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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
하비 리벤스테인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공포는 돈이 된다. 공포 영화나 놀이공원의 각종 기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식의 공포 체험도 돈이 되긴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보거나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공포를 체험해 봄으로써 느끼는 즐거움때문이지 순수한 공포 그 자체 때문은 아니다. 진짜 돈이 되는 공포란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모든 식품 중에서도 우유는 불순물, 특히 결핵과 장티푸스균이 번식하기에 최적의 장소”(36)

“‘창자의 부패로 인해 유발되는 질병이 사라진다면 인간의 수명은 120-140세까지도 연장될 수 있을 것이다.”(52)

햄버거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것보다 약간 더 나은 것일 뿐”(89)

화학 첨가물이 식품의 부패를 막거나 지연시킨다면 분명 소화 시스템에도 유해할 것”(124)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비타민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다.”(147)

신선하거나 자연 그대로의식품을 멀리하고, 저장 식품과 가공식품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미국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173)

 

<음식 그 두려움의 역사>에서 간단히 뽑아본 목록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먹거리를 두고 벌어졌던 다양한 논란들, 즉 대개는 터무니없었고 어떤 것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던 사건들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배경을 폭로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주로 190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걸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20세기 초와 미국이라는 시간적·공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왜일까? 당장 오늘의 신문을 펼쳐 사회면이나 건강, 혹은 과학 지면을 펼쳐보기만 해도 위와 유사한 문장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돈이 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되는 일은 생명력이 길다.

 

공포는 왜 돈이 되는가? 아마 그것은 인간이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 먼 원시시대의 인간은, 아니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이후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최상의 목표로 삼았을 테고, 안정적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 위험한 것과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치도록 본능적으로 학습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유전자 어딘가에 깊이 각인된 위험을 회피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은 생명의 진화를 비롯하여 문명의 발달과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자연을 정복했다고 자부하는 현재에도 그런 성향이 남아 있을까? 당연하다. 수십만 년 혹은 수백만 년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장구한 진화의 역사에서 약 1만 년의 문명의 역사나 겨우 수백 년밖에 되지 않은 과학혁명 이후의 시간은 인간에 내재된 성향을 변화시키기엔 대단히 짧은 시간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와 경계심을 가지고 있고, 잘 알지 못하는 분야나 영역에 선뜻 뛰어들길 주저한다. 오히려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에 문득 비가시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어떤 것이 나타나게 되면 더 큰 불안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광우병 사태를 생각해보자.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자가용을 이용하다 사망할 확률보다 훨씬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국산 소고기를 꺼려했고 수입을 결정한 정부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는 자동차 운전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기에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데 반해, 광우병은 언제 어떻게 어떤 경로로 나에게 침투할지 알기 어렵기에 극미한 확률에도 불구하고 더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위험회피성향의 당연한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두려움과 불안, 즉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투자한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생존을 위한 자연스런 반응인 것이다.

 

기업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공포 마케팅은 이렇게 탄생한다. ‘이걸 먹지 않으면 이런저런 병에 걸리게 될 거야.’ ‘이걸 먹으면 이렇게 건강해질 거야.’ ‘저런 걸 먹으면 해롭기 때문에 이런 걸 먹어야 해.’ 등의 말들이 전문가의 연구 결과라는 이름표를 달고 미디어에 등장하면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기존의 식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식품으로 몰려간다. 열기가 한풀 식을 때쯤이면 다른 것이 등장하여 또 한바탕 바람을 일으킨다. 이 주기가 하도 다양한 종류에서 반복되어 일어나다 보니 이번에 몸에 좋다고 판명된 것이 얼마 전에는 몸에 해롭다고 판명되어 끊었던 것이라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공포마케팅이 음식과 같은 필수품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여기는 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경쟁 사회 속에서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아니 적어도 남들에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식으로 불안감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점점 확장되어 간다. 성형과 미용 그리고 사교육이 바로 이런 공포마케팅으로 급성장한 대표적 분야일 것이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소비. 이를 아는 기업들은 더 많이 팔기 위해 계속 불안감을 자극해야 한다. 일종의 협박의 경제학.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내 개인적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무관심합리적 의심이 꽤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관심이란 건강에 대한 무관심을 말한다. 좀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건강에 대한 조바심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해 더 해롭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먹고 싶은 걸 먹고 먹기 싫은 걸 안 먹었을 때의 심리적 행복감이 억지로 무언가를 먹거나 안 먹을 때의 괴로움보다 더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다(!).

 

합리적 의심이란 미디어의 속성과 과학적 발견의 절차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미디어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실제보다 과장된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학적 발견이란 수많은 반복된 검증 실험을 거쳐 이론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기에 논문 하나로 모든 게 명백하게 밝혀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 하나를 근거로 미디어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면 일단 의심하고 기다려보는 것이다. 반대 주장이 나와 뒤집히든 근거들이 추가되어 확증되든 할 테고, 그때 뭔가 변화를 시도해도 충분하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기다리다보면 무관심(!)해지게 된다. 꽤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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