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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
요아힘 나겔 지음, 정지인 옮김 / 예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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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포물을 그다지 좋아하질 않는다. 직접적 이유는 공포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 즉 서로 죽이고 난도질하고 썰어대곤 하는 모습들이 끔찍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 죽이는 일을 즐기며 볼 수 있다니! 가끔 호러 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런걸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환호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그 부정적 측면이 극대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생생한 공포인데 굳이 따로 공포물을 찾아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나 할까. 대량해고, 산업재해, 교통사고, 빚더미에 앉아 자살로 떠밀리는 사람들, 충분히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자연재해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상의 공포들이 널려 있는 사회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공포물이란 그런 일상의 공포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수단이 아닐까 하는 혐의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뒤늦게 <렛 미 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물론 영화는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늙지 않는 뱀파이어 소녀와 자신의 전 생을 바쳐 소녀에 대한 사랑을 증명해야 하는 한 남자, 그리고 소녀에게 새롭게 선택되어 예정된 삶을 살아가게 될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이 이야기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스토리는 대단히 매혹적이고 긴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뱀파이어가 누군가의 피를 통해서만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 소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피를 짜내 소녀에게 바쳐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의 피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결국 자신의 피를 내줘야하며, 금세 또 다른 제공자로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며, 이것이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대한 하나의 은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노동자의 피로 젊음을 유지하는 부르주아들.

 

<뱀파이어,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받아들면서 이런 생각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약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뱀파이어 현상의 사회학적 의미를 다루기보다는 말 그대로 뱀파이어의 역사를 차곡차곡 정리한 책이었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이해는 언제나 대상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이 책은 고대 신화에서부터 문학, 회화, 영화, 오페라, 대중음악, 만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를 망라해가며 대중문화에서 뱀파이어가 다루어져왔던 방식들을 화려한 화보들과 함께 하나하나 친절하게 정리해놓음으로써 나와 같은 문외한이 쉽게 뱀파이어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게 뱀파이어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어 얻게 된 첫인상은, 뱀파이어란 존재는 실로 인간을 매혹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총집결한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이나 좀비와 같은 여타의 아이콘들과는 달리 유독 뱀파이어만이 지속적,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뱀파이어에는 죽음을 회피하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구, 흡혈과 같은 금지된 행위에의 열망, 흡혈을 함으로써 상대를 나에게 복종시키는 권능, 외딴 곳에 지어진 성이나 무덤과 같이 어두침침하고 그로테스크한 공간에 대한 생래적 두려움 등 인간이 가진 온갖 욕망과 두려움이 뒤섞여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설명처럼 뱀파이어는 우리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오늘날의 뱀파이어 영화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욕망을 지극히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이는 짐작하건대 우리가 이 상상의 존재를 우리의 불안과 갈망을 비추는 거울로 여기기 때문일 터이고, 또한 욕망과 공포가 더할 나위 없는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329)

 

비현실적 대상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언제나 그들이 현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그렇다면 뱀파이어라는 이 거울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불안의 해소와 갈망의 충족일까? 아니면 새롭게 더 커진 불안과 갈망일까? 아니면 우리가 가진 불안과 갈망에 대한 반성과 성찰일까?

 

나는 그것이 우리가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불안과 충족되지 못하는 갈망으로 점철된 일상을 살아가는 이라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더 큰 불안, 그러나 실현가능하지 않은 불안에 자신을 맡기기 쉽다. 공포물이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공포영화는 잘 된다는 세간의 통념은 바로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 영원히 계속될 이야기라는 저자의 단언이 달갑게만 들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하는가에 달려있다. 뱀파이어가 가져다주는 가벼운 자극에 흠칫 몸을 떨다가도 뱀파이어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함의들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현실의 욕망에 굴복하여 뱀파이어가 되길 갈망하거나 혹은 현실에 대한 회피나 대리만족으로써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모습에 환호하게 될 것인지. 우리가 전자의 방식으로 뱀파이어를 즐길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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