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로 올라왔다. 모든 게 끝나니 몸에서 활력이 샘솟거나 갑작스럽게 피어오른 모성애로 어쩔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한없이 나른하고 멍했다. 오로라 불리는 검붉은 피가 나오고 회음부 꿰맨 자국은 따끔거리다 쿡쿡 쑤셨다. 아기가 들어있던 배가 살짝 부은 듯 나와있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잠을 자지 못했는데 희안하게 잠이 안 왔다. 환각처럼 여러 생각이 스치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임신한걸 안 후에 조산원에서 출산하려고 맘을 먹고 이곳저곳 알아봤다. 수도권 쪽에만 집중된 조산원도 문제였지만 진통만 하다 산부인과를 찾았다는 사연을 읽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했다. 출산 직후에는 아기도 나도 무사하게 출산을 마쳐서 참 다행스러웠다. 아무 탈 없이 출산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여러 산모를 진찰하고 출산하는 산부인과에서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는걸 이해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출산기를 읽다보니 울컥한 게 치밀어 올랐다. 낳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였다.
조산원에서 아기를 낳은 엄마들의 평화로운 감상, 산부인과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경험담.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고요해야할 순간에 아기를 끄집어내고 짜내듯 낳은 것 같아 속상했다. 간호사들이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의사를 부른 것도 괘씸했다. 아기가 나오는 순간에만 의사가 있어야 된다는건가 뭔가. 게다가 그 모든 과정을 아무 설명 없이 당하듯 출산한 것도 속상하긴 마찬가지.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놨더니 보따리 찾아내란 심보인가. 평소 현대의학에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출산 후 극대화됐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나랑 아기랑 둘 다 건강해서 너무 다행이지만 한켠에선 아기에게 미안하고 내 선택이 후회스러웠다. 좀 더 강하게 의지를 보여서 원했던 출산 환경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간신히 잠이 들었다. 덥고 찌뿌등했다. 후련하고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은 물에 적신 솜처럼 축 늘어진 채 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다.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엄마들을 부른다고 했다. 아직 아무것도 준비 안 됐다고 했더니 간호사가 알려준다고 했다. 삼일쯤 지나야하지 않나. 어제 잠깐 얼굴만 봤던 아기를 다시 만난다. 설렜다. 소독을 하고 신생아실에 들어가 아기를 안고 젖을 물렸다. 젖이 나올리 없었다. 밥 먹은지 좀 됐다고 했는데 아기도 별로 젖을 빨고 싶지 않아보였다.
젖을 안 빨길래 가만히 안고 아기를 바라봤다. ‘네가 열달 동안 엄마 뱃속에 있었구나.’ 울컥, 뭔가 차올랐다. 눈가에서 열이 났다. 열달 동안 아기를 배고 있으면 아기가 태어난다는 자명한 사실은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품에 안은 순간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만히 안겨있던 아기가 칭얼대서 기저귀를 갈아줬다. 너무 작고 작아서 행여 다칠까 조심스럽게 아기 몸을 만졌다. 뽀얀 아기 냄새가 났다. 이 세상 생명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다시 아기를 안고 있는데 건너편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 이야기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올라와 한참을 생각했다. 아기를 낳기 전 생각과 현재의 맘, 뭘 가장 원하고 어떤걸 피했는지. 다음날 아기 낳기 전 예약했던 산후조리원에 안 가고 아기와 함께 퇴원을 했다. 아기가 내게 와서 이 세상에 왔는데 엄마가 해줄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꼽 소독, 밥 먹는 것, 목욕까지 다 겁이 났다. 산후조리원에서 불안감을 유예하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신생아실에 아기를 두고 편하게 쉬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대한 미움도 한몫했다. 결국 산모도우미를 쓰는 것으로 주변과 타협해서 아기랑 지내기로 했다.
지나고보니 잘 한 선택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조리를 하지 않고 비용대비 적절성을 따졌을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니면 안 가져도 될 미안함에 괜히 자신을 괴롭혔을지도.
그리고 지금까지 서툴지만 천천히 아기랑 친해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