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절필 선언 이후로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그의 저서 대부분을 구입해 읽었고 최근의 칼럼들도 챙겨 읽던 충실한 독자로서 나 역시 어떤 아쉬움이 있다. 마치 나의 과거 일부분이 영원히 닫혀버린 느낌. 그의 수려한 문장이 주던 짜릿한 쾌감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시 복귀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확고한 자유주의자 논객으로서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진단과 구체적 대안을 요구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그에겐 논객으로서의 새로움이 없었다. 사회에 대한 발언은 점점 줄었고, 간혹 발언을 한다고 해도 예전에 했던 얘기들이 변주되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빈자리를 주변 인물들에 대한 회고담으로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더 이상 새롭게 할 말이 없는 논객.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나는 그가 사회비평을 왕성하게 하던 시기로부터 우리 사회가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기에 동일한 얘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지적 게으름으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을 게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글쓰기의 동력을 가질 수 없을 테니, 절필은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물론 (선의의 독자로서) 나는 전자의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절필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 사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꾸준히 제기한 요구사항은 대단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원칙을 지키고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자.’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민주주의를 유린할 가능성이 높은 박근혜가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되어 있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이건 단지 보수 진영만을 향한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문구 중 하나는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그가 현실 속에서 만들어놓은 결과이지 그의 내심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후, ‘노무현의 진정성운운하는 이들에게 했던 일갈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그놈의 진정성을 놓지 못하고, 오늘날 다시 안철수나 문재인 등에게 덧씌우고 있다. 이쪽도 시궁창이긴 마찬가지다.

 

근 십여 년 동안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짜증. 나는 이것이 그를 절필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짜증이 누적되고 왜곡되어 독설로 바뀌기 전에 놔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고맙게도 그는 많은 책을 출판해 놓았기에 그의 문장이 그립다면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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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9-2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그래서 고종석의 글이 요즘 안 보였던거군요...글쓰는 것이 전부인 글쟁이에게 글쓰는 일이 무능력해 보이고, 그래서 글쓰는 일을 포기했다는 말이 너무 서글프게 들리네요.

nunc 2012-09-27 11:54   좋아요 0 | URL
그냥 제 개인적인 느낌과 해석일 뿐입니다.^^;
혹시 절필선언 안 읽어보셨다면,여기서 읽어보시면 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29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