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하고 옷을 입지 않았다. 물기를 수증기화해서(왠지 어마어마하다) 자연스럽게 몸을 말리려는건 아니었다. 숨어있는 살의 행방을 애타게 찾아내 인사라도 건네야겠다는 생각이 든건 벗고 돌아다닌 다음에야 떠올랐다. 그러니까 별다른 이유없이 한번 그래본거다.
거실을 어슬렁거리는 나를 본 엄마가,
-너 엉덩이에 그게 뭐니?
라고 물으실 때 살짝 민망했던걸 보면 확실히 작정한건 아니었던 것 같다. 눈을 반짝이며 엄마에게 얼굴을 바짝 갖다댄 후 다시 뒤돌아 넓은 면적의 엉덩이를 손끝으로 콕콕 찍어대며
-엄마 이건 그러니까 좀 야한건데, 울 엄마가 감당할 수 있으려나? 그러니까 이게 말야, 섹스할 때 물고 뜯고 할퀸 자국이야.
이랬다면 상당히 깨고 재미있을테지만 실상은 단순 멍자국에 불과했다. 여기, 굶는 인간 1인(그래봤자, 며칠, 몇주) 추가요.
어제까지만해도 한 개였던 멍이 오늘 보니 양쪽에 각각 하나씩 shift를 꾹 누르고 옮긴 것마냥 나란히 자리해있다.
그렇다. 요즘 인라인을 타고 있다.
완전 짠짜라한 뒷북 고지서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겠지만 기회가 잘 닿지 않았다. 뭔가를 시작하려면 의지와 애초의 의욕을 뒷받침해야 간신히가 됐고, 남들 다 한다고 하고 싶어지는거라면 애초에 난 뭘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단 느낌까지 들었다. 해서 단물 쪽 빠지고 그야말로 뒷북일 즈음에 인라인을 타기 시작했다.
걸을 때는 차 소리가 별로 안 들리는 곳이 좋고, 자전거를 탈 때는 울퉁불퉁 하지 않고 경사가 너무 심하지 않는 곳이 좋다. 걸음이라도 제대로 옮길 수만 있다면 다행인 며칠 전까지만해도 차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않는 공간만으로도 인라인타기에는 땡큐였다. 굳이 며칠 전이라고 한건 V자로 걷기 시작하던 실력이 며칠 사이에 좋아져서 이젠 조금씩 구를줄 알기 때문이다. 구를 수 있게 되면서 바닥의 굴곡이 느껴졌다. 단순하게 매끈한 아스팔트가 아니라 몸을 울렁이게 하고 다시 대오를 정비하게 하는 굴곡. 굴곡은 아직까지 부자연스럽고 종종 알아서 기게 만드는 착지법을 찾게 하지만 발바닥 아니 인라인 바퀴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좋다. 발바닥의 모든 면적으로 바닥을 딛는게 아니라 쭈욱 미끌어지고 다시 다른쪽 발을 구른다. 지면을 발로 디디고 있다는 느낌이 생경해지는 순간 다른쪽 발이 다시 미끄러진다. 순환과 부드럽게 연결되는게 관건인데 발은 풍맞은 것마냥 떨리다가 혼자 갈지자로 뻗어대기 일쑤고, 다른발도 행여 질세라 정신없이 헤맨다. 그래도 이게 어디더냐. 앞으로 나가긴 하는거잖아.
아파트에서 인라인을 탄다고 돌아다니다보면 붐은 사라졌지만 고수는 죽지 않는단 말이 떠오른다. 과연 나보다야 낫지 싶은 정도가 아니라 월등한 숨은 인재들(거의가 어린 친구들)이 가끔씩 아파트의 코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난 인도로 걷기만 해도 황송할텐데 인도 위, 하수구 창 위에서 바퀴를 굴리다니! 게다가 턴과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몇가지 동작들. 내가 쩔쩔매는걸 확인하는 그들의 얼굴엔 번뜩이는 자랑스러움이나 왜 못할까 싶은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무심함. 그들은 한없이 무심하게 방향을 틀어 겨울 바람처럼 쌩하고 사라진다. 같은 분야라도 레벨은 있고, 레벨의 상하에서 하수는 늘 고수의 뒤꽁무니만 바라볼 뿐이다.
내가 고수가 되는 날, 나는 슬쩍 웃어주는 여유를 보여줄 생각이다. 초보자여, 그대 갈길 퍽 멀지만 꾸준히만 한다면 까짓 인라인 정도야. 뭐 이런 메시지의 웃음일텐데 과연 상대방은 그렇게 읽을지, 과연 그런 날이 오긴할지. 그나저나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인라인 진도가 팍팍 나간다는데 네이버 동영상 강의 아저씨는 인라인 타기의 정신은 안 알려주니 초보자,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