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울적했다. 주말엔 옥찌들 없다고 혼자 자전거 타고 동네방네 돌아다녀 피곤해서 울적했고, 오늘은 어거지로 우기기 시작하는 누구 때문에, 그리고 그 전날은 뭔가 괜히 서운해서. 이유없이 웅크리고 있으면 습관적으로 작아질 것 같아 이유를 붙인거지만, 이유는 분명치 않다. 가을 탄다는건 식상한데, 식상한 기운을 뿜으며 '나 가을타나봐.'라고 할 수 밖에 없는걸까.
터덜터덜 집에 와 두유랑 빵을 먹다가 이것저것 먹어대기 시작하고 있는데 옥찌들이 들어닥쳤다. 옥찌는 나를 힐끔 쳐다보면서 '배신자, 혼자 밥 먹어?'라고 말했다. 아니, 이모가 어쩌고 입을 떼려고 하니까, 어서 밥을 내놓으라고 성화다. 민은 웬일로 들어오자마자 욕실로 가서 손을 씻는다. 별일도 다 있지. -알고보니 나중에 할 실험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이들과 와글와글 떠들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유괴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 가상 유인 상황에 대해 말을 했다. 옥찌는 똑부러지는 목소리로 어떻게 대처할지를 말했고-그래봤자, 안 돼요, 싫어요가 다였지만- 민은 주먹으로 때린다고 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원칙과 예외를 단순하게 설명해줬다. 내가 여러번 강조하자 옥찌는 '그만, 그만'이러면서 내 입을 막으려고 했다. 입을 막으면 밥을 못먹는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민이 눈을 반짝이며 '큰 이모도 볼거야?'라고 묻는다.
- 뭘?
- 지민이가 어린이집에서 실험했대.
- 무슨 실험?
- 밥 먹고 보여줄게. 얼른 먹어.
그래서 동생이랑 난 열심히 밥을 먹었다. 상도 치우는둥 마는둥, 설겆이는 못버티겠는 사람이 하는걸로 하고 부랴부랴 서둘렀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거실에 앉아서 실험 도구를 설치해놓고 우릴 기다렸다. 마지막 행주질을 하는데 어찌나 보채는지, 배랑 뻥튀기를 가져가려고 하는데 어찌나 성화인지, 행여 실험을 시작해버리면 어쩌나 싶어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동생도 앉고, 나도 앉자 민은 다시 눈을 반짝였다.
- 잘 봐야해.
우린 정말, 기대를 잔뜩했다. 글을 쓴 뒤 불에 비춰야 글씨가 나타난다거나, 뭔가 부글부글하더니 플라스틱을 만든다거나 아니면 근사한 뭔가, 뭔가, 대단한게 있을거야란 나름의 기대 말이다.
지민이가 스틱 설탕 비슷해보이는 것의 종이를 잘랐다. 오, 실험 도구가 설탕 봉지에 들어있네.
- 이렇게 물을 떠와서 이걸 조금 넣는거야. 그리고 수저로 저어.
- 응, 그럼 어떻게 돼? 다른건 안 넣어?
- 조금만 기다려봐. 이렇게 수저로 잘 저어야해.
- 응.
조마조마하면서 수초간 기다리자,
- 봤지?
- 응?
- 녹았어.
- 응?
- 설탕이 녹았다고.
- 응?
동생과 나는 바보들처럼 계속 응응을 연발했고, 정말 이게 실험의 다인지 확인하려고 급기야는 민의 가방에서 실험 방법이 써있는 교재를 찾아봤다. 우리와는 상관없이 옥찌들은 찰흙을 물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 봐.
- 응?
- 안 녹아.
- 아......
옥찌는 이런거 처음 봐서 좀 놀랬나보다란 눈짓을 민에게 보내더니 회심의 카드인 미역을 꺼내들었다. 작은 미역 조각은 애처롭게 비닐 봉지에 들어 있었다.
- 이건 물에 넣으면 색이 변해.
- 음......
- 봐봐.
미역은 물기를 빨아들이더니 조금 커지고, 청록색으로 변했다.
대단한 실험을 마친 민은 남은 설탕을 먹다가 나한테 걸려서 생각의 의자에 앉을지, 뽀뽀로 깨끗이 끝낼지 딜을 해야만 했다.
이유없이 울적했지만, 분명하게 즐거운 이유도 있으니까, 너무 깊게 머릴 수그리고 있지 말아야야겠어요. 누구누구도 그러길 바랄게요.
어쩐지, 귀가 간지럽다 했어요. 왜 남 서재 가서 아치 포에버를 외치는지 살짝 궁금했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고마워요. 내가 할 수 있는건 서재질 밖에 없지만, 오늘 가을 국화도 예쁘니까, 이걸 선물로 줄게요.
가을 국화에서는 어쩐지 낙엽 냄새가 나요.

얘는 남정

얘는 이샤시

이름이 뽀빠이래요.

제가 좋아하는 퓨마는 요샌 잘 안 나온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