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쌈치기
 프로그램 저작권 문제로 컴퓨터 사용이 금지된 지난 며칠. 회사 직원들은 금단 초기 증상을 호소하듯 두리번거리고, 초조해했다. 그러다 안 되겠는지 갖가지 놀이들을 개발해냈는데 그 중 하나가 쌈치기였다.
 벽면에 동전을 던져서 어떻게 어떻게 하는거라는데 -게임 규칙은 어렵다.- 한번 팅하고 동전 튕기는 소리가 날 때마다 환호성과 야유가 교차하는 뭐 그런 놀이인 것이다. 난 쭈구려 앉으면 다리가 아파서 안 하겠다고 하고선 그들 주위를 서성였다. Ch가 그 모습을 보더니,

- 아치야, 내가 돈 따서 과자 사줄게.
한다. 그래서 내가
-
그럴거면 차라리 집을 사줘.
라고 했더니 자기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지킬 수 있는 얘기만 한다나 뭐라나.

그렇게 말하는 Ch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 김연수님께 질문
(
문학 MD님이 작성한 페이퍼다. http://blog.aladin.co.kr/bbs/3157109 )
 

알라딘 : 알라디너 Arch 님은 지금 <밤의 노래한다>를 읽고 계신데, 이정희나 여옥처럼 날 것 그대로 생생하고 멋지고 건강한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혹시 작가님의 여성관...이나 여성 화자를 떠올릴 때 염두에 두고 계신 게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김연수 : 여성관... (웃음) 제 소설의 남자들은 여성 화자에 의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들이에요. 어떤 여성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여성 화자가 좀 멋지고 세요. 한 남자가 사건에 휘말리게 해야 하고,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야 하니까. (웃음) 장편 같은 경우는 훨씬 더 큰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센 캐릭터가 나오게 되는 것이고요. 소설적 필요에 의해 이런 인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주변에 보여주면 여자분 들은 이런 게 어디 있냐, 이렇게 멋질 수가 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등장하는 여고생 캐릭터는, 말 그대로 연구처럼 작정하고 쓴 것이죠. 소녀에 대해 쓰고 싶었거든요. 근데 이 역시, 주변 여성분들은 동의하시지 않더라고요. 여고생이 이렇게 멋질 리가 없다고. (웃음) 

알라딘 : 다시 Arch 님의 질문입니다. Arch 님 은 <청춘의 문장들>이나 <여행할 권리>를 좋게 읽으셨다고 하는데요. 두 편의 장편 소설을 구상 중이란 얘기를 다큐멘터리 [할매꽃] 시사회에서 들었다고 하시면서, 다른 장르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 없냐고 하셨어요.

김연수 : 저는 긴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수전 손택 같은 글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수전 손택, 낸 골딘, 메리 올리버... 다 제가 사랑하는 여인들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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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 모임 날짜를 정한다는 핑계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다. 누구는 당황하고, 누군 반가워하고, 다른 누군 부러 전화하는거면 귀찮은거 아니냐고 묻는다. 처음엔 더딘 의사결정 과정이 답답해서 하기 시작한 전화였다. 강제나 의무가 수반되는게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전화였다. 그러다보니 전화를 하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재미가 적지 않다. 추운 날엔 추운대로 좋고, 더운 날엔 더운대로 분명 좋은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
아침에 지각을 했다. 늦을지도 모른다에서 늦어버린걸 안 순간, 맘이 좀 편해졌다. 바람은 좀 찼지만 정거장에 앉아 책을 읽을만큼 춥진 않았다. 난 여전히 강준만 선생님 책을 읽고 있다. 2페이지만 읽으면 끝이다. 한권 읽기가 이렇게 어려울줄이야. 이 책의 리뷰를 쓴다면 좋은 평점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난 여전히 내가 강준만 선생님과 같은 시대에 살고, 그가 쓴 따끈따끈한 글들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
얼마 전, 하얀으로 시작하는 두 분의 알라디너를 그야말로 발견했다.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지만, 두분의 총총 빛나는 예전과 지금 글을 보는건 정말 즐겁다. , 이 넓은 알라딘 마을엔 얼마나 많은 숨은 알라디너가 있을까. 분명히 다른 포탈이나 블로그 전문 사이트도 있는데 난 유독 알라딘이 좋다. 한동안 다른 곳으로 떠보려고 색다른 컨셉(이를 테면 주접 안 떠는 컨셉? ~) 을 잡고 어수선을 피웠지만, 내가 있을 곳은 여기뿐이란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
급한 불을 껐다. 어거지 바가지인 누구누구 주문을 어거지로 맞춰서 어쨌든 일을 끝냈다. 다른 모든 일을 보류하고 한가롭게 페이퍼를 쓴다. , 달콤해라.

 아, 방금 위풍당당하게 들어온 Ch는 쌈치기에서 이겼다며, 과자 따위 문제없다는 얘기를 전했다. 역시! 이 친구, 메신저 친구맺기를 하자길래, 우리가 친구냐고 반문했더니, 먹을걸 주면 친구란다.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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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2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잇힝 나와의 대화가 그렇게도 재미졌나요? *^^*
오늘 어째 2개째나 김연수 관련 페이퍼를 보게 되네요. 다른 분은 김연수 낭독회에 다녀왔대요.
부러워요? (내가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 )

Arch 2009-10-29 17:33   좋아요 0 | URL
노코멘트. ㅋㅋ 네, 알스님 페이퍼 봤어요^^ 전 낭독회는 별로에요. 내가 잘 아는 누군가가 책을 읽어주는게 더 좋아요.

Forgettable. 2009-10-29 17:41   좋아요 0 | URL
난 누군가가 내게 책 읽어준 적 단 한번도 없는데. ㅠㅠ
엄마가 읽어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기억엔 없어요.

아! 슬프다.

Arch 2009-10-29 17:48   좋아요 0 | URL
전 옥찌가 읽어줘요. 지민인 자기가 상상해서 읽어주기도 하고. 제가 담에 읽어줄게요.

2009-10-29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9-11-0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하얀으로 시작하는뎅...ㅋㅋㅋ
자수합니당...

Arch 2009-11-02 11:44   좋아요 0 | URL
아~ 광명을 드리죠!

무해한모리군 2009-11-0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 인터뷰에 아치님 이름이 줄줄히 등장해서 보고 웃었잖아 ㅎㅎㅎ

Arch 2009-11-04 09:56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