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 싶었던 만화책을 드디어 봤다. <심야식당>과 <그녀의 완벽한 하루>. <심야식당>을 읽기 전엔 우동 한 그릇의 분위기와 비슷한걸 생각했다. 분위기는 ‘우동 한 그릇’이지만 도판은 화려하고 그림체는 야무질 것 같았다. 신주쿠의 심야식당은 내 기대와 달랐지만, 설렁설렁한 그림체와 마스터의 무심한 표정이며 말투는 썩 맘에 들었다. 단연 좋았던 점은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다.
음식 이야기를 할 때 <미식견문록>에서 나온 ‘할바를 찾아서’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맛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식객>에서처럼 음식의 역사와 만드는 방법을 세세하게 그려내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주문해놓은 음식 대신 옆 테이블의 음식이 더 맛있어보여 주문을 바꿀까 말까 고민하거나 안 먹겠다고 하고선 솔솔 풍기는 라면 냄새에 ‘한 입만’을 외쳐댈 때면 할바며 근사한 ‘한 상’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나로 말하자면 연예인들이 떼로 나와 입을 ‘아’ 벌리며 먹는 요리 프로그램보다 주인공이 불어터진 라면을 먹을 때 더 식욕이 샘솟는다. <심야식당>은 그 지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영리하게 사로잡는다.
빙 둘러앉는 다찌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스터의 요리를 기다린다. 최고의 솜씨를 가진 마스터라면 아마도 자세한 조리법을 소개하느라 짤막한 만화가 한정 없이 길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심야식당>에선 그럴 틈이 없다. 툭툭 누군가의 얘기가 나오고, 사람들의 반응이 쏟아지고, 그새를 못참고 맛있게 먹는 누군가가 먹는 것을 똑같이 주문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마을 같다. 남일 참견하며 귀찮게 하는 마을 사람 대신 그저 심야에 같이 밥 먹을 동안 편안해지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 말이다.
마를린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정리가 안 된다. 성노동자를 다루는 시선이라니, 다룬다는 뭐고, 시선은 또 뭐란 말인가
* <오노 요코>를 느릿느릿 읽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클라우스 휘브너는 오노 요코를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주력하다보니 그녀를 미화하는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현대 예술이며 액션, 플럭서스, 존 케이지 등의 전위 예술가들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저자가 밝힌대로 선불교에 바탕을 둔 그녀의 예술 세계 운운은 잘 와 닿지 않는다. 좀 더 읽어봐야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아니면 이 책과 ‘현대 예술 길라잡이’ 뭐 이런 류의 책도 같이 읽어야할까. 그런데 관객이 감상이 아닌 참여를 통해 예술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건 결국 해석하기 나름 아닐까. 그렇다면 애초의 상상력은 예술가 것이지만 결과물은 관객의 것이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우선은 딸 교코와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싶은 오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 <진보집권플랜> <100인의 책 마을> <마이클 무어의 대통령 길들이기> <삼성을 생각한다> <그 골목이 말을 걸다> <선술집 풍경-이건 알라딘에서 안 판다> <슬로시티를 가다> <몰락의 에티카> <원순씨를 빌려 드립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고 있다. 아니, 빌려놓고 감상하고 있다. 책 욕심은 새 책을 보고, 만지고, 들춰보는 것에 있는건지 그 무거운걸 낑낑대며 들고 다녀도 무겁지가 않다. 어쩌면 한번쯤 얘기 들어 알고 있던 책을 짧게나마 일면식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출기간이 정해져 있어 서재가 무너진다거나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책이 쌓이지 않는건 다행이랄까.
* 시작은 <진심의 탐닉> 김태호PD 편에서였다. 어느 부분에서 그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이클 잭슨 이야기가 나왔다. ‘아침 햇살을 음악에 비유해 가사를 쓴 사람’이라고 했던가. 한번도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았는데 그 구절을 보고나서야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투어 리허설을 담은 ‘This is it'을 보고나서야 그를 알았다고 말하는건 우습지만 한뼘쯤 그를 좋아하게 됐다. 마이클은 자신이 원하는걸 차분하게 얘기하고, 자신이 큐를 주지 않아 댄서들과 호흡이 맞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것이 가장 좋은건지 분명하게 알고 자신의 공연을 최고로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를 보니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콘서트의 황제라며 거들먹거리고 얄팍하게 써제끼는 연예기사, 표피적인 것에 열광하는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을 보다가 마이클 잭슨을 보니 왠지 공연 주체의 성품뿐 아니라 어떤 문화를 공유하는 팬들조차 품격이 다른 것 같단 느낌도 들었다.
* 오늘은 비가 온다. A는 벌써부터 소주 생각에 몸이 달아올라 있다. A는 알탕 맛있기로 소문난 집에 냄비를 들고 간단다. 주인 아주머니께 눈웃음을 치며 인사를 건네고 육수를 더 달라고 하겠지. 얼큰한 알탕에 소주를 먹으면 참 달 것 같다. 방금 A에게서 문자가 왔다. 알탕 포장은 안 된대 ㅡ,.ㅜ;;, 알탕 대신 배드민턴 열심히 치고 고등어구이에 소주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