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들어온 사람이 자꾸 연봉을 물어본다. 사장님이랑 얘기 안 했냐니까 했는데 두리뭉실하게 말해줬단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자기 연봉을 대충 알고 다니냐고 했다.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성미 급한 J씨에게 쪼르르 가서 말해줬다. 

- 누가 누가요, 연봉 물어보고 다니는데 어떻게 하죠? 그러다 그만 두면 어쩌지?

- 그럼, 그만 두라고해. 

- 그럼 또 뽑아야하잖아. 사람 뽑으려면 진빠져요. 그런데 J씨는 여기 왜 다녀요? 

라고 물었더니, J씨.

- 오갈데 없어서. 

라고 말한다. 그래서 옆에 사람한테도 물었더니 자긴 여기 내려온지 얼마 안 되고 어쩌고 하지만 결국은 오갈데 없어서. 

그럼 넌? 그럼 넌? 다들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더니 그 중 한 사람이 헛기침을 하더니 옆에 사람에게 채팅 그만하고 부품 이름 외우란 소릴한다. 한마디로 널널하단 소리다. 

 사장님이 맨날 주문 외듯이 '오갈데 없는 청춘들아, 한심한 청춘들아.' 했던게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여기 왜 다닐까.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임금 체불과 직원들과의 문제가 있었단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난 이 회사를 선택했다. 경력은 물론 자격증 하나 없는 나를 써준게 감사하다는건 지극히 감상적인 부분이고, 기술을 배워서 경력을 인정받아 등등은 첫날 몇시간동안만 유효했던 이유였다. 그렇다면 왜 다닐까. 

 아치의 이름이 두번이나 들어가는 사직서를 내고 누구누구씨는 갑자기 사라졌다. 아치야 그렇다치고 그분이  적어놓은 '옆사람의 가슴 아픈 충고'에 방점이 찍힌 사장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직원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J씨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다 뒤집어 썼으니 맘 놓으란 소릴 했다. 그러면서 아직 그 사직서 혹은 편지를 못본 사람들에게 직접 가져다 보여주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글씨는 잘 썼지만 비문이 많았다. 나도 떠나봤고, 나도 도망쳐봤고, 나도 발버둥 쳐봤다. 그렇다고 다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지금 나는 'love is coffe'를 들으며 달콤한 오후 네시를 보낸다. 음악은 내가 선택한다. 다들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인다,는건 뻥이고, 느긋하게 열심히 일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뭔가를 하고 있긴 하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09-07-2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대답은 '뭐 딱히 다른 갈데도 없고 다른 할일도 없어서' 가 되겠네요.
참, 말해놓고 나니 한심해지는데, 책도 사고 술도 마시고 삼겹살도 먹어주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회사를 다녀서 돈벌이를 해야되고, 다른데 가봤자 별다를 것도 없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새로 적응하자니 그것도 신경 쓰이고, 딱히 뭔가 불만이 있지도 않고, 그래서 다녀요, 정말.

아, 참, 저는 왜이리 욕심이 없을까요.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돈이 많으면 좋겠다, 라고는 생각하지만),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뭐 생각하지도 않네요. 뭐 간혹 왜 나는 이다지도 능력이 없는가 싶어지기는 하지만 말예요.

와- 다 써놓고 나니 참 생각없이 살고 있어요, 전.

Arch 2009-07-28 20:0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생각없이 사는게 아니라 생각없이 살도록 강요받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어요. 나는 네시간씩 일하면서 어느 날에는 음악가가 되고, 다른 날에는 선생님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전에 말했던 것처럼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다락방님은, 최선의 선택을 한거예요. 저도 그렇고. 최고가 아니지 않나란 생각에 어느 날 문득 두렵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아득하기도 하겠지만 글쎄,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만으로 자족하면서 살기엔 너무 퍽퍽하잖아요. 유희하기, 놀려면 제대로 놀기. 퇴근 시간을 기다리면서 저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비로그인 2009-07-2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돈주니까 다녀요. 병원을 많이 다니는데, 병원 가기가 쉬워서 여기를 선택했어요. 제게 직장의 가장 큰 조건은 밥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Arch 2009-07-28 20:08   좋아요 0 | URL
자연 치유력 어쩌고 하면 오지랖이겠죠! 많이 아픈건 아닌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면서 엄살을 폈지만, 조금 일하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봤어요. 자기 좋아하는 일 하면서 지겨움이나 밥벌이란 자조가 아닌 즐거운 노동을 하면서 살았음 좋겠단. 다락방님 댓글이랑 모순인가? 히~

뷰리풀말미잘 2009-07-28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일 얘기만 하면 모골이 송연해지더라. ㅎㅎ

제게 뉴질랜드 양치기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초등학교 소사 하면서 여생을 즐기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요. 근데 10급 공무원이 여자들한테 그렇게 인기가 없더라구요.

Arch 2009-07-28 23:49   좋아요 0 | URL
그 뒷 얘기를 제가 좀 아는데...
참고로 저는 육체노동하는 남자를 좋아해요라고 하려고 했는데 문득 어어, 난 평소에 길고 하얀 손을 좋아한단 생각이 떠올랐음. 10급이면 어떻고 1급이면 어떻습니까,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 될 것을. 나 홀로 심각해진거? ^^
미잘이 꾸미는 음모라면 언제든 응원해!

뷰리풀말미잘 2009-07-29 01:11   좋아요 0 | URL
오, 저요. 저. 육체노동 하는데 손은 제법 길고 하얗(다고들)해요. 완벽한 아치의 이상형! (퍽-)

Arch 2009-07-29 01:20   좋아요 0 | URL
그냥 하던대로 음모나 꾸미세요^^
아, 나 이 댓글 무척 맘에 드는데~

다락방 2009-07-29 08:34   좋아요 0 | URL
Arch님. 저 육체노동하는 남자들 사랑해요. 특히 구릿빛으로 타가지고 땀으로 번들거리는 그들의 상체.

잘만 킹 감독의 『레드 슈 다이어리』 몇번째 시리즈였는지 모르겠는데, 길에서 상체를 드러낸 채로 육체노동하던 남자에게 완전 쑝가는 여자가 나오거든요. 아아, 이해해요, 이해해요.

그런데 또 길고 하얀 손가락도 이해해요, 이해해요. 그것도 좋아요 좋아요.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피아노라도 치면 작살. 거의 쓰러짐. 육체노동과 길고 하얀 손가락은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이 두가지가 다 좋으면, 어째야 하는거죠?
으윽, 육체노동하는 땀흘리는 남자들 보고 싶어요 ㅜㅡ
그런데 깔끔한 수트차림의 남자도 또 엄청 좋아요. 뭐야, 왜이래 ㅜㅡ

Arch 2009-07-29 09:11   좋아요 0 | URL
ㅎㅎ. 미잘 만나면 되겠네 (뭐래 퍽퍽)

무해한모리군 2009-07-29 09:21   좋아요 0 | URL
말미잘님은 좋겠다 두사람 이상형이라서~

나는 사무직 노동자에 손가락도 짜리몽땅..
나도 두사람 이상형 하고 싶어 하고 싶어~
(어디서 강짜 퍽~)


Arch 2009-07-29 09:43   좋아요 0 | URL
오늘 자폭(자진해서 본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작렬인데요~

다락방 2009-07-29 10:03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도 내 이상형 이상형. 양갈래로 땋은머리 보여줘라 보여줘라!!

Arch 2009-07-29 10:05   좋아요 0 | URL
ㅋㅋ 다락방님 여기서 시위하시면 제가 비밀을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전혀 안 먹히는 협박!

무해한모리군 2009-07-29 12:3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완전 사랑~~
다락방님 정말 보여드리고 싶은데 머리를 자르고 뽀글 파마를 해버려서 이제 양갈래가 안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