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정선희씨가 라디오를 할 때 자양강장 토크쇼란 것을 했었다.  그 토크쇼는 말재주 뛰어난 연예인을 불러와 그야말로 아주 시끌벅적하고 뽕빨나게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청취자들을 제대로 원기회복을 시켜주는 코너였다.  

 어제, 나는 아무도 그렇게 명명하진 않았으나 비공식적으로 이름을 붙인 자양강장 모임에 나가선 주름 1미리와 목감기를 얻어왔다. 어찌나 떠들었는지 목이 쉬어 버렸고, 어찌나 웃었는지 뱃살이 몇그램이나 분산됐다. 뱃살의 가출 소식은 아침에 해장한다며 솥단지 가득 국을 먹은 바람에 몇그램이 더 붙어 소문은 소문일 뿐이란 사실을 재확인 시켜줬다. 그럼 어떤가. 오랜만에 정말 실컷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발로 헤집고, 음흉한 웃음을 한번씩 날려주고, 아이들처럼 약올리기도 해보고, 흥흥 이러면서 콧방귀도 뀌고, 결국엔 흐뭇해져선 고개를 45도 기울려서 그들을 바라보게 되는걸.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기대감을 갖게 해놓고, 에게게 저게 뭐가 웃겨,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싶은 글들을 쏟아낼까 조마조마하지만 어차피 아치의 막나가는 오바 실력과 뒷수습 없는 깔끔함을 다들 아실테니 큰 기대는 금물, 잠시 명상과 요가 비슷한 자세를 통해 작은 자극에도 웃을 수 있는 준비를 한 후 글을 읽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처음은  

 그 님의 작업본능에서 시작됐다.(그 님, 혹시 비방용일까봐 따로 닉네임을 밝히진 않겠어요.) 아마도  그 님은 웃자고 한소리겠지만 시니에에서 아치로 바뀐줄 모르고 Arch로 쓴 글 중에 하나에 30분에 걸쳐 댓글을 달았다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아니 그게 이 사람이더라구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워낙에 날렵한 에드리브를 갖고 있어 캐물어도 진실은 알 수 없으나 농담처럼 한 그 말이 사실이라면 뭐, Arch~아직 죽지 않았어. 자, 주접만 조금 떨자고.  

 본론인 사랑의 단상으로 곧장 들어가기 뭐해서 서기관인 승주나무님의 제안으로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소개했다.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를 읽는다는 렌초님에게 승주나무님은 댓글(대꾸가 맞는데^^)을 달고 싶었는지 

- 렌초님이 음악에 관심이 많구나. 

라고 했는데 어떡해. 렌초님 가로되, 

- 희곡인데요. 

 책이나 시트콤 같은데서도 아주 멋지게 이게 그거지 하다가 아닌데에서 콰당과 웃음을 선사해주는 것처럼 섬세하고 영민하며, 거칠 것 없고, 자신감으로 넘치는데다 지혜로운(승주나무님 배고파요)승주나무님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웃겨서 난 자꾸 키득대고 말았다. 승주나무님은 거의 반쯤 누워 웃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대로 이걸 페이퍼로 어떻게 적을까, 분위기를 설정하고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말로 할까, 평이하게 갈까를 생각하느라 흐뭇해지고 말았다. 쓰고나니 재미도 없고, 오바만 극성이고.

 내게 늘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렌초님은 아마데우스 외에도  김혜리의 책을 읽고 있었다. 렌초님이 글쟁이로 가장 좋아하는 최인호와 고종석, 김혜리. 그들의 글은 옷같아서 자기 완결성이 있으나 목적성은 없다. 하지만 누가 만든 옷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란 얘기를 하는데 평소의 렌초님보다 더 멋져보였다.(감상 수준하고는) 그러면서 카프 해체 당시 했던 말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 잃은 것은 예술'이란 말을 덧붙이며 한겨레와 경향이 요즘 민주노총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연계해서 이야기를 끝맺었다. 의심으로 시작하되 의심이 자조나 자멸이 아닌 자신을 굳건하게 지탱하게 해주는 힘을 얻고 있는 렌초님의 굳건함이 부러웠다. 어제를 마지막으로 렌초님은 앞으로 모임에 나올 수 없을거라고 했지만, 렌초님이 몇번에 걸쳐 내게 준 자극은 두고두고 남을 것 같다. 그렇게 되는 어느 날, 나는 로렌초의 시종에서 사전적인 의미가 아니라 렌초님이 보여주려고 했던 뜻에도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멜기님은 요새 바쁘고 정신이 없어 책을 못읽는다고, 하는데.... 어? 저건 뭐지? 

 멜기님 목에 난 빨간 자국을 보고 우리들은(사실 나와 승주나무님만-같이 죽읍시다!-) 승냥이떼처럼 달려들었다. 바쁘다더니 목의 빨강 때문에 바쁘시구려 어쩌고 저쩌고, 배신이야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오랫동안 식량을 비축해놓듯이 멜기님의 빨간 자국에 대해 야금야금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멜기님을 사지에서 구해내야겠다는 투지로 불타오른건 아니고, 그저 갑자기 멜기님에게 뭔가 궁금해진 제이드님이

- 저 실습을 인천 쪽으로 나가는데 지하철 어디세요. 

 라고 물어보았다. 통상 이렇게 물어보면 '저희 집이 어디어디쯤이에요' 이거늘, 빨간 자국으로 개그 본능이 업된 사람들은 너도나도 멜기님의 멋진 입술(멜기님 앗흥^^)을 바라보며 다음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고, 멜기님은 역시나 멜기님이었기에 간단하게 

- 제가 무슨 노숙자도 아니고, 지하철이 어디라뇨! 

 이 사건은 왜곡 망말의 대가 승주나무님에 의해 조선일보식 경마 보도로 행여 못들은 분들에게 생생중계가 되고, 승주나무님은 저 산 위의 소나무처럼 고고한 매무새로 말씀하셨지요. 

- 여러분의 위선을 정직하게 번역해주는 것 뿐입니다. 

 이 말이 여기서 나오는게 아닌데 갖다 붙여쓴걸 보면, 잠잘 시간이 됐다는 얘기 같아요. 한편으로 끝내려고 하는데 

하이쿠처럼, 

한줄은, 한 페이퍼는 너무 짧은걸요.  

2편을 기대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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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2-1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크 마구 상상하며 읽고있어요. 렌초님이 좀 한 말빨 하지요 ㅋㅋ

푸하 2009-02-17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재밌네요.^^:
참, 맛깔나게 그상황을 정리하시네요.

2009-02-17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09-02-1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알고 계셨군요
푸하님,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힘을 내서 다음편으로 완결을 내겠습니다요.
속삭이신님, ^^

승주나무 2009-02-1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가 많이 나오네요ㅋㅋ. 마지막 그 말은 진심입니다. 다들 취해 있는데 나만 깨어 있는 것이라구욧!!

Arch 2009-02-18 11:18   좋아요 0 | URL
허허, 그 말은 우리 취하기 전에 했거덜랑덜랑요. (저 건들건들하니까 무섭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