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웬만해선 사람들과 노래방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무슨 고문도 아니고 한시간 동안 얄짤없이 누군가의 열창을 바라본다는건 노래를 잘하고 말고를 떠나 곤혹스럽다. 혼자 부르면 되지, 뭘 떼로 모여서 대체 왜 그런담 등등의 생각. 그래도 나로선 최선의 상태인 '사회화된 아치'인지라 탬버린을 들어 박자를 맞추고(혼자 엇박이다.) 선곡표를 뒤지는 흉내도 내며(이건 또 사전 찾은 버릇이 있어서 잘 찾는다. 요새야 신곡이랑 정렬방법이 섞여서 애매모호 하지만 내가 신곡을 알리가 없으니 뭐.) 가끔은 들썩거리면서 춤 비슷한걸 춰보기도 한다.
 내가 노래방에서 미친듯이 놀아본 경험은 한번으로 족했다. 가장 좋고 짜릿했을 때의 기억을 남겨두려면 허술한 것들에게 틈을 내주면 안 된다는, 약간 '틱'한 생각은 아마도 왜 굳이 노래방에서 놀아야되냐고, 다르게 놀면 안 되냐고 말하다 지칠쯤에 나온 것이었다.
 노래방에서 잠을 잔적도 있고, 실수인 듯 너무 고함을 질러대는 상대방의 노래를 끈적도 있다.(설마, 내가, 정말 그랬어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살면서 점점 더 연기력이 좋아진다.) 노래 부르면서 사진이랑 동영상을 찍기도 했고, 아빠 선물로 테이프에 당신 애창곡을 불러서 녹음한적도 있다. 아빠의 단순 동작이지만 꽤 호응 좋은 춤사위를 따라해본적이 있고, 노래방에서 나처럼 자는 아빠를 밖으로 부축한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엄마의 애창곡은 몰라 열심히 번호만 눌렀고, 노래방용 맥주를 먹고 혼자 취해서 헤롱댄적도 있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본적도 있고, 노래방 집기 중 하나를 부순적도 있었다. 모두 모두 있었다.
 
 라주미힌님 서재에서 김동률의 '잔향'을 오랜만에 들었다. 문득 노래방 그 남자가 떠올랐다.(아, 화제의 급전환!)

 마르고 작고 단단했던 사람. 웃는게 그가 하는 대화의 전부인줄 알아서 그 나이에 숫기도 참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었다. 술 먹고 깔끔하게 집으로 가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종로 먹자 골목 깊숙한데 있던 노래방. 화장실은 여자 남자가 드나들 수 있고 주인은 보이지도 않는 파리라도 잡으러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우린 노래를 했다. 난 선곡표를 뒤지며 누군가 찌르듯이 '아치도 한곡'이란 소리를 어떻게 피할까 궁리했다. 털이 덥수룩한 남자가 친한척 나를 툭 건든다. 왜 그러냐니까 잘 보라고, 깜짝 놀랄거라고 했다.
 고개를 드니, 그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려고 폼을 잡고 있었다. 그런가보다. 아마 잘 생겼다면 시종일관 태연하진 않았을거다. 외모주의자같으니! 아무튼 다시 노래목록을 훍는다고 코를 박고 있는데,
 갑자기 김동률 목소리가 들리는거다. 그의 노래 귀향이었다.
 응? 노래방의 필살기는 후렴구의 고음처리인데 이 사람, 처음부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점수를 먹고 간다. 고개를 들고, 그를 봤다. 그 남자, 나긋나긋 이어나가다 크게 내지른다. 노래방엔 그 흔한 반짝이 조명도 없었는데 그 사람 얼굴이 반짝인다. 그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 전화 번호를 땄다. 펜과 종이라면 간단했을 것을 핸드폰에 저장한다 어쩐다 쑈를 하면서..

 아마도 난 순간의 느낌을 믿고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동률 노래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생각난다. 이제는 아주 먼 시절 이야기가 되어서 차마, 아무런, 말도 건넬 수가 없다.


http://www.cyworld.com/seasidesun/97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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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9-2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동률이란 말이죠.. 흠..

머큐리 2009-09-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동률이라...쉽지않은...흠

바람돌이 2009-09-2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살다보면 그렇게 누군가가 반짝반짝 빛나보일때가 있죠. ^^특정 순간에요.
노래도 못하는 저는 언제 그렇게 반짝여 보일때가 있을라나???/ ㅠ.ㅠ

Arch 2009-09-2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님과 머큐리님 뭐에요? ^^

바람돌이님, 바람돌이님은 모래요정이니까~ 항상 모래바람처럼 빛나지 않을까요?

비로그인 2009-09-27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동률이었군요...흠..

Arch 2009-09-27 22:09   좋아요 0 | URL
ㅋㅋ 아니에요.

다락방 2009-09-2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바뀐 퍼스나콘의 뒷모습 보이는 여자는 Arch님인거에요? 네?

Arch 2009-09-28 13:13   좋아요 0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