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원의 인문고전강의를 읽는데 한자 공부하려면 이이화의 한문 공부를 보면 좋다는거다. 고전강의를 다 읽지도 못하고 의욕이 넘쳐 한문책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래, 이두랑 향찰이 있었어. 이렇게 글씨가 변하고 이렇게 읽는구나. 열심히 들여다보고 연습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뭘 알아야 말이지. 결국 1장도 못 넘기고 지지부진. 그럼 혹시 한자의 기초적인걸 알려주는 책은 없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만화로 나온 이이화 선생님의 책이 있다. 오호, 내가 아는 글자다. 500자만 익혀도 다른 한자를 읽을 수 있단다. 열심히 해봐야지.
그랬구나.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을 좋아해서 잠깐 한문 공부한거 말고는 관심도 안 보이더니 갑자기 500자 외운다고 설레발 치는구나. 스페인어 책 사놓고 2년이 지났는데 영어 익힌 다음에 공부한다고 첫 장도 들춰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한자 공부하는구나. 그랬구나.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체르노빌의 목소리로 변경함)
빵가게 재습격님이 도가니를 소설이 아니라 르포나 논픽션으로 썼으면 어땠을까란 얘기를 하면서 ‘언더그라운드’와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란 책을 언급하셨다. 마치 오늘 그 책을 내 손에 넣지 않으면, 당장 읽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서둘러 검색을 하고 클릭 몇 번으로 구입해서 읽기 시작한 두 권의 책. 옴진리교의 사린 사건 피해자를 만난 하루키의 인터뷰집과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극화한 르포 소설이다. 언더그라운드는 반절 정도 읽다 정체됐고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소설이 안 읽히는 가을이라며 한쪽씩 근근히 읽고 있다.
그랬구나. 누가 읽어보라고, 누구 추천이라고, 이 책은 교양인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선정 도서라고 하면 사정없이 읽으려드는구나. 지적 허영심도 아니고 내가 왜 그러는지 나도 알 수가 없구나. 그랬구나. 책으로 공부하고 싶다면서 밑줄만 그었지, 체계를 잡아 정리하고 요약하고 내 나름의 생각을 글로 쓰는건 안 하는구나. 맨날 예능만 보고 바보처럼 웃는구나. 그랬구나.


성 감수성 훈련이란게 있다. 예컨대 여자인 내가 남자처럼 섹스를 해보는거다. 발기된 상태로 결합이 풀리지 않게 유지하며 키스와 애무를 곁들이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기. 섹스에 대한 여러 담론이 있겠지만 기존의 어떤 틀 같은게 있다면 섹스를 하는 모든 여남, 인간, 생명체?는 힘들겠구나. 그런데 난 왜 굳이 여러 가지 많은 것들 가운데서 이런 얘기를 하는걸까.
푸코에 의하면 나는 <왜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다’라고 말하기 위해 ‘그 정도의 정열’을 대가 없이 쏟는 것일까.> <성을 말하는 담론들을 근대를 관통하는 ‘지에 대한 의지’, 즉 온갖 인간적 군상을 ‘일람’할 수 있는 목록으로 정리하려는 터무니없는 야심의 흐름 속에 놓았다.> <제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의 ‘의심’까지도 ‘제도적인 지’로 의심받는 그 제도에 속한다.>는 건데 구조주의는 여전히 어렵지만 내가 왜 그런지에 대한 단초 같은걸 얻었다.
그랬구나. 일상적 성적 실천은 마초적이면서 입으로만 진보적인 성담론 얘기를 했구나. 그랬구나. 단초만 얻었지 정확히 뭔 얘긴지는 아직 모르는구나.
뒤늦게 안 사실, 빵가게재습격님의 추천 책은 <체르노빌의 목소리>.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으며 이건 왜 인터뷰집이 아니라 소설일까, 르포 소설이래도 소설 같은데 이러면서 봤는데... 그랬구나 무슨 책을 추천했는지도 모르고 막 의욕부렸구나. 그랬구나. 쥐구멍은 몸뚱이가 커서 못들어가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