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의 방비엔에는 '리버사이드'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이름 그대로 강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야. 거기서 일하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매일 그가 하는 일은 안내데스트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일이야. 그게 전부야! 만약 손님한테 문제가 있으면 가서 해결해주고 돌아와 다시 강을 봐. 하루종일 말이야. 이런 완벽한 인생이 또 있을가? 물론 내 말은 이렇게 사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어울린다는 건 아니야. <자메이카의 트레이시 버튼 27세>
사실 나는 가끔 세상을 바꾸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정치적 견해로 미셸 같은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한 경우는 너무 많았던 반면 나를 바꾸려고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는 남의 잘못을 꾸짖으면 내가 고결해진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정치적인 의사를 표시하거나 생활방식을 양보하는 일은 거의 없이 슬그머니 지나가버리면서도, 그 정도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는 데 남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런 진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소제목; 나처럼 어리석은 인간이 이와 같은 허세에 말려든 사연 중>
- 가로수 관리를 하는 공무원이 있었어.
- 재미있는 이야기야?
- 들어봐.
- 차가 가로수를 들이박으면 이 공무원은 가로수를 다시 심거나 보수해야해. 차주인이 밝혀지면 모르겠지만 가로수를 들이박는 사람 중엔 뺑소니가 많아. 그럼 이 사람은 사고 경위 및 경찰 신고를 한 공문서를 작성해.
- 잡힐리가 없잖아.
- 그렇지 그건 그냥 형식적인 절차야. 그리고 예산을 받아서 가로수를 고치는거야. 차가 가로수에 받을 때마다 이 사람은 이 모든 형식적이고 번거로운 일들을 계속 해야만해.
- 그 얘기를 왜 하는거야?
- 글쎄.
<몇달 전 전주 샤브샤브 집에서 친구랑 한 얘기인줄 알았는데 '위풍당당 개청춘'에 나온 내용>
자본주의는 사람들을 불행, 두려움, 근심, 짜증 속으로 몰아넣어 반쯤 넋을 놓고 살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소비하고, 소비하고, 또 소비하도록 할 방법이 없다. 물건을 사도 행복해지지 않는 마당에 고객서비스가 무슨 수로 행복을 주겠는가! 자본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직장을 구하고, 일을 해라. 일하면 자유를 얻는다. 자유는 쇼핑이다. 하나님도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일하지 않으면 돈이 없고, 돈이 없으면 죽는다. 죽으면 끝이다.”
<영화 속 신랄함과 유머만 못했지만 가끔 낄낄거리게 만들었던 마이클 무어의 책>
- 뭐가 힘든지 말해봐.
- 웃을거잖아.
- 장담은 못하지.
- 사람들이랑 어울리는게 힘들어. 알아서 눈치보고,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도 싫고, 어쩌고 저쩌고.
- 아치야, 직장은 직장이잖아. 적어도 내 할일만 하면 자존감 무너지는 말은 안 듣잖아. 나는 결혼이 현실이라는걸 근 몇년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 그건 불가항력 같은거야.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
<다시, 카오산 로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여행서>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 영화에 등장하는 아빠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정답을 찾으려 노력해. 어느 날 정답을 아는 사람이 찾아와 '정답은 42'라고 말하는데 모두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질문이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답을 알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지만 찾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 <이스라엘 여행자 카렌>
- 그래서?
- 그래서는 무슨. 네가 좋아하는 것, 만족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만큼 지금 네 현실에 충실하라는거지. 잊지마, 행복은 구해서 얻는게 아니라 어떤 마음의 상태라는걸. 그리고 자꾸 징징대면 얼굴에 주름 생긴다! <카렌의 대답을 상상해본 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