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스를 잘 한다. 아님 말고

* 세상에서 제일 쓰기 싫은 글 중에서 다시 최고로 쓰기 싫은 글은 바로 자기 소개서이다. 마음 먹고 삶의 이력서를 쓴다면 문제가 없겠는데 팔릴만한 나로 포장하는 게 참 어렵다. 이 회사가 왜 나를 고용해야 하는지, 나는 이 회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란 분명한 목표의식이 없는 것도 문제다. 낮은 사회적 지위와 저임금 비숙련 노동, 불안한 고용상태를 벗어나보겠다고 야심차게 취업 준비를 했는데 자기소개서란 복병이 있을 줄이야. 어쩌면 앞서의 불안한 상태에 길들여져서 극복해보려는 의지가 닳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한겨레21에 연재하던 노동 OTL을 엮은 4천원 인생을 읽다가 '대안 컴플렉스'- 쉬운 결론을 내려 위안 받으려는-에 눈길이 머물렀다. 어떤 문제를 접할 때면 손쉽게 나는 이런 행동을 한다거나, 이런 방법이 있다는 식의 대안 제시는 문제의 불편한 지점을 회피하는 게 아니었을까. 예전에 강준만 선생님의 책에서 본 행동하는 사람이 비양식적이다란 말처럼.

* 그러니까 난 지금 무슨 얘긴가를 하고 싶어 졸다 깨다 하면서 페이퍼질을 하고 있는데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는지조차 감을 못잡겠다.

* 아침에 그와 구시가지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편의점에 앉아 조직이 단단한 얼음을 아작아작 씹으며 커피를 마신 후 그를 먼저 보냈다. 집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다 볕이 좋길래 그냥 걸었다. 골목으로 문을 활짝 열어놓은 집을 보면서 그 속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닫힌 창문 너머의 일상은 어떨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가욋 애인과 골목길에 숨어든 시절을 얘기했고, 다른 누군가는 골목의 나이듦이 참 좋단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난 내가 살 수 없지만 항상 동경해마지 않는 골목을 걷는 것으로 아침을 열었다.

* 작은 오해가 다툼을 만들었다. 사장님과 실장님이 날을 세우며 눈에서 칼침이라도 튀어나올 기세로 싸웠다. 한차례의 싸움이 끝나고 난 옆에서 사장의 '내 편 만들기의 일환인 상황전개 바꿔치기 시나리오'를 들었다. 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울라치면 실장님의 하소연을 들으며 무시해라, 모른척해라, 상관하지 말란 밑도 끝도 없는 대꾸만 해드렸다. 사장은 먼저 퇴근하고 속이 안 풀린 실장님은 누군가를 불러 재탕 하소연 중이다. 옆에서 보면 아주 분명해 보인다. 말을 좀 보태고 중재를 해볼까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을 두고 자꾸 다툼이 일어나는걸 보면 그들은 진위 여부를 제대로 밝혀내는 것보다 그냥, 무료한 어느 밤에 좀 다투고 싶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미치고 만다. 미친척 못알아듣는 체 할 수 밖에.

* 무슨 얘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한 얘기를 들먹이며 우스꽝스럽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말하지 말걸 그랬나.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 것 뿐인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나았을까. 나는 그들처럼 생각하지 않는데 무리로 의견을 교환하는 그들은 내 생각과 다른 모양이었다. 뭐 별거 있냐는 투로 틱틱대며 다른 얘기로 화제를 전환했지만, 과연 뭐가 맞는지 종잡을 수 없게 됐다.

나만 아니면 되지,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에서 그치고 말았던적이 있었다. 그 속엔 은근한 무시와 배척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는 말에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혹시 내가 어떤 부분을 놓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내 할 말과 상대의 반응 사이에서 '적절함'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고 소진한다고 큰 소리 친 것처럼 부질없는 다짐이겠지만.

* 한 달에 한 번씩 생리 즈음엔 배가 부풀어 오른다. 달처럼 배가 부풀면 나는 야무지게 밥과 간식을 챙겨먹는다. 가끔 영문을 모르는 남자 사람에게 배가 부풀어 오르노라고 설명을 해주면 두 눈이 까마득한 공간을 헤매 듯 아련해진다. 간혹 그 즈음에 더 많이 먹어서 배가 커지는 게 아니냐고 소신 있게 말하는 남자 사람에겐 콧방귀를 뀌며 '치'하고 웃어준다.

자식, 예리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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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1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요, Arch!

(커피 사가지고 와서 추가) 제일 처음에 해당하는 건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좋아하지만 참으로 구리게 키스하는 남자를 알고 있었지요. 그는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했어요.

제일 마지막에 대해서는 나 역시 그래요. 그때는 힘을 줘도 배가 들어간다거나 하지도 않죠. 대학생때는 커다란 남방으로 배를 가리고 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나 나온 배는 사실 뭘로 가려도 가려지진 않죠. 아흑 끔찍해.

Arch 2010-09-14 09:01   좋아요 0 | URL
물론, 그건 필요충분 이런건 아니지만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꽤 잘 하더라구요. 물론 이건 다 상대적인거지만. 그러니까 미흡한 제 키스 이력에 그전 사람과의 좋지 않았던 경험 뭐 이런걸로 더 좋아보이는거 말예요.

힘을 줘서 배가 들어갔을 때는 아주아주 옛날 이야기죠. 호랑이가 담배 가게에서 신분증 검사당하던 시절? ㅋㅋ 가만 보면 예쁜 배인데(뭐래)

다락방 2010-09-14 10:07   좋아요 0 | URL
내 배도 예뻐요.
너무 크고 너무 많아서 그렇지 ㅎㅎ

pjy 2010-09-16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릿했던 키스가 생각나요^^ 첨 만난 사람이었고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두고두고 아쉽네요~
그 뒤로 이렇게 키스운이 지지리도 없을줄 미리 알았다면 그남자 붙잡았을건데요!

양철나무꾼 2010-09-1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내리는 추석이 될것 같아요.
그래도 보름달 보면서 빌 소원 한가지 정도 준비해 놓으셨겠죠?

메리 베리 해피 추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