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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그 1 ㅣ 펭귄클래식 116
솔 벨로우 지음, 이태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허조그’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순차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긴 하지만 자유자재로 과거 회상과 자유 연상이 끼어든다. 무엇보다 그가 끊임없이 써대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편지’가 가독을 방해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왜 허조그가 그토록 ‘지독한 글쓰기’를 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정말 내가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9)라고 주인공 허조그는 첫 운을 뗀다. 그는 ‘신문사와 저명인사, 친구와 친척과 이미 죽은 사람들, 자신의 초라한 시신에게, 그리고 마침내는 고인이 된 위인들에게까지’(9) 이상야릇한 편지를 끊임없이 써댔다. 이 ‘편지’는 허조그의 심리 상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입장과 철학자와의 토론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사실상 편지가 아니라 독백에 가까운, 일그러진 파편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답장을 받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적는 글에 어떤 질서도 양식도 없었다. 단편적인 말-무의미한 횡설수설, 감탄사, 억지로 갖다 붙인 격언과 인용문,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시던 이디시어……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죽음-죽다-다시 살다-다시 죽다-삶. 사람이 없으면 죽음도 없다. 어리석은 자를 닮지 않으려면 어리석은 자에게 답을 하지 말라.’(12)
두 권짜리 소설에서 편지가 거의 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한다. 물론 뒤로 갈수록 편지는 더 장황해지고 논지는 복잡해진다. 그가 이토록 엄청난 편지를 쏟아낸 까닭은 무엇인가? 편지를 씀으로써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내가 보기에 답은 이렇다. 그는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편지를 쓰는 것이야말로 그가 끔찍한 절망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식이자 죽지 않기 위한 항거인 것이다.
허조그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한 전형에 들어갈 수도 있다. ‘자기도취적, 마조히스트, 시대착오적인 성격, 임상적으로는 대체로 우울증이나 중증은 아니’(13)라는 간단한 수사는 그를 제대로 보여주기엔 역부족이다. 많은 남자들-특히 허조그가 대표하는 중산층 백인 남자-이 이러한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정상적이고 모호한 성격이지만, 가끔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보인다. 그의 근육은 여전히 건재하고, 피부도 미끈하다. 그러나 그는 늙어가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심히 의기소침해진다. 그는 학자로서 꽤 인정받고 촉망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연구비만 받아낸 논문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려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더구나 그는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이며, 그 원인 제공을 한 여자가 오히려 지금 그를 증오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농락당하고, 돈을 빼앗기고, 빚을 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아내와 친구, 의사에게 배신당했는지를 끊임없이 말하고 싶어 했다’(247)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것이 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말 대신 ‘편지’를 쓴다.
그가 맞딱뜨린 ‘배신과 기만’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한 인간을 통째로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의 두 번째 아내인 매들린이 그에게 이혼을 통보하면서 그의 자아를 무너뜨렸다. 더구나 그녀가 사랑에 빠진 건 그와 가장 친한 데다 종종 매들린과의 일을 상담했고 거취까지 마련해주었던 밸런타인이었다. 그의 정신과 의사마저 매들린에게 빠져 그 일을 부추겼다. 그 의사에게 허조그는 조롱의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때때로 그들은 남의 잠자리에도 드나듭니다. 당신은 어떤 남자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고 그 부인과는 잠자리를 함께 하지요. 또 불쌍한 남편의 눈을 바라보고 위로하며 그의 일생을 다시 정리해주지요. 당신은 몇 해 동안의 예산까지 세워주고 그의 딸마저도 빼앗지요.’(106)
그는 이미 한 번의 결혼을 끝냈다. 엄격하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데이지를 떠나 화려하고 열정적인 매들린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매들린의 외도에 그토록 큰 상처를 받은 허조그가 수시로 혼외정사를 벌였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이런 종류의 모순은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다. 허조그는 매들린을 위해 교수직을 버리고 유산 2만 달러로 지방의 고택을 산다. 시골에서 논문을 완성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아내는 이내 시골 생활에 대한 욕구 불만에 시달린다. ‘자신이 너무 젊고 지적이며 사교적’(17)이라고 생각하는 아내는 자신의 몸을 왜 당신에게 모두 낭비해야 하느냐고 일갈하기도 한다. 결국 시카고로 이사를 가지만, 거기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한다.
“한 순간도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고 고백하는 건 참 고통스럽네요. 앞으로도 당신을 사랑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이 결혼 생활을 계속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우리 결혼이 실패한 걸 인정하는 건 나로서도 참기 어려운 굴욕이란 걸 알아줘요. 나도 이 결혼에 모든 것을 걸었으니까요. 아주 타격이 커요.”(21)
그는 ‘오쟁이 진 남자’였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린 후에도 끝내 스스로 그걸 파악하지 못했다. 그 경악할 만한 사실은 허조그에게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심연은 얄팍한 웅덩이와 얼마나 닮아 있는가. 배신당한 인간이 내세우는 온갖 철학적 발언은, 고통스러운 진심을 숨기고 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조와, 어떻게 감히 나를 배신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갈마들며 마음을 괴롭힌다. 지난 날을 하나씩 돌아보며, 기억의 단면들을 뼈아프게 회상한다. 그러나 온갖 인간의 부도덕에 대해 지탄하는 허조그가 초반에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거의 하지 않는다. 무언가 어긋났고, 그것이 서로의 문제인 건 인식한다. 그러나 매들린이 지적한 ‘폭군, 정신병자, 이기적이고 전제적인 남자’라는 발언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인 애인 소노가 한 말이기도 했지만, 매들린은 ‘눈이 너무 차가운 여자’였고, 허영에 가득찬 삶을 추구하는 사이코패스라고 매도한다. ‘예쁘고 영리한 데다 정신도 온전치 못하고 종교적(87)’인 여자라는 수사도 덧붙인다. 매들린이 불 같은 성미는 여러 장면에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그녀는 허조그가 사립탐정을 고용했다며 펄펄 뛴 적이 있었다. 사치를 감당하기 어려워 물건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은 갈수록 커졌고, 잠자리도 원만하지 않았다. 허조그는 “어떤 남자도 자기를 원하지 않는 여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67)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매들린은 결국 그에게 의문부호였다.
‘여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영원히 모를 것입니다 여자들이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들은 녹색 샐러드를 먹고 사람 피를 마십니다.’(70)
많은 사람이 그에게 안정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그는 유럽여행을 떠나 돌아왔지만, 상태가 더욱 나빠졌다. 매들린은 그가 자신과 아이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했다. 그는 매들린에 대해 나쁘게 말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과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배신으로 흘리는 피를 멈출 수는 없다. 허조그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형과 누나, 사촌들에게도 사랑받았고, 여자들도 그를 사랑했다. 더구나 비참한 처지가 된 지금도, 그를 사랑하는 매력적인 라모나도 있었다.
“당신은 여자와 다투면서 지내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에요.”(249)
라모나의 통찰력은 훌륭하다. 허조그는 라모나가 사랑스러운 여성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피하려 한다. 자신도 신산한 삶을 살아온 라모나가 그에게 끊임없이 지혜를 퍼부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정을 거절하지 않는다면서, 그녀의 말을 듣기 싫어한다. 라모나는 그의 장점을 알아보는 사람, 그의 살에서 나는 ‘향기’를 맡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그는 다정하고 현명하며 사랑스러운 마초인 것이다. 허조그는 단지 위로를 받고 싶어 찾아왔으면서 보고 싶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라모나에게 매들린과 밸런타인을 험담하고, 그녀는 그 이야기를 너그럽게 듣는다. 그는 라모나와 함께 하는 시간에도 계속 머릿속에서 편지를 써댄다. 그러나 그 날 밤, 매들린과 달리 그가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던 밤을 보낸 후, 그는 ‘편지를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중요한 발견을 깨닫지 못한 채 허조그는 다시 라모나에게서 떠난다.
그는 죽은 아버지의 집에서 권총과 달러를 챙겨 나온다. 그러다 우연히 재판을 목격하게 된다. 매춘을 한 소년이 판사에게 전혀 기죽지 않는 모습을 본다.
‘소년은 나쁜 현실에는 나쁜 환상으로 저항하며, 판사에게 암묵적으로 “당신 권위나 나의 타락이나 따지고보면 마찬가지잖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2권 42)
한편, 세 살짜리 아이를 죽인 엄마의 재판에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딸인 준을 떠올린다. ‘어떤 사람들은 살인하고 운다. 어떤 사람들은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2권 57) 두 범죄자(?)의 손에서 준을 구해야겠다는 계획으로 그는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권총을 들고 간 매들린의 집에서, 그는 준이 밸런타인과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다. 세 사람의 보금자리에, 방해자는 오히려 총을 들고 덤불에 숨어 있는 자신이었다.
‘단지 준이 허조그가 사람들을 닮았다고 그 애가 둘보다 나하고 더 가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애의 삶에 아무런 역할을 못 해낸다면 어떻게 닮았다고 할 수 있을까?(2권 82)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그는 준을 포기하지 못한다. 밸런타인의 아내에게 가서 간통죄로 그를 고소하자고 제안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피비는, 남편은 언제나 밤에 돌아온다면서 허조그의 제안을 묵살한다. 친구의 집에서 허조그는 복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후 딸과 조우한 허조그는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경미한 교통사고를 내서 조사를 받게 된다. 탄환이 든 권총을 소지한 문제로 경찰과 대립한다. 형의 도움으로 간신히 유치장에서 풀려나온 허조그는 고택으로 돌아간다. 오래 방치된 그 고택에서 자연의 세례를 받는다. 허조그의 정신을 지배하던 비정한 니힐리즘이 사라지고,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는 처음으로 안락한 기분에 젖는다. 그는 드디어 라모나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그는 편지쓰기를 그만두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도 전할 말이 없다. 단 한 마디도 없다.’(2권 208)
참으로 고통스러운 화해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소설의 첫 부분과 대칭을 이루는 이 지점에서야, 허조그는 일그러진 자신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긴 이야기 속에서 작가가 쏟아낸 철학적 담론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는 도시의 빈민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아름다운 빈곤이, 도덕적인 빈곤이 미국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체제 전복적일 것이다. 빈곤은 추잡해야 한다.’(78) 그리고 그 빈곤을 지탱하는 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어떤 공동체든 간에 타인에게 대단히 위험한 계급의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범죄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응징과 형벌 제도가 있습니다. 저는 지도자를 말하는 겁니다. 항상 가장 위험한 인물들은 권력을 탐하는 자들입니다.’(84)
한편으로 인간답게 사는 방식에 대해서도 숙고한다. 그는 그레셤의 법칙을 변형하여 ‘공적 생활이 사적생활을 구축한다’(255)고 쓴다. 사회가 정치적이 될수록 개인의 개성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생활의 영역은 넓어졌지만 오히려 단조로워진다. 그래서 그는 ‘영감을 받은 상태’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리를 알고, 자유의 몸이 되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 존재를 완성한다는 것, 맑은 의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없이는 제 아무리 죽음을 피해 달아나고 외면해도 영혼은 이미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259)’
결국 긴 여정의 끝에서 그가 선택한 건, 복수가 아닌 관용, 파괴가 아닌 창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