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위기 수준인데도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지 않을까> (일부 내용 편집함)
- 혹시 이런 건 아닐까? 선구자로서 먼저 각성한 나라들이 선진국이라서 그래. 재앙이 오더라도 자기네들은 다치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야. 왜? 이 세상에는 후진국들이 완충제로서 존재하니까. 에너지가 부족하게 되면 가격이 올라가지. 선진국 사람들은 그것을 살 돈이 있어. 그리고 앞으로 물이 부족해져도 세계 인구의 20퍼센트가 독점하기엔 충분한 양이야. 후진국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이야. 나중에 외상값을 치러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지금 나의 안락함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거지. 이치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이론에 머무르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서양의 역사를 보면 그렇잖아? 역사적으로 봐. 제3세계 수탈해서 발판을 다진 거지. 그리고 제3세계가 왜 선진국처럼 될 수 없어? 제4세계가 없으니까, 등쳐먹을 나라가 없으니까 그런 거야. 서양인들은 남 등쳐먹는 문화에 젖어 있어. 늘 그래왔으니까 인식하지도 못할 뿐이야. 그것을 인식하고 죄의식을 느낀다면 그것도 지식으로서 아는 것 뿐이지. 그래서 자기네가 혜택을 본 문명의 대가를 지구 저편에서 치러야 하는 일에 무감각한 거라구.
- 그게 파렴치하다고 생각해?
- 그게 왜 파렴치야? 인간의 본성일 뿐이지. 나만 해도 그래. 선진국의 위선에 거품을 물면서도 내가 선진국의 대열에 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 여차하면 더 끼어 입을 털옷을 잔뜩 비축해두고 있는 나는 머리로만 골치가 아플 뿐이지, 내 몸은 떨 일이 없다는 걸 사실 알고 있어. 지금 남태평양이나 아프리가에 사는 사람들은 섬이 물에 잠겨드는 이유도 사막이 타들어가는 이유도 모를 거야. 신의 뜻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이유를 알아도 신의 뜻처럼 절대적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겠지. 그들에겐 이 상황을 바꿀 힘이 없으니까. 우리의 뜻이 그 사람들에겐 신의 뜻이라는 사실이 징그럽지 않아?
자연은 너그럽지만 예민하다. 그래서 예민하지만 너그러운 인간들이 결국 자연에 맞추어야만 한다. 앞으로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아마 모두들 자발적으로 환경운동을 할 것이다. 천문학적인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전거 타고 다닐 것이고, 자발적으로 건물에 단열재 붙이고, 집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살 것이다. 경제법칙에 의해 사람들이 저절로 변할 텐데 우리는 뭣하러 미리부터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 진정한 목적이 지구의 환경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벌이는 환경운동이 지구 환경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지구가 결딴나기 전에 인간성이 먼저 결딴나고, 그로 인해 인류는 파탄을 겪고, 또 그로 인해 지구 환경은 저절로 구해질 거라고 믿고 있다. 환경이 척박해지면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필히 고개를 들 것이다. 그 조짐은 세계 도처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먹이와 땔감이 부족해지면 인종, 종교, 국적을 핑계 삼아 각종 차별과 횡포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될 것이다. 대륙과 대륙 사이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이웃과 이웃 사이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아주 멸종되지는 않을 것이고, 단지 인구가 대폭 줄어서 지구 환경이 저절로 정화되고 재생될지도 모른다. 이 말은 좋은 말이 아니라 아주 무서운 말이다. 인구가 대폭 준다는 말은 끔찍한 불공평을 의미한다.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뻔한 이치 아니겠는가? 가해자만 또 살아 남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이유다. 지구 환경을 구하려는 근본적인 의의는 공존에 있기 때문이다. 그 취지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데도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 잇는 이웃과 더불어 살자는 데도 있다. 나는 이 취지를 가슴에 새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류의 대재앙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대재앙 속에서도 인간성을 아주 잃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혹시 또 아는가? 우리가 좀 더 노력하고 죽는다면 다음 세대는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다 같이 살겠다는 각오로 악착같이 대재앙을 막아내는 기적을 이루어낼지.
내게 말을 거는 공간, 임혜지, 한겨레출판
--- '고등어를 금하노라'가 도서관엔 없길래 저자의 다른 책을 봤다. 건축 이야기와 뮌헨, 옛 건물에 담긴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임혜지씨가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도 맘에 든다. 무엇보다 난 앞으로 '네가 종이컵 안 쓴다고 지구온난화가 지체되는건 아니야'란 비아냥에 대해 무기력해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