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남자, A의 사무실에 놀러가서 책도 보고, 일도 도와주고 왔다. 요즘의 우울은 누군가와 신나게 말하지 못해서 생긴거였을까. 두서 없이 A와 사무실의 다른 분과 수다를 떨고 나자,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동안 내장 기관의 반란과 가족들과의 암투(응?)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어제 나의 힐링 장소 Zzimjilbang(^^)에서 몇 시간 묵으며 유유자적 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 치유의 효과란. 다음엔 좋아하는 사람과 찜질방에 가야겠다. 1+1이 2일리는 없겠지만.
그분들과 요즘 내가 관심을 갖는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쓰레기의 행방, 전통주 담그기, 환경 운동, 여성주의 공동체, 생태 공동체, 적게 일하고 많이 노는 방법, 재미있게 놀기, 천연염색, 농사짓기, 나이 관계 없이 같이 잘 놀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잘 생겼음 금상첨화) 하는 바람, 공동육아(순전히 나 좀 편하자고), 집 근처 공원엔 왜 호텔을 짓는지 등등. A는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해줬고, 전주 술박물관에 가면 시연과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팁도 전해줬다. 다른 분도 공동 육아는 누가 관심있어 하고 자기가 잘 아는 비혼 여성들(복수다)은 같이 모여서 재미있게 논다는 말도 전해줬다. 그 중에서 정말 까무러칠만큼 멋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대구에는 미국기지 근처 빈집에서 연극 공연을 하는 세 여자가 있다. 이분들은 다른 연극 배우들처럼 문예진흥원의 연수 과정을 수료한 후에 학교에서 연극과 관련한 수업을 하지 않는다. 대신 동네분들과 어울리며 자급자족하면서 지낸다. 그들은 방에서 공연을 하는데 관객과 배우들 사이엔 금 하나가 다다. 몇센티 안 되는 거리를 두고 한편은 앉아서 공연을 보고, 다른편은 연극을 한다. 방에서!
그분들과 접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A에게 부탁을 해뒀다. 우린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예전엔 일 안 하고 뭐하냐는 질문에 참 맥없는 대답만 해댔다. 하고 싶은게 없다는 말은 너무 배부른거 같아서 돈을 별로 안 쓴다고 말하기도 했고, 아무도 날 받아주지 않는다는 기만적인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정말 내건지 잘 모를 때였다. 다른 곳엔가 내 몸에 맞는 옷처럼 꼭 들어맞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혹은 어떤 사람으로 규정지어지는게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뭘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 머릿 속에 있는 몇 개의 상자에 내 데이터가 차곡차곡 분류될 것이다. 어느 날엔가는 그 사람 자신도 모르게 상자의 이름을 알려줄텐데, 내 것이 아닐지 모르는 삶에서 추출한 고작 몇 가지 것이 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는 친구는 자기가 제일 하고 싶은건 시골에서 농사짓는건데 고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에 꿈을 이룰거란 얘기를 공공연히 하곤 했다. 왜 굳이 몇년동안 공부하면서 나중 꿈을 미루냐니까 친구가 말했다. '그냥 쭉 농사만 지었다는 것보다 고위 공직자의 귀향, 귀농이라고 하면 폼나잖아.' 라고.
내게 다른 삶의 가능성이 있을거란 상상이 지금을 견딜 수 있게 했다거나 사람들의 체로 걸러지는게 별로란 말은 거짓말이었다. 난 좀 더 폼나고 싶었다. 뭐뭐 하다가 온 사람, 알고보니 귀한 집 자식 뭐 이런거. 귀한 집 자식은 아니니까 뭔가를 해보이고 싶었던거다. 능력도 의욕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로선 그럼에도 부득불 그래도 내가 이런 사람인데란 이력 정도는 끄집어내고 싶어 여태껏 아등바등댔다. 아, 이건 지독하고 독하디 독한 자기 합리화일까.
아무튼 그래서 모처럼 신났다. 이제서야 내가 예전에 이런 사람이었는데라며 으쓰댈 필요가 없다는걸 알았으니까. (사실 매번 알고는 있다. 직접적이고 화락 알아야하는데.) 게다가 난잡한 내 관심사를 듣고 이제 나이 좀 먹을만큼 먹어서 어디서는 왕 언니 소리 듣는 나보고 아직 젊어서 그런거라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선 할말 다 했다. 아무렴, 너무 새파랗게 젊어서 눈이 시릴 지경인데! 생체학적인 나이와 마음의 나이는 별개라는 비독창적인 견해로 두서없는 글을 맺는다.
새해에도 여전히 횡설수설하는 방패 아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