황후는 어느 날, 프랑스 외교관의 환영연회에 리진이 춘앵무를 출 것을 명령하고 리진의 춤은 여러가지 미묘한 상황의 뒤섞임을 초래한다. 연회 전에 이미 리진과의 첫만남을 통해 사랑을 품게 된 프랑스 외교관 콜랭과의 직접적인 인연의 계기, 또 고종의 리진에 대한 은혜의 감정 그로인한 명성황후의 두려움까지......
리진에 대한 콜랭의 순간적 만남을 통한 사랑을 보면서 문득 '사랑은 섹스어필을 통해 시작한다'던 말이 떠올랐다. 동양적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빠지는 단번에 빠져드는 콜랭을 보면서......고종조차 리진의 춤에 빠져들었을 때 명성황후의 진정한 두려움은 고종을 잃는 것이 아니라 리진을 잃게 되는 것이 었던 것 같다. '너하고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 (아,,정확한 표현이 생각나질 않는다)는 명성황후의 말이 말해주듯....
명성황후의 말은 리진을 콜랭을 따라 프랑스로 따라가게 하는 결정타가 되었던 것 같다. 프랑스로 떠나는 것은 확실치 않은 사랑, 콜랭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 또한 어려서부터 마음을 두고 있었던 강연을 버릴 수 있는 강함, 전혀 모르는 세계로 떠나는 무모함까지 감수하게하는 여러가지 결정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프랑스 사교계에서 여러모로 환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견딜 수 없는 소외감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가는 리진은 늘 명성황후를 생각하며 결국 붙이지 못할 편지를 쓴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콜랭과의 이별을 맞게 되는 리진의 이야기가 가장 슬프면서 가장 소설적 흥미가 가득한 부분이었다. 또한 가장 감동적이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하듯이 사랑도 변하지만 그 사랑을 보내는 리진은 조선인 리진의 가장 꼿꼿한 기개가 엿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명성황후의 죽음 앞에 선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가 진정 사랑한 사람이 누구였을까 생각해본다.
리진의 말처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명성황후를 은혜하였던 것은 아닐까. 콜랭 안에 있으면서 그녀가 늘 목마르고 그리웠던 것은 명성황후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콜랭을 따라 프랑스로 간 것이 아니라 명성황후를 평안히 해주기 위해 프랑스행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는가하고 말이다.
내가 '리진'이 된 듯 사랑하고 이별하고 죽음을 맞은 듯 오래도록 그녀를 가슴에서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