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8시 반에 일어난다. 고양이 세수를 가까스로 하고 아무 옷이나 주워 입는다. 방문을 박차고 도시락을 싼 다음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간다. 일부러 시계를 안 보며 이 추운 날 관절이 덜그럭거릴 정도로 과격한 파워워킹을 한다. freetempo의 음악을 들으며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되기 몇 초 전. 간신히 지각을 면한다.
일년 전만 해도 7시 전에 일어나 (세상에나) 아침밥을 먹으며 활기차게 아침을 열었으며 수영을 했고 가끔 a와 어줍잖은 모닝 수다를 떨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가끔 음식 비슷한걸 먹긴 했지만 포장지 쓰레기가 장난 아니다, 음식 질이 떨어진다며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유지했다. 지금은 앞서의 다급함 뿐 아니라 ‘아침에 배가 고프지 않았음 좋겠어’ 정도로 만족하는터라 쓰레기가 나오든 말든 몸이 축나든 말든 거의 신경을 안 쓴다. 엄밀히 말하면 그마저도 굶을 때가 더 많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연말이라 일의 특성상 여유가 없는데다 수영을 안 했더니 아침 시간에 잠자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게을러지는건 당연지사. 게다가 한번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정도로 집이 춥다. 당연히 아침 여유 시간의 마지노선까지 개기는거다. 같이 살 공간을 찾다 해가 잘 드는 이 집으로 이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해가 잘 드는 집이 무조건 좋았으니까. 몇몇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주택은 추울텐데란 말을 했지만 형편에 맞게 집을 구한다고, 기름 보일러라도 아껴 쓰면 된다고 했다.
대체로 내가 내리는 확신은 근거가 부족하다. 지난번에 집을 구할 때도 그랬다. 비교적 깔끔하고 공간 활용도 편리한 집이 있었는데도 창문 발코니 장식이 멋스럽고 해가 잘 든단 이유로 예전 집을 택했었다. 꽉 막힌 부엌에서 서식하는 곰팡이를 외면했고 여름에는 해 잘 드는 창문으로 쏟아진 열기가 밤까지 이어져 늦은 밤까지 바깥을 배회했었다. 가끔씩 실수로 낮에 집에 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처럼 태양에 타죽는 장면이 생각나 흠칫 놀라기도 했다.
어쨌든 방이 아닌 집이 생겼으니 좋은건 좋은거다. 한밤중에 붕~ 혹은 웅하는 소리로 ‘나 지금 여기 있어’라고 말을 거는 냉장고는 부엌에 있다. 거실에는 지금은 추워서 도저히 앉을 수 없지만 가끔 늘어져 잉여 스타일을 완성시킬 수 있는 소파가 있다. 주택 살면 다들 텃밭 만드는 줄 알았고 나 역시 그럴거라고 생각해서 흙바닥 하나 없는 집에 공간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계단을 시원찮게 만들어놔 뭘 들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옥상도 생겼다. 방바닥이 빙판처럼 차가워 털실내화를 부르지만 어쨌든 집에서 사는거다.
추운 것 빼고는 이사를 해서 참 좋다. 옥상에서 a의 머리를 잘라줬고 (a는 다음날 직장에서 레고 머리, 호섭이 머리라며 놀림을 당했지만 아치씨가 잘라준거라며 오히려 자랑했다고 한다. 지못미 a... 귀밑머리 자르는 기술을 배워서 다음엔,.. 불끈!) 옆집에 사는 백구와 친구가 됐다. 프랜차이즈나 기계적인 관계로 맺어진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 상대하는 동네 단골 까페를 찾아냈고 밥 먹고 나서 무한도전 봐도 되냐고 했더니 그걸 말이라고 하냐란 표정으로 ‘아무렴’이라고 해주는 동네 밥집도 알아냈다. 당분간 머물다 떠나는 원룸촌의 생활 스타일이 아니라 한 동네의 거주민이 된 거다. b는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는 장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겨울만 지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런 집의 특징은 여름엔 지치도록 덥다는거란다. 앗흥.
요즘 소원은 따뜻한 집에 사는거다. 기대치가 낮으니 삶이 단순해지고 사람도 좀 단순해진다.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