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 엄마 다리에 누워서 다 큰 녀석이 울고 있다. 왜 울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옆에서 다 컸는데 운다고 곯리자, 홀겨보던건 또렷이 기억난다.
 회사 앞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민. 민은 가방도 잘 메고, 형들한테 오빠라고 부르고, 인형놀이할 때 인형 욕심도 많이 낸다. 이걸 여성적인 면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애교 부리는건 누나 저리가라다.

 인형놀이 하니까, 내 동생의 만행이 생각났다. 한가로운 저녁에 옥찌들이랑 동생이 인형 놀이를 했다.
옥찌- 야, 미미야 같이 노니까 정말 즐겁다. 우리 파티하러 갈까?
민- 나나야, 나 예뻐?
동생- 응, 예뻐. 그런데 너네 목마르지 않니? 우리 파티 가기 전에 생맥주 마시러 갈래?
 순간 옥찌들은 얼음처럼 굳었다. 동생은 혼자 웃겨 죽겠다며 깔깔대다 생맥주 대신 아이스크림 먹자고 말해 옥찌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못된 엄마 같으니. 그런데 난 동생이 옥찌들을 막 대하는 듯 하지만, 그 속에서 그 아이 나름의 생각과 유머들이 녹아들어서 참 좋다.



 한낮의 약국. 약국 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옥찌들은 구경만 한다면서 저만치서 비타민이며 뽀로로 모양의 칫솔을 보고 있다. 약사는 우리가 먹는 약이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해준다.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옥찌를 불러서 사진을 찍었다. 뭔가 쑥쓰러운거야, 옥찌?

 
 Ch는 친절하기도 하지. 그가 보내준 호박 고구마로 올 겨울은 내내 따뜻해질 것 같다. 옥찌들에게 고구마를 쪄줬다. 민은 고구마를 보자마자 손으로 짚고선, 왜 뜨거운걸 말 안 했냐면서 나를 구박했다. 흑흑. 민은 감칠맛나는 고구마 한입에 눈이 하트가 돼서 행복해했다. 그렇다. 우린 맛난거면 하트 숑숑도 금세 만들어내는 먹순이들인 것이다.

 옥찌들과 버스를 탔다. 옥찌는 왜 사람들이 자꾸 타냐고, 기사 아저씨한테 어디 가는지 말 안 해도 되냐고(이거 전 페이퍼에서 썼던 것 같기도) 묻는다. 버스타기가 신기하지만 아직은 낯설어 '얼음'인 옥찌들.
 


 시립 도서관에서 옥찌에게 보리 국어사전을 보여줬다.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말을 찾기 시작했다. 사랑, 포옹, 하트 등등.
 머리 묶는 옥찌. 코를 잔뜩 찡그리는 표정이 좋다.



 아이들끼리 편지를 주고 받는걸 보면 알라뷰, 사이좋게 지내자, 건강하자 등등의 별다른 특색없는 말이 대부분이다. 우리 앞으로 좀 더 많이 싸워보자라던가, 모험이 넘치는 얘기라던가, 재기발랄한 면을 기대하기엔 아이들이 너무 어린걸까? 삐뚤삐뚤한 글씨 사이로 틀린 글자들이 보인다. 이런 글을 보는게 난 왜 이리 좋은건지. 특색없다고 궁시렁댄건 결국 나한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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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2-0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옥찌들 오랜만이에요 (저 옥찌들 팬인거 아시죠?)
마지막의 저 편지, 어떻게해...너무 사랑스럽잖아요. 알라뷰, 알라뷰, 자꾸 따라해보고 싶은 말이네요. 영어의 I love you 보다 훨씬 덜 느끼하고 정이 있어요.

Arch 2009-12-03 08:51   좋아요 0 | URL
크~ 감사합니다. hnine님 댓글 덕분에 제가 이중 삼중의 감시망을 뚫고 뻬빠질을 한다는거 아실런지 몰라^^
저도 그럼 슬쩍, 알라뷰~

hanalei 2009-12-0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일관성이 없어요.

Arch 2009-12-03 08:51   좋아요 0 | URL
치~

비로그인 2009-12-0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에서 찍은 사진, 참 좋아요. 오래도록 들여다볼 수록 새로운 모습들이 보입니다.

Arch 2009-12-03 15:18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전 옥찌들이 약간 멍~해서 귀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