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나왔다고 했다. 아기가 나온 길을 통해 탯줄이 나왔다. 아기 나오는건 간호사가 시킨 여러가지 것을 지키고 진통과 함께 힘을 주느라 느끼지 못했지만 탯줄이 드르륵 내 몸에서 빠져나온 느낌은 생생했다. 회음부를 마취하고 절개한 느낌은 나지 않았다. 간호사가 배를 꾹꾹 눌러 태반 배출을 도왔다. 휴, 드디어 끝났다. 아기를 만난다는 기쁨보다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녹색 수술보에 감싸인 아기가 잠깐 가슴에 안겨있다 옮겨졌다. 태동이 멈추고 천천히 탯줄을 자른다거나 아기가 엄마 심장소리를 들으며 고요하고 어두운 상태에서 평화롭게 세상과 만나는 순간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신랑은 아기 탯줄을 자르고 아기는 순식간에 몇 가지 처리를 받은 후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느긋하게 회음부 절개 부위를 꿰매기 시작했다. 얼이 빠져서 분만대 위에 누워있는데 간호사가 와서 부모들이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맞추지 않는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다리를 활짝 벌린, 이제 막 분만을 끝낸 산모에게 예방접종을 왜 안 맞는지 묻는다. 의학적?인 자세고 민망할 게 뭐 있나 싶으면서도 민망했다. 신랑이 왜 예방접종을 안 맞는지 설명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수은이 함유된 B형간염 백신을 맞추기 싫고 수직간염이 아닌 한 아기가 간염에 걸릴 확률이 낮은데 선제적으로 접종하고 싶진 않다, 가 요지였다. 의사는 황달을 예방하는 비타민K랑 B형 간염은 꼭 맞아야 한다고 했다.

 

 

  아직 황달이 안 생겼는데 미리 예방할 필요가 있느냐, 이런 얘길 왜 지금 이 순간 하느냐라고 따져묻고 싶었다. 하지만 피곤하고 얼이 빠져 치메로살 성분이 함유된 백신이 아니라면 접종하겠다 정도로 타협하고 말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B형 간염 백신은 수은이 함유되지 않았지만 염산이 들어 있었다. 퇴원할 때 산부인과와 연계된 소아과에서 신생아 검진을 받았는데 소아과 의사는 예방접종과 관련해서 뜬금없이 '엄마 참치 안 먹어요'라고 물었다. 모든 위험을 다 피할 수 없는데 극성이네요,란 말을 하고 싶었나보다. 의사의 질문에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아서 안 먹는다고 답해줬다. 의사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모든 곳에 다 수은이 들어있다는 하나마나한 소릴 했다.

 

 회복실로 돌아와 눕자 방금까지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다시 아이를 낳아야할 것 같고 다시 진통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나른했지만 22시간 동안 굶어서인지 5시에 나온 미역국이 무척 맛있었다. 살면서 그렇게 맛나게 미역국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아기도 나도 무사히 큰 일을 치룬게 대견했다. 나에게 몇 번이고 애썼다는 말을 해줬다. 저녁을 먹고 자궁 수축제를 맞으며 소변을 기다렸다. 잔뇨감이 안 남아야하고 소변도 안 남기고 다 봐야 입원실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소변을 보려는데 내 몸이 아닌 듯 소변은 저 멀리 있고 요도에 힘을 주지만 힘이 안 들어가는 느낌이 났다. 두어 차례 소변을 보고 오줌이 남았는지 검사를 한 후 입원실로 이동했다. 이동하기 전 신생아실 앞에서 아기를 봤다. 깨끗하게 씻긴 아기가 고요하게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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