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집 행사 시즌이 끝났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좀 더 열심히, 정성들여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봤자 뭔가 달라지거나 이 업에 대해 커다란 깨우침 같은게 생기진 않았지만 작은 감동이 있었다. 예전엔 먼 발치에서 아이들을 서포트 했는데 이번엔 아이들 근처에서 일을 했다. 어른인 내가 보기엔 그깟 행사 싶었는데 무대에 서는 순간을 즐기고 재미있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나도 덩달아 신났다.  여기서 또 나는 7살이네 이러면서 농을 쳤지만 애들은 무대조명이며 음악 소리에 압도돼 내가 하는 말일랑 신경도 안 쓴다. 쳇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거운 축제겠지만 선생님들한테는 참 그만한 고역이 없겠다 싶다. 아이들 인솔하랴 율동 제대로 하는지 보랴, 줄은 잘 섰는지, 준비한건 제대로 했는지 챙기랴 입?손? 발이 몇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다 보니 큰소리가 나오고 아이들한테 하는 말도 몇 가지 패턴으로 정해져있기 마련이다. '치지마, 그만해, 하지 말랬지, 대체 왜 그러냐.' 선생님들이 피곤할 것 같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또 무슨 고생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원에선가 음악 나오기 전에 준비 자세를 하는데 아이들이 자꾸 갖고 있는 악기 소리를 내보려고 꼼지락대는 것이다. 이쯤해서 선생님들이 고함 한번 지르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엄마한테 비밀이야'

 

란다.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는데 시작하기 전에 소리내면 엄마가 다 알아버리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잠깐 조용, 우리 음악 나오면 신나게 연주하는거야.' 란 의미를 담은 '엄마한테 비밀이야.' 그러고 보니 그 원에선 아이들한테 소리를 지르는 법이 없었다. 큰소리 한번 안 나는데 아이들도 큰 말썽없이 선생님과 함께 무대를 준비한다.

 

*

 

 

 

 

 

 

 인생학교-정신편을 보고 의식적으로 자기 관찰을 해봤다. 특히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나는 어떤지를 관찰해봤다. 나는 관계를 유연하게 맺지 못하며 못한다는 자기인식이 있으며 그러한 인식을 뒷받침하려는건지 사람들과 꾸준히 삐걱거린다. 처음에는 무한 호감으로 다가갔다가 금세 싫증낸다. 사람을 파악하는건 좀 늦되고 관계 회복을 위해 그렇다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기호, 예의를 알아차리는데 늦은 편이며 눈치도 없다. 시답잖은 얘기를 할바엔 차라리 웹서핑을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그 사람 참, 어떻게 살아왔나 싶은 지점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긍정적인 자기 방어기제를 발사해보자면, 나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쉽게 말을 걸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엉뚱한 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방법도 잘 안다. 골똘히 생각하다 툭 던진 말에서 누군가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어어, 점점 산으로) 모자란 점이 많은만큼 남들보다 고치려는 노력도 더 많이 한다. 요새는 직장에서 밥을 열심히 먹은 덕분에 조직에서도 살아남는 인간형, 아니 버티는 인간형 정도도 대충 흉내낼 수 있기까지 하다.

 

 이 책을 몇몇에게 추천 해줬다. 동생은 이 책은 우리 아빠가 제일 먼저 읽어서 감정조절을 배워야한다고 했고, 친구는 이것저것 생각하기 싫었는데 아치 추천이니 읽어보겠다고 했다. 알라디너들도 많이 읽어서 '자기관찰' 릴레이라도 하면 좋겠다.

 

 책에 나온 유익한 스트레스 중 하나

드, 드디어 Mozart 들어간다. 지금은 이만한 속도도 안 나오고 열심히 쳐도 이렇게까지 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차르트라니, 모짜르트라니! 특히 4분 지나서 감미로워지는 부분은 참 좋다.

 

 

* 간식시간에 연예인 커플 이야기가 나왔다. 한혜진-기성용 커플부터 이름 알려진 연예인 커플들이 열거돼고 누가 아깝다느니, 누군 당했다느니 찧고 까부는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대체 왜 이렇게 남들 연애에 관심이 많을까.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일까, 지 얘기하면 되는데 왜 연예인 소식을 간식 먹으면서까지 들어야하냐고. 안 그래도 오전내내 연예기사를 훑어서 빠삭하게 안다고. (헐) 고인이 된 연예인 얘기까지 들먹이며 남자가 연하이면 언젠가 바람을 피운다고 한다. 최근 생긴 스캔들을 언급하며 젊은 남자들보고 여자가 너무 덤비면 조심해야 한다, 당할 수 있다고 한다.

 

 '남자는 성적 충동을 어쩔 수 없다거나 여자를 나누는 이분법 같은 왜곡된 성의식 때문에 성희롱이나 성폭력 앞에서 피해자들이 한번 더 좌절한다. 이런, 미래 2차 가해자 같은 것들아'

 

 쫄면에 들어간  양배추와 콩나물을 씹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쫄면은 맛있었다.

 

 

 * 얼큰하게 취했다. 아스파탐이 들어가지 않은 막걸리라고 했다. 장인이 직접 담은 술에 물을 타서 시중에 판매되는 술보다 좀 쓸거라고, 제조한지 며칠 지나서 탄산이 많이 올라왔을거라고 했다. 과연. 누군 평소에 먹던 맛이 아니라며 손사레를 치고 다른 분들은 차 때문에 맛만 보는 정도였다. 순하고 혹할만한 맛은 아니었지만 다들 안 먹는다면 남은 막걸리를 버려선 안 되니 내가 먹어야겠다 싶었다.

 

 누군가 차를 태워줬고 자전거가 세워진 정류장에 내렸다. 바람이 따뜻한 밤이다. 알딸딸한 얼굴로 바람이 훅, 봄이 왔다. 16차선 도로에서 우아하게 자전거 페달을 굴렸다. 모두들 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 밤엔 차 한대 허투로 지나가는 법 없이 모두들 나의 무사 귀가를 바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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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3-2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스파탐 사카린 안 들어가야 비로소 '막걸리'이지요.
탄산도 아스파탐도 사카린도... 게다가 단맛 내려고 수입쌀 쓰고 수입밀 넣으면...
그냥... 거시기이겠지요 @.@

저는 대안학교 아이들 공연도 차마 봐주지 못하겠어요.
왜 공연 같은 학예회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려면, 교사들이 해야 한다고 느껴요.
아이들 닦달하지 말고 교사들 스스로
스스로한테 거친 말과 닦달 하면서 공연을 해 보라지요......

모짜르트는 모짜르트이고
우리는 우리이니까
우리들 누구나 아름답게 글을 쓰고 노래도 부르리라 생각해요.
Arch 님 아름다운 금요일과 주말 누리셔요

뷰리풀말미잘 2013-03-30 07:45   좋아요 0 | URL
아, 지나가다 댓글 남깁니다.

말씀하신 부분에 적극 동감하는 바입니다. 수입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밀막걸리도 막걸리면 독도는 일본땅이지요. 말씀하신대로 고민과 연구 없이, 다만 단맛으로 소비자의 미각을 현혹하는 일부 양조장의 아스파탐 첨가는 파렴치한 행위이구요! 하지만 아스파탐이 첨가되면 막걸리가 막걸리가 아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신평양조장의 하얀연꽃 백련 막걸리를 추천합니다. 시중에 널리 풀린 것은 아니지만 종종 대형 마트나 막걸리 전문점에서 팔기도 합니다. 아스파탐 함유량은 0.0065mg 이지만 맛은 제가 보증하지요. 청와대 만찬주로 사용해 유명해 졌는데, 그 자식들이 쳐먹기엔 조금 아까운 술입니다.

Arch 2013-03-31 22:31   좋아요 0 | URL
막걸리에 대해선 저도 할말이 참 많지만 저는 밀로 막걸리를 만든다는 소린 처음 들어봤어요.
누룩은 밀을 빻아서 만드는건 알았지만. 전통주는 고두밥이랑 누룩, 물만 있으면 된다는데. 전통 방식대로 술을 담으면 도수가 좀 높아 물을 섞는데 이걸 막걸리라고 한대요. 물을 섞으면 막걸리 맛이 심심하고 쓴맛이 나기도 해서 감미료를 넣죠. 설탕이나 물엿, 꿀을 넣어도 될 것 같은데 얘네는 분해될 수 있는 당이라 효모가 분해해서 단맛이 금세 없어진대요. 그래서 아스파탐을 넣는거고. 요새는 올리고당을 넣는다는데 아무래도 물 섞기 전 탁주 맛만 못하죠.

우리가 먹는 소주도 주정이라고 해서 높은 도수의 원액에 수십가지 첨가제를 넣어서 지금 같은 맛을 내는거라고 하더라구요. 소주는 희석주죠.
어디서 아는체냐면, 에헴. 제가 요새 전통주를 배우거든요. 히~

신평 양조장의 하얀연꽃 백련 막걸리! 이름 한번 예쁘네요. 아스파탐 넣었다고 다 안 좋다고하긴 어렵죠. 부득이하게 쓸 수 밖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아스파탐이 추세이고 그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니까 좀 아쉽긴 하죠. 맛뿐 아니라 향도 다양하고 숙취까지 없는 전통주가 정말 많거든요. 사케, 포도주 저리가라예요.
아니 어디서 또 막 아는체냐면, 앞서 말했듯이 전통주를 배워서...

뷰리풀말미잘 2013-04-01 02:12   좋아요 0 | URL
역시 아치님, 모르는게 없으셔.

막걸리는 사실 따로 빚어 만드는 술이 아니었고 청주와 동동주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를 물에 섞어 흔들어 마구 걸러 먹는 술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막걸리. 서민을 위한 서민의 술인 것이지요. 설탕을 넣지 않는 이유는.. 글쎄요. 제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 설탕은 포도당이랑, 과당의 화합물로 분해가 되어도 단맛은 날 겁니다. 그러나 아스파탐은 그 단맛이 설탕의 200배나 되어서 일단 싸고, 편리하지요. 칼로리도 거의 없고. (유해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친구 사카린은 유해하지 않은게 확실하지만 아스파탐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요. 사카린을 안 쓰고 아스파탐을 쓰는 이유는, 사카린이 아직 국민 정서상 불온한 식품이기 때문입니다.) 꿀은.. ㅎㅎ 저는 왠지 넣어도 맛있을 것 같긴 한데.. 막걸리의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재료일 것 같아서..

아스파탐 안 넣고 만드는 막걸리로 대표적인게 느린마을 양조장의 느린마을 막걸리입니다. 먹을 만 한 막걸리지요. 단맛도 충분하구요. 네, 원래 막걸리는 뭘 첨가를 안 해도 단 맛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쌀이 분해 되면 당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입으로 밥을 꼭꼭 오래 씹으면 단 맛이 아닌 것이고, 설탕이 안 들어간 쌀엿도 맛이 달콤한 것이지요.

전통주 배우신다니 부럽네요.. ㅠ 일반 가정에선 술 담는다고 해 봐야 재료+소주니까. ㅎㅎ

어떤 술이 먹을만 합디까?

저야 뭐 술이 약해서 막걸리나 맥주 말고는 먹을만한게 별로 없지만.


Arch 2013-04-01 09:41   좋아요 0 | URL
미잘은 양조장이라도 한거에요? 나보다 더 잘 아네. 어젯밤에 잘난체 해댄게 부끄러워요.

박록담씨가 전통주 빚으면서 술양이 줄어들고, 시중에서 파는 술을 안 먹게 되더라고 하던데 저도 그래요. 전통주를 발효시켜서 위에 조금 고이는 청주를 먹은적이 있는데요. 금세 취하고 금방 깨는 것도 좋았지만 깨고나선 기분이 정말 좋더라구요. 향도 맛도 참 좋았구요. 소주는 가끔 먹었는데 이젠 특유의 쎄한 맛이 좀 꺼려져요. 맥주도 인공적인 탄산 맛이 별로고. 입만 고급돼서 큰일입니다.

도수가 높은데도 강하지 않은 과하주도 괜찮고 물 적당히 넣어서 빚은 단양주도 좋습니다. 언제 미잘 한번 대접해야는데 말이죠. ^^

승주나무 2013-03-3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 님 글은 맛이 있어요. 16차선 도로 하니까 사진 한 장 있을 줄 알고 왔다가 글에 흠뻑 취하고 돌아갑니다. ㅎㅎ

Arch 2013-03-31 22:34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오랜만이에요 ^^
승주나무님은 말을 참 맛있게 하는데. 모여서 수다 떨 때가 그리워요.

저도 길을 건널때마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신호가 짧아 맘이 급해서 어렵더라구요.

승주나무 2013-04-03 02:54   좋아요 0 | URL
네. 인정. 그런데 글맛은 별로 없죠.
그래도 이번에 새로 쓴 책은 글맛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ㅎㅎㅎ

Arch 2013-04-03 10:21   좋아요 0 | URL
그런 의미가 아닌데, 참!
책놀이책, 저는 2번 표지가 눈에 들어왔는데 1번이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정식으로 나오면 꼭 읽어볼게요.

승주나무 2013-04-05 02:38   좋아요 0 | URL
핫.. 그러고 보니 내 댓글이 요새 좀 씨닉해졌나봐요. 왜 그랬지? ㅎㅎ

건조기후 2013-03-30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딸딸한 얼굴로 바람이 훅, 봄이 왔다.
문장 예술이에요 ㅜ

Arch 2013-03-31 22:34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님, 오랜만이에요. ^^
감사합니다. 페이퍼가 비문과 오문 범벅일텐데 좋은 점을 찾아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맥거핀 2013-03-3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청자여러분 안녕하세요. 먹거리 X파일 이엉돈 피디입니다. 여기있는 막걸리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하지만 이런 막걸리 가운데 일부는 아스타팜이 들어가 막걸리가 아니면서도 막걸리인척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는 농담이구요. 아스타팜이 들어간 건지, 안 들어간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예전에 막걸리를 너무 먹고 취해가지고 거리를 굴러다닌 적이 있어요. (비유적 표현이 아니고 진짜 굴러다님.) 다음날 숙취로 다시 집 마루바닥에서 또 굴러다녔음...그래서 궁금한데 아스타팜이 숙취와도 관련이 있는 걸까요? (라는 정말 뜬금없는 질문.)

이런 좋은 글에 막걸리와 숙취라니 죄송합니다(위의 두 분 댓글을 읽다보니).; 아! 이제 드디어 모차르트군요. 위의 저 연주가 그냥 Arch님 연주라고 생각하고 들었습니다.^^

Arch 2013-03-31 22:40   좋아요 0 | URL
시중에 나온 막걸리에 숙취가 있는건 누룩향이 강하거나 첨가제가 들어가서라고 해요. 아스파탐이 들어가도 비슷한 작용을 할 것 같아요. 전통주를 먹으면 금방 취했다 금세 깨요. 당연히 숙취도 없고 취한 기분도 참 좋아요. 물론 모든 술이 다 과하게 먹으면 안 좋은건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저도 일전에 담금주 먹다가 땅바닥이 이마랑 박치기 한 경험이 있어요. 낮술이라 엄마 아빠도 몰라보고 아주 진상이었죠. 횡단보도 건너는데 눈 앞에 선이 똭!

저렇게 치려면 한달은 더 쳐야할 것 같아요. 그래도 참 좋아요. 새책 시작하면 막 공부하고 싶고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