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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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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의하면 이 책은 한국의 근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해명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이 근대의 탄생이 아니고 인민의 탄생인가? 그 이유는 바로 근대가 인민 개념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통치 대상으로서의 인민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인민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근대가 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로서의 인민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한다면 자연스레 우리사회에서 근대의 형성과정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체로서의 인민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는 기존의 인민, 통치 대상으로서의 인민이 처해 있던 조건과 그 조건의 변화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건국 이래로 조선은 유교국가로서 매우 강고한 통치 구조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이 통치 구조의 세 축은 성리학적 우주관과 조상 숭배를 통치 이념과 결부시킨 종교적 의례’, 신분 직역과 부세 의무를 강제하는 향촌 지배’, 지배 이념의 도덕과 윤리를 재생산하는 교육’”(35)이다. 이 종교, 정치, 지식이라는 세 축이 유교라는 통치 이념을 중심으로 매우 강력하게 결합되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세계 역사상 유래 없이 긴 왕조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오면 인민을 지배하고 있던 각각의 축에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 먼저 종교의 영역에서는 천주교의 내세 사상과 평등 사상의 유입으로 인해 유교적 가치관이 붕괴하게 된다. 지식의 영역에서는 언문 문학의 확산으로 평민들 사이에서도 해학과 풍자, 내적 성찰 등과 같은 주체적 의식이 싹트게 된다. 마지막으로 정치의 영역에서는 경제적 수취의 심화로 인해 이에 대항하는 민란과 같은 저항 의식이 표출되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조선을 강력하게 지탱해 온 통치구조의 세 축이 점차 와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균열을 추동한 동인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영역이고 각각 균열이 발생하고 심화된 시기도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세 축이 와해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한글로 수렴될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표음 문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되자 인민은 감정, 정서, 비판 의식 등 내면의 소리를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표현된 소리즉 언문 문서가 다시 인민에게 새로운 의식 세계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135) 저자가 보기에 이는 하나의 역설인데, 왜냐하면 한글 창제의 목적이 바로 유교 이념을 백성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통치구조의 강화를 위해 창제된 한글이 평민들의 담론장 형성에 기여하여 기존의 통치구조를 무너뜨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한글의 사용과 확산은 한자에 기반을 둔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교 사상과 이로부터 비롯된 통치구조인 종교, 지식, 정치 체제와는 사뭇 다른 인식적 공간을 열어젖혔고, 이 공간을 통해 주체적 인민이 탄생하면서 근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논증을 입증하기 위한 각종 사료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책 말미에 자그마치 아홉 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는 참고문헌의 목록은, 저자가 서론에서 밝힌 바 있듯 미시사적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종합하여 거시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로선 이 책의 세부 논증의 타당성을 검토할 능력은 없기에, 평범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자.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의문은 왜 근대인가?’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20세기 한국의 기원을 알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이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선행하는 근대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 다시 말해 현재 우리 사회에 두드러지는 어떤 현상이 근대로부터 기원하고 있고 그래서 근대를 알아야만 그 현상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책만 가지고선 여기에 담긴 탐구가 어떻게 현재와 연관을 가질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이 책 자체가 근대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는 원대한 여정의 출발점이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이 단순히 특정 시대의 시대상을 서술하는 역사서로 계획된 것이 아니며, 또한 서양 이론에 기댄 연구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독자적 사회과학의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기에 담겨 있는 연구들이 한국 사회의 현재를 해명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그 접점들을 계속 언급함으로써 독자의 주의를 집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그땐 그랬군’, ‘그런 일이 있었군.’ 식의 감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한 책의 구성에서도 다소 급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눈에 띄게 자주 보이는 오탈자는 차치하고서라도, 동일한 이론적 내용이 여러 번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심지어 똑같은 문장이 다른 부분에서 중복되어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 이론적 내용의 진척 없이 사례들만 반복적으로 나열하는 인상을 준다. 물론 자신이 연구한 풍부한 사료들을 저술에 충분히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했던 얘기 또 하네라는 느낌을 주어 논의 전개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게 된다. 논문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일관된 저술이라면 보다 압축적으로 정리정돈 하여 독자의 집중력을 최대화 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이처럼 책을 읽고 나서 몇 가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저자의 문제의식과 지적 성실성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러한 연구의 누적이 우리의 지적 토양을 탄탄하게 다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탄생을 통해 근대의 전개 양상을 고찰할 것이라는 후속 연구도 기꺼이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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