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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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저자가 짧은 간격으로 책을 내면 괜스레 의심과 기우가 생긴다. 저자의 진정성과 열정이 상업성과 타협을 해서 변절된 것은 아닌지, 내용의 깊이가 떨어지고 구태의연한 글을 써내서 식상해진 건 아닌지…? 정여울은 내가 손에 꼽을만큼 좋아하는 국내 저자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이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여울에 대한 나의 애정은 이 책을 읽고도 유효하다는 것과 나는 또 이 저자의 책을 기다리겠구나 하는 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영재원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때는 특목고와 자사고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교 때는 취업을 위해, 취업을 하면 승진을 위해, 재취업을 위한 재교육까지…. 대한민국의 공부는 끝이 없다. 이 땅에서 공부는 철저하게 생존을 위한 ‘의무’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평생에 걸쳐 공부를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열정은 고갈되고 정신은 피폐해지며 삶은 더 팍팍해진다. 이쯤되면 공부의 의무 따위는 떨쳐버리고 공부의 노예를 벗어나 자유인이 되라고 조언을 해주는 책이 나올 법한데 저자 정여울은 공부만이 잘 사는 길이라고 공부를 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다만 공부는 의무가 아닌 ‘권리’임을 내세우면서.


이 책은 저자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존엄을 지켜 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문학과 철학과 역사, 심리학과 신화학에 관한 공부를 통해서 얻어낸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다. 책을 읽으면 저자가 걸어온 공부의 길에 새겨진 발자취가 오롯하게 드러난다. 그 길에는 그리스 고전과 비극과 신화도 있고, 심리학의 대가인 카를 구스타프 융과 아들러도 있으며, 성경이 인용되고, 마르크스와 장 뤽 낭시와 지그문드 바우만이 있고, 고전 문학 작품과 다양한 저자들의 책이, 그리고 영화들이 나온다.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깔려 있는 책이지만 인문학적 지식이 부족한 독자라도 저자의 글은 조곤조곤 따뜻하게 공부의 길을 안내하기 때문에 읽기에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인문학적 지식이 풍부한 독자라면 저자가 가진 지식의 연결과 뜻밖의 조합들이 빚어낸 사유의 결과물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다루는 내용 중 심리학자 로버트 A.존슨의 [내면의 황금]이라는 책이 소개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은 대부 혹은 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증언하는데, 저자는 대모나 대부를 실제 세상에서 만나거나 찾지 못한다면 너대니얼 호손의 소설 [큰바위 얼굴]에서처럼 사물을 통해서 찾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면의 황금을 ‘큰바위 얼굴’이라는 이상적인 사물에서 찾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거대한 바위산일 뿐이지만 거기에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했지요. 즉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정수인 내면의 황금을 맡김으로써 큰바위 얼굴은 한 시대의 뜨거운 상징이자 인류 보편의 ‘내면의 황금’이 된 것이지요.

(p155)

저자의 책속에는 인류 보편의 ‘내면의 황금’이 된 여러 책들이 소개된다. ‘큰바위 얼굴’에서 사물을 통해 멘토를 찾은 것처럼 진정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실제 세상에서 만나지 못한 진정한 공부의 멘토를 이 책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 또한 그런 멘토의 역할을 해주는 책으로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스스로 마취약도 없이 내 상처를 꿰매는 멋진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삶은 아직 더 살아야만 풀어지는 아름다운 신비’임을 깨닫게 한 것이 나에게는 공부였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이보다 더 가슴에 와닿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부할 권리는 살아갈 권리이고 행복할 권리이다.




* 해당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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