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블로그를 운영하는 입장에 대해서, 특히나 다른 곳이 아닌 알라딘에 둥지를 튼 이유에 대해서 밝혀야할 것 같다.  

 처음에는 단순히 '친해지고 싶어서'란 이유가 컸다. 요새 자꾸 친구해요, 친해지고 싶어요 타령을 해대는 것을 보니 잠시 산이라도 다녀와야할 것 같다. 아무튼, 평소에 난 책을 좋아하거나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이유로 맥없이 '4차원'으로 규정되는 틀이 나만큼이나 엉뚱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몇년동안 곁눈질로 지켜본 알라딘에서는 다른 것이, 다른 무언가로 규정지어지는게 아닌, 정신적인 유희를 가능하게하는, 즐겁고 유쾌한 부딪힘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들과 같이 고차원적인 유희까지는 아니어도 즐거움의 각질이라도 접하길 바라마지 않았다. 알라딘에 둥지를 틀며 나의 자원으로 과연 제대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좌우 사방팔방으로 헛스윙이나 날리지 않을까란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친절한 알라디너들은 선뜻 아치, 시니에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알라딘에 있으면서 너무나도 민망하고, 황송하게도 칭찬을 받기도 했고, 내가 지금껏 바라마지 않았던 소통의 형태는 이런게 아닐까란 흥분에 아주 많이 까불거리기도 했다. 애초의 '친해지고 싶다'란 것이 그저 형식적인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그들의 손을 덥석 잡는 것에서 나아가 만나고, 얘기하고 내가 가진 얘기들과 그들이 가진 얘기들이 부딪히며 얽혀들어가는 것을 흥분하며 지켜보기도 했다. 글로는 이렇게 장황하지만 실제로는 아마 100분의 1도 다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리뷰보다는 옥찌들의 얘기로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옥찌들 얘기를 그만 쓰며 아치란 닉으로 바꾼 후부터는 아이를 매개로 이어지던 관계가 소원해지고 아치스트랄의 이야기를 가끔 접하는 사람들만이 서재에 드나들게 되었다. 

 댓글 마케팅이란, 이름만 산업적이지 꽤 따스한 정서의 소통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괜한 조급함에 나도 댓글을 달아주고 다니며 인지도를 높이려고 낑낑댄게 사실이다. 흑, 비루함. 옥찌들 얘기가 아니어도 내 안에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풀어낼 수 있으련만 조급했고, 안달나 있었다. 차라리 미워하고, 맘에 안 드는게 낫지, 잊혀지는건 두렵다란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일을 하면서 글을 제대로 읽고 댓글을 달고, 그것도 유의미한 댓글을 다는 일이 보통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별로 달지도 않은 주제에) 그러면서 가끔 내 글에 달린 댓글들의 진정성이 의심되었다. 전에 글에도 쓴적이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 갑자기 몇가지 단어로만 축출이 가능한 댓글을 볼때면 좀 더 깊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실은 댓글 자체가 소통보다는 상부상조, 품앗이 같은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서부터 내가 정말 의견을 보태고 싶거나 해줄 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댓글 안 달리 페이퍼가 안쓰럽거나(내 서재에서 왕왕 발생하는)  이 알라디너가 전에 나한테 댓글을 달아줬기 때문에 예의상 품을 보태준다거나, 다음에 쓸 나의 글의 댓글을 미리 저축하는 심정은 아닐까란 것까지 발전했다. 아, 이 진화의 속도란.(알겠지만, 진화는 나아진단 의미가 아니다.) 품앗이와는 무관하게, 서로가 댓글을 달아주는 빈도의 격차가 크다면 분명 댓글을 많이 단 축은 서운하겠다란 생각까지 미치자, 게다가 그즈음 적막하기 이를데없는 아치의 서재에 댓글마저 안 달리자 의혹과 복잡함이 최고조로 도달해 댓글을 달 수 없게하는데까지 이르고 말았다. 

 직접적인 계기는 변방에서 누군가의 한떨기 댓글을 기다리는 Arch스러운 비참함이 주효했지만. 

 애초에 내가 이곳에 문을 연 계기를 생각하자, 늘상 모자란 구석이 있긴 했지만 이번엔 그 강도가 더했다란데까지 생각이 미치고야 말았다. 친해지고 싶다고 했으면서 혼자 괜히 이러는건 또 뭔가. 일기를 쓰는게 낫지, 대로변에서 홀딱 벗고있는데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 더욱 민망해지는 경우랄까.  

 다시 댓글을 열고, 이것저것 생각지 말고 그저 나와 닿으려는 누군가와, 내가 닿고 싶은 누군가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예의를 차리면서 복잡하고 번잡하게 하지도 않고, 친해지는 것을 넘어서,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얘기하고, 가려운 등짝을 같이 긁어주는 것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역시 욕심이었던거다. 자기는 그만큼 하지도 않으면서 상대에게 바란, 그러면서도 남들만큼은 해보고 싶은 정말, 옥찌만도 못한 욕심이었던거다.  물론 이런 얘기가 처음으로 나온건 아니다. 전에 서재의 성격 어쩌고 하면서도 칭얼댔으니. 서재 이미지도 너무 괴팍하고 좀스러워 다른 느낌을 주고 싶다란 생각도 들어 뿌옇고 뭐가 뭔지 구분 안 되는 사진을 물색 중이다. 이런, 또 욕심을 부린다. 욕심은 나의 힘? 서재 타이틀이라도 바꿔야할까.

 욕심꾸러기 Arch는 오늘 루이보스차를 마시면서 부지런히 페이퍼를 쓰거나,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려합니다. 할매꽃 후기는 끙끙대며 다 썼고, 시뮬라시옹 숙제는 아아, 맞다. 페이퍼는 보류, 일기는 자기 전에. 책을 얼른 읽지는 못하겠으나 부지런히 읽어야지.

식후 30분 후부터 정자세로 앉아 시뮬라시옹을 읽어야겠다.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인데, 앗흥.  

 점심 잘 먹고, 내일 비온다니까 봄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늘은 휘적휘적 외출이라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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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3-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응!! 오늘 날씨 진짜 끝내줘요! 자켓을 벗고 나올걸 괜히 입고 나와서 들고다니느라 거추장스러워요. 팔랑팔랑, 원피스 입고 외출했어요. 공연 하나 보러 나와서는 기다리는 중예요.

봄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늘, Arch 님은 휘적휘적 외출중인가요?

Arch 2009-03-21 23:33   좋아요 0 | URL
원피스는 역시 팔랑팔랑이죠. 아, 원피스 입고 막 휙휙 날아다니고 싶다. 전 단잠 자고, 뭐를 해먹고, 방도 치우고 그랬죠. 남들 가슴에 봄바람만 집어넣고 전 방콕했어요. 히^^

가시장미 2009-03-2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 글이네요. ^^
눈팅만 하려고 왔다가 너무 공감이 되어서 댓글을 남겨요.
저처럼 요즘 댓글 달 시간도 없는 사람은 솔직히 페이퍼를 올리면서도 늘 미안하죠.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는 귀기울이지 못 하는 것 같아서요.
근데..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제 글에 댓글 남겨준 사람에게는 답글을 남기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서로 뭔가를 주고 받고 있다는 게.. 가끔은 의심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꼭 말이 아니라도 와 닿는 뭔가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구요.
오랜 시간 이 곳에 머물다 보니 몇몇 사람들과는 진심이 오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그게 착각일 지도 모르지만요. 착각이라도.. 뭐 유쾌한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지내죠. 으흐

Arch 2009-03-22 00:38   좋아요 0 | URL
눈팅족이로군요. ^^
미안함도, 빚진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덜어놨으면 좋겠어요.
또 고백하자면, 전 제가 댓글 남겼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같이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조용히 눈으로만 훑고 건너뛴적이 있었어요. 제 친구의 전문용어를 빌리자면, 좀 추접해지는 상황인거죠.
그래서 중요한 것, 원하는 것, 가장 강하게 끌리는 것에 방점을 찍어두려고요.
가시장미님 말처럼 저도, 진심으로 맘이 오간다란 느낌을, 역시 나 홀로 착각일 수 있겠지만, 갖고 가려구요. 다른 사람을 배제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말이죠.
실은 이 글 쓰고 누군가 댓글로 저를 몰아대는 꿈을 꿔선, 원. 낮잠은 좀 위험해요.

웽스북스 2009-03-24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다시 아치님이 댓글기능 열어놔서 좋은걸요 ^-^ 가끔 달고 싶었다고요.
그리고, 옥찌와 지민 소식도 궁금한 1인. 헤헤헤. (마케팅에 제대로 낚인건가 ㅋㅋㅋㅋㅋ)

Arch 2009-03-24 17:40   좋아요 0 | URL
^^*! *<--이건 드물게 붙여주는거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