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러버
빈약한 지역 극장 프로그램 일정상 심야 영화로 '해운대'를 보러 간 날이었다. 극장까지 통화를 하던 H가 극장에 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1초도 안 돼
- 너 야한거 보러 왔지.
라고 했다. 그래서 본 영화이다. 이왕 야한거 보는 사람으로 찍혔으면 봐줘야할 것 같단 의무감은 아니고, 난 야한게 좋으니까. 그래도 명색이 극장까지 나와서 영화를 보는데 어떤 영화인지는 알아야겠기에 평점을 봤다. 악랄한 평이 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배우인 애쉬튼 커처의 몸은 훌륭하단 아쉬움 묻어나는 구구절절 자진모리 장단.
10시 20분인데 극장에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에 이 영화를 보는건 나 혼자다. 뒤쪽 영사실에 직원 한분과. 낯뜨거웠을까. 아니, 흐뭇했다. 팝콘 먹는 소리, 속닥거리고, 핸드폰 여닫는 소리, 핸드폰 불빛,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움직임 등등을 전혀 보거나 듣지 않아도 됐으니까. 휘핑크림을 잔뜩 넣은 커피를 꿀꺽꿀꺽 삼키며 얼음을 오드득 오드득 씹으며 영화를 봤다. 나, 혼자서.
영화는 생각보다 야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특히 이런 부분?
손끝으로 살살 간지럽히던 손이 가슴 끝을 톡하고 건드린다. 그러자 헤더(마가리타 레비에바, 유진과 제시카 알바를 닮았다.)가 서두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남자는 '저 저, 귀여운 얼굴'로 약간 당혹해하더니 꼭 끌어안는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 또 끌어안는다.

영화를 본 후 이 그림을 따려고 사이트들을 검색하다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남자는 밤일 잘 해도 소용없다'란 말이 쓰인걸 봤다. 비스티 보이즈에서도 그랬지만 (그러고보니 윤종빈과 데이빗 맥킨지는 전작과 그 후의 작품 느낌이 약간 비슷하다.) 여자를 등쳐먹는 남자들이 나오는 영화는 불행한 결말을 맺는다. 왜 그럴까. 나쁜 남자의 말로는 그 정도로 해줘야 대개의 여성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설마.
누구에게나 젊음은 찰나이고, 젊음이란 자원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건 순간이지만 사회와 영화는 왜 남자들에게 더 가혹할까. 혹시 그들은 몸을 자원(뭔들 아니겠냐만)으로 누군가에게 기생하는 삶에 대해 젋은 남성들에게 경고하는건 아닐까. 반대편에 있는 여성들에겐 더더욱 외모 가꾸기에 열중하도록 독려하고 말이다. 아찔한 이분법일까. 하지만 소위 말하는 이쁜이 수술까지 하는 사만다(앤 헤이시)를 보자 재력과 미모와 지성까지 겸비했으나 늙은 여자가 의지할건 젊은 남자의 사랑 운운이란데서 좀 더 의욕한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가난하고 젊은 사람들(물론 아름다운)이 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부의 재분배,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가슴, 설마 여기까지 와놓고 해피엔딩을 생각한건 아니겠지란 감독의 배짱, 멜빵이 잘 어울리는 남자 애쉬튼 커처.(난 그게 다였다. 도무지 내가 좋아할만한 스타일이 아니다.) 끝내주는 영화라던가 너무너무 재미있어요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만끽하는 혼자만의 영화관' 효과가 더 크긴 했지만.
* 그래서 연애를 한다.
꼴 사나웠다. 의사가 증상을 말해보라는 소리에
- 머리가 자주, 많이 빠지며, 생리가 지 맘대로 오고, 기미 비슷한게 생기려고 한다. 비염이 있고, 가끔 어지럽다.
라고 한건.
의사가 장난꾸러기처럼, 자, 뭐든지 말해봐요란 표정을 지어서였다. 뱉어놓고보니 참담했다. 내가 먼저 스트레스 때문이죠?라고 물었다. 의사는 나와만 나누는 이야기인듯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착실한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잠을 많이 자야겠다며 웅얼거렸다.
그래서였다.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건. 더 늙고, 더 귀찮아지기 전에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뭣도 해야하고, 뭣도 해야하는데 며칠동안 이 남자만 바라보고 있다. 아니, 김해연과 이정희, 여옥이만 보고 있다.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본 까마귀, 다시는 뜰로 내려앉지 않는 법이죠’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데미안의 구절과 닮아 있다. ‘사랑 따위는 한번도 해보지 못한 자의 시시한 표정이로군.’은 또 어떤가.(이 페이퍼는 이제 막 주인공이 사건에 휩싸이기 시작한 즈음에 썼다. 거의 다 읽어가는 지금은 도저히 이런 명랑한 느낌을 상상할 수 없다.)
<밤은 노래한다> 누군가 리뷰에서 그랬다. 김연수 소설은 대학 시절,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멋들어지게 하는 오빠를 닮았다고. 맞다. 그래서 좋다. 말 한마디 허투로 내뱉는 법 없이, 어떻게 하면 요 녀석이 눈을 휘둥그레하며 자기 말을 들어줄지 잘 아는 오빠. 작가는 으름장 놓듯이 아이를 곯리는 어른과 닮아있다. 어른은 말 한마디로 끝내지만 작가는 더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놀랬던 아이는 그만 약올리는게 아닌가 싶은 말들을 곱씹다가 하오더, 씨아오, 이 씨아오(좋습니다. 웃어요, 웃어)라고 말하는 이 작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걸 안다. ‘그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일이었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내 경험을 좀 더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한걸까. 고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글로리아 스타이넘과의 데이트는 어떨까. 그녀가 플레이보이의 바니걸에 위장 취업을 해서 기록한 내용을 보고선 나 역시 위장취업이 아니라, 생계형 일이었지만, 감정노동과 남성에게 시각적으로 만족을 주는 업에 종사하는건 어떤건지에 대해 써보고 싶어졌다. 나의 연인은 가만히 앉아서 밥을 잘 먹고 있는지 물어보기만 하는걸 연애라고 생각하는 청맹과니는 아닌거다.
<뷰티풀 몬스터> 벌써 며칠째 리뷰만 수정하고 있다. 소설도 인문사회과학책도 읽기 싫은 밤, 김경은 귀퉁이에서 꼬물대다 내게 찾아왔다. (그러고보니 김연수와 김경은 아는 사이였단 내용의 글을 어디서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정혜윤이었던가? 그게 중요한건 아닌데 좀 궁금하다.) 씩씩하고 예민한 그녀. 그녀와 데이트를 하면 쉴 틈이 없다. 핫하고 엣지있는 장소로 놀러다니고, 쿨한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쁜게 아니다. 바로 그녀,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듯 모를듯, 한달 수명인 잡지처럼 유한하지만, 그녀가 즐겨 인용하는 짧은 글귀들처럼 오랫동안 남을만한 인상을 지닌 그녀 때문이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치지 않는다. 날 뜨겁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 멋으로 하는 자선 활동이라도 그녀처럼 한다면 폼이 나고, 그녀를 매개로 열리는 세상에 한발짝이라도 내딛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 추천은 누가 할까.
로그아웃 상태에서 추천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느닷없이 추천수가 많아졌다. 그건 다른 서재도 비슷하다. 예전엔 내 서재에 누군가 나타나 흔적을 남기기만을 간절히 바랄 때가 있었다. 그땐 아무도 찾지 않는, 불통의 느낌이 답답해서 더 악착같이 페이퍼를 썼다. (괜한 똥힘줄!) 물론 시간도 많았다. 지금은 하루 일과가 꽉 짜여져서 일할 때 잠깐씩 들어와 댓글을 남기는거 말고는 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가 어렵다. 물론, 하나를 올리더라도 제대로 쓰고 싶은 욕심도 있겠지만.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가끔은 이 글이 이렇게 추천받을만한가란 의문에 휩싸이기도 하고, 누군가 여러 컴퓨터를 돌아가면서 추천하는건 아닐까란 의심도 들고, 에 또, 가끔 무의식적으로 내가 추천을 누르는건 아닐까란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살짝 '누구세요'라고 물어보고 싶다.
'누구세요, 거, 기, 있나요?'
* 추분인 어제, 어제 올렸어야할 페이퍼였다.
과로와 감기로 올릴 수 없었다는건 뻥이고, S러버에 괜히 꽂혀서 과욕을 부리며 더 써, 더 써, 하다가 그만.
이제, 곧 밤이 긴 날들이 올거야. 당분간 버스 앞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긴 어렵겠지. 저녁에 내다보는 풍경은 그런 집이 하나도 없는데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할 것처럼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꾸벅꾸벅 졸며 반쯤 감긴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디 안 갈테니까 천천히 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