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없는 것들의 신하균은 킬러가 단순하게 사람 하나 쏘고 잠수타면 그만이란 상식을 깨주었다. 킬러도 밥 먹고, 킬러도 섹스를 하고, 킬러도 곱창을 먹고, (가끔 갈비도 먹으며), 킬러도 책을 읽는다. 영화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만 뭔가 좀 불안하고 위험한 킬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가 생계형 조폭이라면 신하균은 삶에 단단한 뿌리를 두고 있는 생활형 킬러였던거다. 

  킬러에 대해서 잘 모르며 관심도 없던 나는, 이번 만남을 통해 더욱 더 확실히 말미잘님이 킬러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미잘님이 폼을 잡고 총을 쏘거나 칼질을 하는걸 보여줬을리 만무하다. 오히려 내가 그에게 의심을 품게된건 그의 몸짓이 아닌 언어 습관에 있었다. 말미잘님은 승냥이떼같은 나와 승주나무님-같이 묻어가요-의 공격으로 말이 끊기고, 본래 하려던 말들을 토막내선 저자거리에 효수를 하고, 그걸 또 기사로 쓰며 내가 신나 있을 때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저 우리 하는 짓의 유쾌한 면을 예리하게 지켜보고선 아, 혹은 웃음으로 대답하곤 했다. 킬러를 내가 만나봤다면 확실하겠지만 만나보지 않았는데도 확실하게 말미잘이 킬러로 생각하게된 단초는 그의 평정심과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좀 더 정밀한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수사 장소는 뷰리풀 서재이고, 작업 도구는 클릭질을 위한 광합성 마우스와 실핏줄이 몇개는 터진 뻘건 눈, 가끔씩 손가락을 휘돌려 잡아당긴 늘어난 머리카락, 물잔 몇컵이 다다.  

 뷰리풀 서재에는 그가 킬러라는 증거들로 차고 넘쳐났다. 잦은 출장과 부상, 요리를 할줄 아는데서 나아가 자주 하고, 어쩌면 잘할 수도 있고,(신하균도 요리쟁이였다.) 헌책방을 돌며 네셔널지오그래피를 수집하여 세계 곳곳의 지형을 습득해서  다음 일에 대해 대비를 하며, 킬러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있으면 조력자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달콤한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게다가 

 사랑의 단상에서 얘기를 시작해 조잡하게 다음 이야기로 머리를 굴리던 아치의 옆에서 말미잘님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한방을 노리셨으니, 이것 역시 전형적인 한방형 킬러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연예 토크쇼도 아니고, 뜬금없이 '자 말해봐요, 사랑이 뭔지'에서 킬러가 아닌 사람의 이런저런 대답이 나오는 가운데 말미잘님이 말할 순간이었다. 말미잘님은 숨을 가다듬으며 

- 사랑은 또 하나의 순환체계죠. 나의 오장육부를 보여주는 것이지 않을까. 

 대답 자체도 멋있었지만, 여기서도 난 그가 킬러란 단서를 찾고야 말았는데 대개의 사람들은 오장육부, 내장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나 말미잘님은 외상시 대처와 킬러 본연의 임무 수행을 위해 신체기관의 흐름을 꿰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자신의 토대가  '사랑의 단상'을 얘기할 때도 거침없이 튀어나와 하필이면 나처럼 예민한 사람의 귀에 들어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미잘님의 늘씬한 옆구리 찔러 다 조사했으니 불으라고 하자, 그는 자신은 킬러가 아니며 '선량한'누구누구라고 했다. 하지만 킬러가 킬러라고 하는걸 보았는가. 게다가 그가 자신을 지칭해 '선량한'이란 형용사를 붙인걸 보면 100% 그가 킬러임이 확실하다. 나처럼 선량한 사람은 굳이 그런 형용사를 안 붙인다. 선량한걸 알고 있고, 느끼는데 굳이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미잘님은 중대한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말미잘님 자신도 킬러 일을 해야한다는 것에서 약간의 망설임이 있어 그 단어를 붙인 것이었던 것이었다.  

 앞으로 그의 서재를 드나들며 그의 즐찾수가 고객 명단이란 증거와 방문자수와 서재지수의 조합으로 암호를 푸는 방법, 그가 밀고 있는 책의 54페이지에 그려진 삽화의 비밀(그런거 없다. 혹 누군가 찾을까봐), 하필이면 밀고 있는 책의 제목이 두 아이도 아닌 한 아이인지, 그는 왜 '한'이란 것에 꽂혔을까, 혹시 한이 맺힌건 아닐까, 그가 들고 다니는 사진기가 사진만 찍는게 아니라 사진기에 찍힌 인물의 영혼을 볼 수...(아, 이건 마술사인가?)있다는 것 등등을 알아낼 것이다. 

 다음 이 시간에는 멜기세덱, 그는 왜 아치와 악수를 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혹자는 아치의 손이 드러워 멜기님의 예리한 눈에 걸렸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그래 나다!) 멜기님은 아프편애주의자라 그런거라는 얘기도 들리던데,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혹시 멜기세댁의 서재를 자주 드나들며 심신을 가다듬는 알라디너들이 있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제가  찐하게 악수 한번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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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2-1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온건한 페이퍼가 나올 수 있었다는 건 확실히 제 직업이 가진 포스 때문이겠죠. 예,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니까요. 아치님에게도요. 흐.. 사진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진 찍는거랑 총 쏘는건 정말 비슷해요. 눈과 목표물을 렌즈(혹은 가늠자)를 통해 일치시키고 호흡에 유의해 셔터(혹은 방아쇠)를 누르는거죠. 어두울수록 결과물이 좋지 않은 것도 공통점이구요. 장전을 해야하는 점이나 사용한다음엔 분해후 소제를 해야 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멜기세댁님이 아치님에게 악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아치님을 라이벌로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아치님은 서재계의 떠오르는 신성이니까요.

멜기세덱 2009-02-1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

푸하 2009-02-1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Jade 2009-02-18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기와 총의 유사성에 대한 수전 손택의 글이 생각나네요 ㅎㅎ

나는 멜기님이 아프편애주의자라는 것에 한표!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2-18 11:5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수잔손택을 생각했어요 ^^

무해한모리군 2009-02-1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얘기를 아기자기하게도 쓰세요 ^^ 흠 악수 안한 얘기보다 저 아래 멜기님의 목에 빨간 자국이 더 솔깃한데요~ 퍽퍽 휘모리 이건 찌라시가 아니잖아 --;;

2009-02-18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2-1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자리님, 신김치 정도로 해두죠. 음... 카메라와 총은 제가 의도하지 않은거에요. 전 그저 뭐가 있을까 하다가 걸린건데 그걸 제이드님이나 미자리님은 이렇게 연관을 시키는군요. 어찌보면 이게 뭐야 싶을 수도 있는데 즐겁게 받아들여줘서 고마워요.

세덱님. 미안미안. 그런데 쪼오기 미자리도 틀렸대요. 세에서 주의하다보니.

푸하하하

제이드님 표 받아서 우리 지방선거 나가요(뮝미)

휘모리님 제가 한 아기자기해요. 전문의 소견 결과, 빨간자국은 건선으로 밝혀졌습니다.

속삭이신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