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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
김현진 지음, 전지영 그림 / 레드박스 / 2009년 8월
너무 사고 싶어서 몸이 간질거릴 정도가 되어서야 서점에 갔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나오니까 예약 하라고 문자가 왔을 때부터 몸이 간지럽기 시작하더니 하이드님의 포토 리뷰를 보자 분명히 몇달 후에 보면 된다고, 아직 행복의 건축도 읽지 않았다고 나를 타일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딱 이번만이야!
신간 코너를 스쳐 가는 길에 김연수의 신작도 보이고, 김현진의 책도 보였지만 눈을 질끔 감고 주문을 외웠다. '너, 너 집에 있는 책 다 읽고 책 산다며, 도서관에서 빌려보라고, 책을 좋아하는거니, 사는걸 좋아하는거니.' 주문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보통 책은 찾지 못하고(아니 어떻게 없을 수가!) 아쉬운 마음에 두리번거리다 김연수 책을 훑어보면서 그래도 난 '달로 간 코미디언'은 읽었다며, 문학 잡지에서 나온 단편 하나도 있다며 자위(그 자위 아니다. 재미없긴)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등 뒤로 나를 쳐다보는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김현진이었다.
끌리 듯이 그녀에게로 갔다.
- 뭘 망설여, 어서 책을 집어들고 계산 하라고! 보통 책을 못샀으면 뭐라도 하나 건져야할거 아냐. 빈손으로 서점을 나갈 수 있겠어? 한밤중에 뛰쳐나오지 말고, 얼른 책을 집어!
- 아냐, 현진씨 글을 내가 좋아하고 알라딘에서 당신 얘기 나올때마다 귀신같이 찾아다니면서 읽지만 아냐, 당분간 책을 안 사기로 했단말야.
- 당분간은 개뿔.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랬어. 그런데 너 내가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그녀의 꼬임에 정말 딱 한페이지만 보고 미친 듯이 서점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비도 오는데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동네 어귀에서 어슬렁거리면 그게 나라고 할 정도로 제대로인 포즈로! 하지만 책을 펴는 순간, 짐작한대로 다시 제자리에 놓을 수 없게 되었다.
옆에서 '잇백을 가지는 방법'류의 시시껄렁한 잡화점 분위기 나는 코너에서 이 책을 구해야해! 서점에서 책을 사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인세의 10%로는 기부금으로 나간대잖아. 사랑 중독증에 대해서 말하잖아. 책을 안 사고 빌려서 보기로 한 네 맘 잘 알아. 그렇지만 사야할 책은 따로 있는거다, 너! 너 책 안 사면 그 돈으로 뭐할래. 할것도 없잖아. 지금 안 산걸 몇시간 동안 후회했다가 아침 댓바람부터 서점에 나올래, 아니면 지금 살래.
아, 빌어먹을 합리화.
마치 처음부터 이 책을 고르려고 했던 것처럼 무심하게 책을 들고선 계산대로 갔다. 그래도 알량한 마지막 보루로 '저기, 띠지가 좀 뜯어졌는데 다른 책은 없나요.'라고 내뱉어줬다. 재고가 없을거란거 뻔히 알고, 띠지가 뒤집혀있든 갈기갈기 찢겨져 있든 살거면서. 아마 책이 불량이었어도 문제 없었을거다.
그렇게 현진씨 책을 만났다. 휴,
일러스트는 전지영씨가 맡았다. 예쁘고 재치 있으면 좋을 것을, 약간 투박하다.
발로 찍은 사진을 굳이 올리고, 리뷰까지 쓴건 Jude님이 일러스트 보고 싶단 얘기를 들어서이다. 일러스트는 흡족하지 않아요. 진짜는 김현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